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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네에서 작은 도시락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나는 동네에서 작은 도시락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 임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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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17년차다. 그게 뭐라고 해외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다. 바쁘게 살다보니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도 어느새 환갑이 내년이다. 아이들이 내년에 해외지인 방문을 보내주겠단다. 아! 여권이 어디 있더라? 여권을 써본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찾아본들 쓸모 없겠다 싶었다.

여권사진을 먼저 찍어야겠구나 생각 하니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시청 앞 사진 자판기에서 찍을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좀 근사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는 일이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일이다 보니 매일 두건을 쓰게 된다. 편해서 몰랐는데 어느새 귀밑에서 애써 자라고 있는 흰머리도 보이고, 푹 눌린 정수리도 보기 싫었다.  '사진 찍기 전에 염색이라도 해야 겠다' 생각하니 '무슨 옷을 입고 찍지?'가 또다시 올라왔다. 여권사진 찍는데 뭐 이리 걸리는 게 많은지, 한편 살짝 우스운 마음이 들었다. 일 끝나고 나가려니 시간이 여의치 않아 쉬는 주말에 날을 잡았다.

토요일 아침 머리를 감고 정성껏 드라이를 했다. 흰머리는 문명의 기술을 빌려보자 싶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뽀얀 흰색 셔츠를 꺼냈다. 입어 보니 살이 붙어 예전만큼 태는 나지 않지만 검은색 정장을 걸치고 우리 동네 사진관을 검색했다.

사진관이 예전만큼 흔하지가 않다. 아이들 네컷사진방은 곳곳에 있었지만 패스~. 마침 이름이 '증명사진 여권사진 잘 찍는 사진관'인 곳이 눈에 들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머니, 여권사진은 예쁘게 나오는 사진이 아닙니다"

토요일 오후 사진관에 들어서니 한산하다. 잘 찍는 사진관에 왔는데 왜 사람이 없을까 하던 차에 사진사로 보이는 이가 조금 전까지 졸았을 법한 눈으로 인사를 한다. 그는 나의 살짝 흥분된 기분을 맞추지 못한 채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외운 듯 말했다.

"어머니(?)~ 여권사진은 절대 예쁘게 나오는 사진이 아닙니다. 기대하지 마세요~ 안경도 빼시고 머리도 귀 뒤로 전부 넘기세요~ 앞머리도 이마 보이게 ~"

약장사에 홀린 듯 그의 연출에 따라 사진을 찍었다. '눈 좀 크게 뜰 걸' 하는 아쉬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진을 건네 받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 이거 나 아닌 것 같은데요?"

이게 무슨 말인가?

되돌아오는 사장님 말이 더 가관이다. 20년 사진관하면서 이런 말은 처음 듣는단다. 

"여권사진은 예쁘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외국에서 테러범 잡을 때 목적으로 찍는 사진이라."

아이고, '테러범'까지 등장했다. 서울의 사진관에 부천아줌마 소문날까 서둘러 계산을 했다. 주차된 차에 들어와 시동도 켜지 않은 채 차근차근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앞머리가 생명인데, 망쳤다. 귀 뒤로 넘긴 머리 밑동도 흰색이 살짝 보인다. 거의 평생 쓰던 안경을 벗은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안경빨'이 없으니 얼굴이 왠지 허전하고 주름도 보이는 것이 영락없는 중년 아줌마 모습이다. 그나마 웃는 모습이 예쁜데 무표정하게 입을 다물었다.

나한테 미안하다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찍었다(자료사진).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찍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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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내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는데 왠지 나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이 내가 60년동안 살아왔던 내 얼굴이구나. 이런 나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었구나. 귀엽고 파릇한 청춘을 지나 이제는 아줌마라 불러도 자연스레 뒤를 돌아보는 나이로 도착한 거구나. 내가 나 같지 않다고 했으니 내가 많이 섭섭했겠다.'

운전석 위쪽 거울을 보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고 내 앞머리를 제자리에 돌려놔 주었다.

며칠이 지나고 딸이 물었다.

"엄마! 여권사진 찍으셨어요?"
"찍긴 찍었는데 좀 예쁘게 안 나온 거 같아."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는데 남편과 아들도 눈 크게 뜨고 모여든다. 엉거주춤 건넨 사진을 본 딸이 말했다.

"엄마! 여권사진 이 정도면 잘 나온 거예요. 예쁘게 나왔어요~ 이제 아빠랑 비행기만 타면 되겠네!"

10년 뒤 다시 여권사진을 찍을 때 나는 또 어떤 마음일까? 이젠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인데 나한테 부끄럽지 않도록 자~알 살아 보자. 앞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삶 가운데 찾아오겠지. 아주 소소한 행복마저 놓치지 않고 순간순간을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혹 원치 않은 힘들고 고단한 시간들이 온다고 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옅은 미소로 담담하게 이겨내야지. 사랑하는 가족, 이웃들과도 좋은 관계를 주고받으며 내 얼굴로 위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지 생각해 본다.

태그:#쓰고뱉다, #서꽃, #여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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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60의 아줌마. 부천에서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중이다.남은 인생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시니어와 청년이 밥집을 가운데 두고 잘 살 수있는 공동체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이왕이면 많은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어 쓰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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