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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 밤마다 푹 빠져서 보는 드라마가 있다. tvN <눈물의 여왕>. 제목에도 '눈물'이 들어있고, 여주인공이 시한부를 선고받은 채 시작되는 비극적인 설정에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웃기면서도 센스있는 대사들 때문에 매회 유쾌하게 보고 있다.

물론 남녀 주인공(김지원, 김수현)의 비현실적으로 눈부신 비주얼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충분하지만, 거기에 각자의 역할에 딱 맞는 조연들의 맛깔나는 연기까지 더해지니 늘 끝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깜빵이냐 시댁이냐, (정하라면) 그럼 난 깜빵! 깜빵에서는 최소한 남이 해주는 밥을 먹잖아요."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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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는 여자 주인공 일가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전 남편인 백현우(김수현 역) 집으로 피신한다. 이혼으로 인해 더이상 시댁이 아니라 전 남편의 집에 피신해 있는 주인공 홍해인(며느리, 김지원)을 이해할 수 없다며 비서가 내뱉은 저 말에 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댁보다 감옥을 택하겠다니. 다소 과장된 대사였지만 며느리들이 시댁에 대해서 얼마나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잘 표현한 웃픈 대사였다.

현실적으로 친정식구들과 같이 전 시댁에서 함께 지낸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아무리 드라마라도 너무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라고 생각하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 극 중의 시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의 며느리는 재벌 3세로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바쁜 몸이라, 시아버지의 환갑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재벌 집에서 태어나 대접만 받고 자란 며느리에게는 시댁에 대한 며느리의 도리 같은 건 애당초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타박하지 않는다. 먼저 돕겠다고 나서기 전에는 며느리가 시댁에서 일하는 것을 기대하지도 또 시키지도 않는다. 재벌집에서 맞이한 며느리니까 어려워서 그런 걸까 싶지만, 며느리가 거들겠다고 할 때 흔쾌히 할 일을 주는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시어머니는 그저 한발 물러서서 아들 며느리가 사이좋게 잘 살기만을 바라고, 아들 내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콧대가 높은 사돈에게도 자존심을 버리고 기꺼이 머리를 숙인다.

예상 빗나간 전개... 그간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시어머니가 이혼으로 남이 된 며느리의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된 장면. 나는 그걸 보며 시어머니가 순간 자기 아들 손을 잡으며 "우리 아들, 이혼해서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이어지는 다음 장면을 예상했다. 그리 살가운 며느리도 아니고 역할도 제대로 안 하는 며느리이니 아픈 며느리보다 옆에서 힘들게 지켜보아야 하는 아들이 더 걱정스러워서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막장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이제까지의 드라마에서는(어쩌면 현실에서도) 대부분의 시어머니들은 당연히 아들이 며느리보다 먼저였다. 겉으로 드러내서 표현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일 뿐 시어머니는 철저하게 아들 편이었으니, 며느리의 시한부 상황에서도 아들을 먼저 걱정하는 전개가 어쩌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중병에 걸린 젊은 며느리의 인생을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쏟고, 그런 아내를 보면서도 헤어짐만을 생각한 아들을 나무란다. 아픈 며느리를 먹이기 위해서 아침부터 거하게 밥상을 차려낼 만큼 며느리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해준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 중 시어머니 전봉애 역(황영희) (출처:공식홈페이지)
 드라마 '눈물의 여왕' 중 시어머니 전봉애 역(황영희) (출처:공식홈페이지)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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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며느리이기 전에 소중한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 시어머니에게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깊이 느껴졌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과하게 몰입한 것일까?

늘 가족으로서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내 집의 손님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주는 시어머니의 현명함에 며느리도 시어머니에게 정을 느끼고 도우려는 마음이 우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진심이 통하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어진다.
     
역할이나 관계보다, 상대를 먼저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을, 특히 시어머니를 힘들어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아마도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없어지고 '관계'만 남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책임과 의무가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마음과 며느리의 '남편'에 대한 마음이 결코 같을 수 없는데도 서로에게 자기와 같은 크기의 마음을 기대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을, 특히 시어머니를 힘들어한다(자료사진).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을, 특히 시어머니를 힘들어한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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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다르지 않다. 30년 가까이 가족으로 지내면서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혈연관계인 남편과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핏줄이 다른 나는 종종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잘 대해주셔도 시부모님은 내 부모님이 될 수 없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며느리인 나는 딸이 될 수가 없으니 때로는 작은 일에도 서로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정한 고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의 '관계'로 다가가기 전에 먼저 '한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어떠한 관계에서도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딸만 둘인 나는, 잘 생기고 능력 있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저런 사위를 맞이했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현명하고 배려심 많고 마음이 넓은 그의 어머니를 보면서 '저런 사돈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그런 사돈을 만나면 그런 사위는 자동으로 따라올 가능성이 클 테니까. 물론 그 전에 나부터 그런 장모가 되어야겠지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태그:#눈물의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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