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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이 있는 4월이다. 각 지자체마다 4월이면 나무 나눠주기 혹은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한다.

2018년 부터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수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던 비자림로는 제주의 대표적인 생태 파괴의 현장으로 각인되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안개비가 내리는 일요일 오후 비옷에 장화를 신은 이들 20여 명이 수천 그루의 나무 벌목으로 몇 년째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던 비자림로의 공사 현장에 모였다.

시민들은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도 가장 많은 나무가 벌목되었던 장소를 걸으면서 옅은 한숨을 토해냈다. 삼나무가 빽빽이 우거졌던 숲의 흔적은 시커먼 아스팔트로 완전히 지워졌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지워진 숲의 흔적을 더듬거리며 참여자들은 제주도가 일부 나무들은 벌목하지 않고 옮겨 심겠다고 했던 약속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옮겨심은 나무 일일이 확인한 시민들 "아직 할 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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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살피는 시민들 .
ⓒ 이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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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2022년 1월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비자림로 공사 환경저감대책 이행계획에서 삼나무를 제외하고 팽나무 등 이식할 가치가 있는 나무 184주는 베어내지 않고 비자림로의 삼나무 벌목 자리에 옮겨 심겠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옮겨 심은 나무가 살아있는지 고사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나뭇가지를 휘어보기도 하고, 나무 끝에 새순이 돋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일일이 나무의 상태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행사 말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솔길처럼 정말 아름다웠던 곳이 다 파괴돼 버리고 새로 깔린 길을 보니까 그 나무가 있던 것이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게 기분 나쁘게 신기했다. 큰 도로가 생겨서 이쪽과 저쪽 생태계가 양분되어 버렸는데 그 생태계를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든다"(이상현)

"나무들이 베어졌을 때 너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새로 옮겨 심은 나무들이 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새순이 돋아나고 새싹이 나는 걸 보면서 지치지 않고 계속한다면 우리가 그래도 잘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가져보게 되었다."(김연순)

"이렇게 도로 등 과잉 SOC(사회간접자본) 건설이 반복되는 이유가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도로, 공항 등 기반시설 조성에 사용되는 목적세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제도와 체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야 되겠다."(김지영)

"이미 도로가 만들어졌고 나무는 이미 다 베어졌고 사람들이 끝났어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베어질 나무는 아직 많이 남았고 닦아질 도로들도 많이 남았는데 비자림로 끝났으니까 다 끝났겠지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이렇게 모여서 계속해서 모니터링을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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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림로에 모인 시민들 .
ⓒ 이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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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날인 23일에는 비자림로 시민모니터링단이 주용기 전북대 연구원과 함께 제주도가 약속한 저감대책에 대해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이들은 모니터링 결과를 정리해서 지역 언론에 배포했는데 "수목훼손 최소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불빛 차단을 위한 나무 식재 효과가 없다, 공사시 저감 계획 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팔색조와 맹꽁이 서식처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 등을 주장했다.

이들이 주장한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제주도는 원래 22m였던 도로폭을 16.5m로 축소해서 수목훼손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는데 직접 네 지점을 측정한 결과 벌목 폭이 28m, 30m, 28m 30m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애기뿔소똥구리가 밀도 높게 서식하던 일부 구간에 편백나무 557주, 다정큼나무 454주, 홍가시나무 437주, 꽝꽝나무 593주를 교차 식재하여 야간 불빛을 차단하여 서식환경을 보호하겠다고 하였지만 계획의 60% 정도만 식재되었고 식재된 나무들 역시 일부는 완전히 뽑혀지거나 꺾여있었고 잎들이 다 말라버렸다는 주장이다. 건강한 나무들 조차 야간 불빛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성장 기간이 필요해 당장의 불빛 차단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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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식재계획 .
ⓒ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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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나무를 벤 자리에 빛 차단을 위해 심은 나무들 .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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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공사 중 오염 최소화와 생태계 교란 최소화를 위해 세륜세차시설, 오탁방지막, 미세먼지 공사장 관리카드 비치, 방진망, 갈수기에만 교량 공사, 가배수로·임시침사지·저류지 조성, 공사차량 속도제한 및 경적 사용제한 등을 약속했지만 세륜세차시설은 직접적 효과를 내기 어렵게 마련되었고 교각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천미천 하천을 자갈로 메워버려 지하수자원보전지구 1등급 지역 천미천의 하류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음과 먼지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방음 판넬과 방진망 설치가 아니라 차량 속도를 제한하는 것인데 시속 70km 이상으로 주행하는 차가 발견되는 등 차량 속도가 전혀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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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으로 메워진 맹꽁이 서식처 .
ⓒ 주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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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링에 동행한 주용기 전북대연구원은 "팔색조 둥지 있던 곳 숲 가장자리에 있던 나무들이 모두 베어지고 그 자리에 다시 차폐 나무울타리가 조성되지 않아 팔색조가 다시 둥지를 틀기에는 매우 열악한 환경이 되었다. 또 맹꽁이 서식처가 공사 시 발생한 흙으로 메워져 있다"며 관리가 부실한 부분을 지적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나무의 성장, 조류 번식기와 갈수기 때 공사 이행 여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김순애는 현재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비자림로, #맹꽁이, #환경저감대책,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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