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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원이는 내가 근무지를 옮겨오면서 작년부터 만나게 된 학생이다. 내가 다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다가와 '야! 너 왜 재식샘이랑 이야기해?', '아~! 왜 재식샘은 저한테는 뭐 안 물으면서 얘랑만 대화하세요~!'라며 번갈아 소리를 치고 휙 가버리는 아이였다. 그렇게 서원이는 국어 선생님인 내게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고, 언제나 복도와 학교 로비에서 친구들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장난을 치느라 바쁜 아이였다.

나는 이상하게 슬픔이란 절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과하게 밝게 말하고 행동하는 서원이가 마음에 걸렸다. 비슷하게 일부러 소리를 지르는 학생도 있었고, 늘 명랑하게 나를 대해주는 학생도 있었는데 나는 왜 서원이가 유독 마음에 걸렸을까? 담임 교사가 아니어서 서원이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는데도 왜인지 서원이는 자기 마음을 어딘가에 숨겨 두고, 그걸 숨겨뒀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늘 서원이를 만나면 사람이 언제나 들뜨고 밝을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 말하면 좋겠다고 했다. 정말 매 순간 기쁘면 기쁨의 크기에 맞게 조절해서 표현하면 어떠냐고 하기도 했다.

서원이를 복도에서 만났을 때 엉뚱한 말을 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할 때마다 나는 한쪽 손을 번쩍 들며 '경고!'를 외쳤다. 있는 그대로 말하면 너랑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과장하거나 왜곡된 말하기를 하면 교무실로 들어가 버린다는 의미였다. 서원이는 내가 경고를 날릴 때도 "아~! 서정이랑은 장난도 치시잖아요~!"라며 교무실 앞을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며 휙 돌아서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렇게 올해 서원이는 고3 학생으로, 나는 고3 담당 교사로 다시 일 년을 함께 보내게 됐다. 개학 첫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오후, 서원이가 교무실 앞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누구 찾아왔어? 샘들 거의 퇴근하셨을걸?"
 "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대학 안 가면 인생이 망하나요?"
 "아까 담임샘이랑 상담하러 간다더니 거기서 암울한 이야기를 들었구나~!"


서원이는 과장되게 입꼬리를 삐쭉 내리며 내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너무 쉬운 질문이라며 답을 해줬다.

"대학 안 가도 인생은 절대로 안 망하지. 절대로. 서원이는 대학 가도 아주 잘 살 거고, 대학을 안 가도 잘 살 것 같은데?"

그 순간 서원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애써 입꼬리를 올리는 바람에 웃으면서 우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너 진짜로 물은 거구나? 이리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좋겠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던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서원이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마음을 말했다. 20살 이후 생활은 생각하면 무서워서 일부러 잊고 지냈는데 이젠 정말 피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대입 원서를 쓰려면 얼른 꿈을 정해야 하는데 본인은 아직 꿈도 없어서 생기부도 별로고, 학과도 못 정했다고 했다. 심지어 공부도 제대로 안 해서 본인 성적으로 대학 입학도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냥 학교에서 지금처럼 계속 지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다들 말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마지막 일 년을 보내면 졸업이고, 그 이후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막막하다고 했다. 서원이의 올해 담임선생님은 내가 우리반 아이들에게 그랬듯 자연스럽게 희망 대학이나 학과, 성적과 공부 상황을 물었을 것이다. 서원이에게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을 여는 것처럼 느껴진 듯했다.

예상 밖의 순간에 서원이가 차분하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도하기도 했고, 청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 삶이나 세상을 직면하게 하는 방식이 꼭 이런 공포심이어야 하나 화가 나기도 했고, 막막해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나도 어떤 미래는 떠올리면 막막해서 외면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원이에게 막막함을 막막한 채로 말해줘서 반갑고 고맙다고 했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을 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의외로 다시 해볼 힘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그날의 대화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며칠 뒤에 만난 내 친구들은 그날의 이야기를 적은 내 글을 읽고 내가 떠올린 것과 비슷한 의문을 던졌다.

"너무 신기한 게 학생들이 진짜 많았을 거고, 서원이는 잠깐씩 만나는 학생이었는데 재식은 어떻게 그 아이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덮어둔다는 사실을 알아챈 걸까?"

그 질문을 놓고 이리저리 대화를 나누다 사람은 사실 타인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다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어쩌면 내 감정을 내가 자꾸만 외면해서, 그런 내 모습이 나아지기를 바라서, 그래서 비슷한 모습을 가진 서원이를 단번에 알아챈 건 아닐까. 나는 다음날 서원이를 만나 물었다.

"서원아, 선생님이랑 대화했던 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친구들한테 보여줬거든. 그랬더니 내 친구들이 다른 많은 학생이 있는데 서원이 너한테만 경고를 날린 게 신기하다고 하더라고."
"오! 엄청 좋은 친구들을 두셨네요~!"
"그래서 샘이 왜 서원이를 보면서 자꾸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고 느꼈을까 고민해 봤는데, 혹시 샘의 모습을 서원이한테서 본 건 아닐까 싶었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자신을 본다는 말이 있거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서원이의 진짜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기 힘들게 만드는 게 어떤 것이 있다고 느껴?"


서원이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좌우로 움직이다가, 자신에게는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기가 바라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조금만 다른 감정이나 생각이 들어도 자꾸 그걸 외면하거나 부정하게 된다고.

나는 조금 놀랐다. 서원이 말이 꼭 내가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늘 솔직하고 싶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여유 있으면서도 모든 걸 잘 해내는 나, 그런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 속의 나를 마음속에 세워놓고 그것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숨기고 외면했다. 그리곤 겉으로는 편안한 듯 말해놓고 혼자 방에 앉아 나는 왜 더 잘하지 못하는지 괴로워했다. 나는 서원이가 나의 도움으로 조금은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아 뿌듯했는데, 사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서원이가 도와준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경고를 날리면서도 내가 좀 더 깊게 물어보지 못한 것은,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기까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은, 서원이가 덜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서원이 모두에게 자기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비춰주면서 그렇게 조금씩 각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태그:#교사, #학생,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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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사랑을, 그런 사랑을 가꾸고 지키는 존재를 찾아다닙니다. 저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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