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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녀딸의 뒷모습. 좋아하는 치마를 입어서 매우 만족한 상태다.
 우리 손녀딸의 뒷모습. 좋아하는 치마를 입어서 매우 만족한 상태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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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퇴직 후,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삶터를 옮긴 이유는 손녀딸 때문이다. 딸과 사위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터라 누군가 손녀딸을 돌보아 주어야 했다. 삶터를 옮기는 결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아내와 함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예뻐도 너무 예쁜 손녀딸을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감하게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7월 말에 이곳으로 이사했는데 그때는 사위가 육아 휴직 중이어서 우리 부부가 전적으로 손녀딸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전적으로 돌본다고 해서 하루 종일 손녀딸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의 시간과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뒤 딸네 부부가 퇴근하기까지의 시간 동안 손녀딸과 함께 있어 주면 되었다.  
             
딸네 집에 새벽같이 도착하는 이유 

사위가 복직한 2024년 3월부터 우리 부부의 손녀딸 전적인 돌봄이 시작되었다. 벌써 4주가 넘었다.

우리 부부의 하루 일과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침 5시 20분 기상. 6시 30분 전까지 딸네 집 도착. 9시 30분까지 손녀딸 어린이집 등원시키기. 손녀딸 하원할 때까지 각자의 시간 갖기. 4시 어린이집 도착, 손녀딸 하원시켜 딸네 집으로 가기. 딸네 부부 퇴근할 때까지 손녀딸과 함께하기. 집으로 돌아와 10시 이전 취침.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보면 가히 '새 나라의 어린이' 수준으로 아주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야 하니 일찍 자야 한다. 손녀딸 봐주는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느냐고 몇몇 지인들이 의아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딸과 사위 모두 40~50분 걸리는 곳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하고 있어서 교통 체증 등을 고려하여 늦어도 6시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딸네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차로 약 5분. 나는 조심조심 운전을 하고 아내는 손녀딸과 뒷좌석에 앉는다. 손녀딸이 듣고 싶어 하는 동화도 들려주고, 역할 놀이를 하자면 역할 놀이도 하고, 딸네 부부에게 보내 줄 손녀딸 영상도 찍으며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여 일단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어린이집 안에 들어가서도 울음보를 터뜨리며 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종종 보았지만, 한 달 동안 우리 손녀딸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손녀딸의 교실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오는 동안 1층 로비에서 잠깐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다른 아이들은 창밖에 있는 엄마, 아빠를 보며 손을 흔들곤 하는데 우리 손녀딸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로비 여기저기를 다니며 무언가를 만지다가 선생님이 엘리베이터 타라고 하면 냉큼 올라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콧잔등이 찡해지고 때로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예쁨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저렇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에 안쓰러운 마음이 북받치는 것이다. 손녀딸은 나름대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자주 울컥하는 요즘... 딸과 손녀딸 때가 다르네요
 
국가 차원의 아이 돌봄 체계가 제대로 갖추는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자료사진).
 국가 차원의 아이 돌봄 체계가 제대로 갖추는 문제가 매우 시급하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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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물을 찔끔하는 걸 본 아내가 대뜸 한마디 한다. 딸내미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요샌 왜 그러느냐고. 당신도 늙긴 늙었나 보다고.

실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딸을 키울 때는 적어도 이렇지는 않았던 듯싶다. 그땐 아내는 딸내미를 보내며 매일 눈물 바람이었는데 말이다.               

딸을 키울 때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손녀딸의 경우, 딸내미가 육아 휴직을 2년 동안 하며 어느 정도 키운 다음 어린이집에 보냈고, 그때도 사위가 육아 휴직을 하여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아빠가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딸내미는 8개월 때부터 도우미 아주머니 집에 맡겨야 했다.
              
지금 손녀딸보다 더 어린 딸내미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길 때 눈물이 더 나야 마땅할 텐데, 어쩐 일인지 딸내미 때는 내가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아내가 매번 눈물 바람이니 나까지 그러면 안 되겠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젊었을 때는 내 마음이 지금보다 더 냉정 또는 침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냉정 혹은 침착했던 아빠가 이젠 눈물 찔끔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아내가 슬쩍 흉을 보는 것이다.  
             
3월 한 달, 나와 아내의 일상은 온통 손녀딸과 함께한 나날이었다. 적어도 손녀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는 계속될, 무척이나 소중한 일상이다. 손녀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손녀딸에게 우리 부부의 손길이 필요 없는 때가 올 터이고, 그때 우리 부부는 퍽 늙었으리라. 그래도 많이 서글프지는 않을 성싶다. 손녀딸이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며 늙어 갔을 테니 말이다.  

아름다운 구속

한 달 동안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이 휴직을 하거나 도우미를 쓰거나 해야 할 텐데 그 어느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국가 차원의 아이 돌봄 체계가 제대로 갖추는 문제가 매우 시급함을 이제서야 절절히 느끼고 있다. 아이 돌봄 공약을 촘촘하게 내세운 후보가 있다면 이번 총선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찍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후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은퇴 후 나의 삶은 손녀딸을 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손녀딸 때문에 얽매인 삶을 사느냐고 한다. 손녀딸로 인해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건 그야말로 아름답고 즐거운 구속이다. 손녀딸이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날이 갈수록 우리 부부는 늙어 가고 손녀딸은 자랄 것이다. 손녀딸에게 우리 손길이 필요 없을 때까지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한다.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뭐 대단한 운동은 아니고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 중이다. 한 달에 스무 번 이상 만 보를 걷고 있다.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라 할 수도 있다. 이제까지, 이렇게 꾸준히 운동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모두 손녀딸 덕분이다.
          
손녀딸이 건강하게 자라나,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빈다.

태그:#손녀딸, #어린이집, #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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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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