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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갤러리 마당. 드니 메이어스의 그래피티 앞에서 실키웜즈 밴드의 임은석, 김왕준이 포즈를 취했다. ⓒ 오창환
 
서울 종로 2가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초입에 예사롭지 않은 그래피티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이 있다. 바로 갤러리 코트(KOTE)로 들어가는 길이다. 코트 갤러리는 원래 그 골목 양쪽과 골목 안쪽 깊숙이까지 포괄하는 상당히 큰 복합문화공간이었만 지금은 건물 1개 동만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코트 갤러리에서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낙서전'이 열렸다. 6일에는 '다 같이 낙서하기' 행사와 공연도 있다고 해서 인사동으로 갔다. 코트 갤러리에는 여러 번 와 봤지만, 올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사동 별천지다.
 
문생 작가가 밑그림을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 낙서를 했다. ⓒ 오창환(사진)
 
'낙서전'은 낙서 작품을 모아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낙서하는 과정을 전시한다. 건물 3층 전시장에 올라가니 문생 작가가 거대한 낙서판을 만들어 놨다. 문생 작가는 우리나라 1세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원더풀 데이즈>를 연출했으며 현재는 주로 회화 작업을 한다.

우리는 그 낙서판에 낙서할 수도 있고 따로 종이에 낙서해서 벽에다 붙여놓을 수도 있다. 낙서라면 나도 빠질 수 없으니 낙서판에다 신나게 낙서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낙서를 할 수 있도록 종이를 깔아 놓은 낙서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어반스케처인 김인근, 김희민, 트릭스님이 참여해 어반스케처이자 낙서쟁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어반스케처들이 마당 곳곳에 진을 치고 그림을 그리는 광경이 벌어졌다.
 
드니 메이어스의 그래피티. 한국인 친구들의 얼굴과 한글이 적혀있다. ⓒ 오창환(사진)
 
나는 눈여겨 뒀던 그래피티 벽화가 있는 건물을 그렸다. 코트 골목길의 그래피티는 벨기에의 유명한 어반 아티스트 드니 메이어스(Denis Meyers, 1979~)의 작품이다. 2021년은 한국과 벨기에가 수교한 지 120년 되는 해였다. 벨기에 대사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21년 10월 코트에서 벨기에 문화축제를 진행했다. 다양한 전시와 파티가 이어졌는데, 이때 벨기에 대사관이 메이어스를 초청해 벽화작업을 의뢰했다.

안주영 코트 갤러리 대표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행사는 4일간이었지만 드니 메이어스는 미리 한국에 와서 총 20일 정도 체류했어요. 그런데 한 10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코트 마당에 있는 맥주집에서 술만 마시는 거예요. 도대체 작업은 언제 하나 걱정도 됐죠. 그러데 알고 보니 그 시간 그는 한국 친구를 만들고 있었지 뭐예요."
    
드니 메이어스의 그래피티 앞에 포즈를 위한 실키웜즈 밴드 멤버들과 그림에 열중인 어반스케처들. ⓒ 오창환, 김인근
   
그때 만난 친구들 이름이나 사연을 그의 작품에 담았다. 그는 스스로를  타이포그라퍼라고 말할 정도로 주로 문자를 쓰는 벽화 작업을 하는데, 인사동 골목에 영어와 불어로만 된 벽화 작업이라면, 얼마나 생뚱맞을까. 벽화를 보면 그가 그 때 만난 사람들과 인사동 이웃들의 얼굴과 한국어 이름이 담겨있다(드니 메이어스의 인스타그램 ID : d6ni5m).

그림을 그리는 중에 오후 공연을 하러 온 밴드 멤버들이 예사롭지 않아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그래피티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해줬다.
 
갤러리 지하 '토끼굴'에서 홈신자의 공연 '푼크툼-El Punctum-T'가 열렸다. ⓒ 오창환
   
이날 오후 4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위예술가이자 명상가인 홍신자 선생의 '푼크툼-El Punctum-T' 공연이 있었다. 건물 1층 조선살롱 지하 '토끼굴'이라고 불리는 12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했다. 홍신자 선생의 공연은 처음 보는 데다가 30여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해 기대가 컸다. 공연 스케치는 허락받기가 쉽지 않은데 그날은 '낙서전'의 공연이라 너도나도 스케치북을 들고 들어갔다.

나는 공연 20분 전부터 미리 가서 기다렸다가 결국 첫 번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대 가운데 의자가 있고 램프가 켜져 있다. 한쪽에 바이올린을 든 여인이 무심하게 앉아있고 검은색 원피스를 입은 그가 꽃잎을 바닥에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다. 장내가 조용해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나는 침을 꼴딱 삼켰다.
 
그녀는 무대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몸을 구부리고 몸을 흔든다. 바이올린 소리가 흐른다. 그녀는 히히히히히 웃는 소리를 내고 몸을 점점 격하게 흔든다. 일어서서 벽을 짚고 천천히 돈다. 손을 들며 구석으로 간다. 조명이 번개 치는 것 같다. 바이올린 소리는 점점 격해진다. 그녀는 가운데로 와서 선다.

30분가량의 즉흥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의 현장 스케치의 최종 목표는 춤 공연을 그리는 것이다. 몸의 흐름, 그 강약, 도약과 멈춤을 그려내고 싶다. 홍신자 선생의 공연도 정확히 표현하기보다는 느낌을 나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홍신자 선생의 공연 모습과 실키웜즈와 모어의 합동공연. ⓒ 오창환
     
이후에는 1층 조선살롱에서 3인 밴드 실키웜즈(SilkywarmS)의 신나는 공연이 있었는데, 홍신자 선생 공연에서 바이올린을 맡았던 강해진(Silky)과 드니 마이어스의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해줬던 보컬 임은석, 베이스 김왕준로 구성된 밴드다. 그리고 광란의 춤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모어(모지민)의 춤공연도 이어졌다.
     
3인조 밴드 실키웜즈(SilkywarmS)의 공연. 바이올린 강해진(Silky), 보컬 임은석, 베이스 김왕준로 구성된다. 모어(모지민)가 춤을 추고 있다. ⓒ 오창환
   
하루 만에 이 모든 행사와 공연을 볼 수 있었다니. 그것도 무료로. 그럴 줄 알았으면 아는 사람들을 좀 더 데리고 갈걸 그랬다.

인사동의 별천지 코트 갤러리가 앞으로도 참신한 기획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면 좋겠다. 그리고 드니 메이어스의 명성이 알려진다면 그의 그래피티(graffiti는 낙서라는 뜻)는 인사동의 사진 명소로 알려질 만한다.
태그:#홍신자, #낙서전, #코트갤러리, #문생, #드니메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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