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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하면서 나는 정당에 가입하였다. 시골살이하려는 사람이 무슨 정치 참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가 사회의 틀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여러 방면에서 내 삶과 맞닿아 있기에 늘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전엔 교사로 학교에 있다 보니, 내 정치색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은 두 가지다. '부자가 존경받는 세상',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다. 여기서 부자라 함은 받은 유산보다는 자수성가를 뜻한다.

통상 부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더 성실히 일하였기에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사회에 이바지하는 데 쓴다. 그는 자신이 부자가 되기까지는 혼자 힘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데도, 기부로 실천하는 인품을 지녔기에 존경받아야 한다. 소위 '졸부'들에게는 사회 환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자기가 잘난 줄은 알지만, 사회에 대한 고마움은 모른다. 우리 사회는 부자가 존경받고 있는가?

또 성실한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성실함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성실을 상징하는 개근상은 뒷전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학교에서 '성실' 대신 '창의', '창조'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창의, 창조는 하늘에서 어느 날 우연히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실이 어느 날 나타난 것이다.

성실이 인정받지 못하면 그 사회의 상식과 도덕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성실한 사람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한다. 이런 내 생각과 연결고리가 닿아있는 정당을 지지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당에 가입하였다.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4년 동안 쉬었다. 그전까지 학교에 있으면서 보고 느낀 내 생각을 긁어모아 오마이뉴스로 보내면 잘 다듬어 기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교육청의 허락을 받고 글을 쓰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뭐 대단한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니, 그러면 안 쓰겠다고 말하고 그 이후 쓰지 않았었다. 이제 퇴임 후 아무런 제약 없이 시골살이 글을 쓰고 있다.

퇴임하니 참 좋다. 놀이터를 세 개나 갖게 되었다. 정당에 가입도 하여 내가 원하는 세상 만들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지금 내 삶의 모습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쓰고, 꽃과 나무, 바람을 오감으로 맛본다. 퇴임으로 나의 삶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공기마저 맛있는 이 곳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 바로 오륙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 오륙도 아파트 정문을 나서면 바로 오륙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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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하면서 아파트에 살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 하루에 몇 차례씩 현관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눈을 뜨면 정원이 궁금하다. 어떤 새싹이 올라왔을까? 꽃망울은 어느 정도 맺었나? 나가서 따뜻한 햇살을 맞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당을 거닐고, 정원을 둘러보며 오늘 할 일을 그려본다. 날이 조금 더 따뜻하면 데크에서, 마당 쉼터에서 차와 맑은 공기를 마시는 멋도 누릴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고, 정문을 나서면 바로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휴일에는 왜인지 현관문 밖으로 아예 나가지 않곤 했다. 나의 게으름 때문일까? 직장생활의 피곤함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아름답게 잘 꾸며놓은 아파트 정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눈으로만 아름다움을 느낄 뿐이다. 곳곳에 '들어가지 마시오', '만지지 마시오'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심고, 가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나의 오감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내가 주인이 아니었고, 그러니 애착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정원을 거닐 때 새싹이 올라오면 이웃 새싹이 궁금하여 손으로 조심스레 주위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나무껍질이 이쁘거나 독특하면 만져보기도 한다. 흙이 말라 있으면 물을 주기도 하고, 주위에 잡초가 있으면 김을 매기도 한다. 꽃망울이 맺어 있으면 꽃샘추위가 없기를 바란다. 궁금하고, 설레고, 감탄하고, 바라는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며칠 전 구입한 명자나무가 꽃망울을 맺었다. 꽃샘추위가 없어야 할텐데.
▲ 명자나무 며칠 전 구입한 명자나무가 꽃망울을 맺었다. 꽃샘추위가 없어야 할텐데.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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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으로 나서면 공기가 맛있다. 숨을 크게 쉬고 들이마시며 맑고 깨끗한 공기를 음미해 본다. 부산에서 가끔 버스를 탈 때 온갖 차들이 지나가도 공기의 혼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차 한 대가 지나가고 나면 매연이 바로 느껴져 잠시 숨 쉬는 것을 잠시 참는다. 

봄바람의 따뜻함이 몸을 스치면서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거실 창으로 맑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또 현관으로 나선다. 하늘색이 진짜 깨끗하고 이쁘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나의 조급증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날씨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날씨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면 주위를 정리하고, 배수로도 살펴보고, 꽃과 나무에 물 주기를 생각한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면 바람에 날릴 물건을 치우고, 파라솔과 의자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온도의 변화에 따라 할 일 또한 달라진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귀찮지 않다. 자연은 거스를 수 없음을, 사람은 겸손해야 함을 거듭 생각한다. 

24시간 아내와 함께 한다. 며칠 전 한 이웃이 아내에게 '이 집은 여기에서 오래 계실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보통 집들은 남편과 아내가 따로따로 생활하는데, 이 집은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가끔은 저녁에 아내와 내일 할 일을 이야기할 때 생각 차이가 있기도 하다. 아내는 정원을 가꿀 때 모르는 식물을 함부로 파 버리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하면 일이 너무 더뎌지기에 모르는 식물은, 정원의 목적에 맞지 않는 식물은 잡초 취급을 한다. 그런데 '시골살이하면서 그렇게 바쁘게, 인색하게 살 필요가 있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보면 그 말이 맞아서 나는 바로 고개를 숙인다. 아내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석축 위를 아랫집 형님이 정리한 후 나를 불러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 석축 위 정리 석축 위를 아랫집 형님이 정리한 후 나를 불러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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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 때는 현관문을 닫으면 이웃과 완전히 폐쇄되어 있었다. 시골살이는 마당에 자주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지난해 축대 위에 잡목이 우거져 정리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런데 아랫집 형님이 어찌 알고 많은 부분을 홀로 정리하여 놓고, 나를 불러 이런 식으로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덕분에 축대 위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자주 맛있는 반찬을 해와 먹어보라고 한다. 너무 맛있어 아껴 두었다가 손님에게 대접하면서 이웃 자랑을 한 적도 있다. 
 
옆집에서 다알리아 구근을 보내왔다.
▲ 다알리아 구근 옆집에서 다알리아 구근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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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는 우리가 정원을 가꾸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을 보고 지난해 추석 선물로 달리아꽃을 한 아름 안고 왔다. 너무 좋아하는 우리 모습을 보고 봄에 달리아 구근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어제 구근 50여 개를 나눠주고 키우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준다. 예전엔 대인관계가 낯설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였는데, 여기선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퇴임이 좋다. 자연이 좋다. 이웃도 좋다.
 
지난 추석 때 옆집에서 보내준 달리아로 거실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지난 추석 때 옆집에서 보내준 달리아로 거실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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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골살이,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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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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