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 전이지만 면접관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건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나는 여전히 갈등 해결 방법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뒤에 주변에 면접을 본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저 질문을 던져 보았다. 갈등은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지만 대부분 대화로 해결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대화로 해결한다는 사람에게 사례를 들어 설명해 줄 수 있냐고 묻자 머뭇거렸다. 사례 또한 면접관의 질문이었다. 대화라는 모범답안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애초 대화가 가능해 소통이 잘 되었다면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3월 초부터 주 2회 하루 4시간 문해교사양성 교육을 듣고 있다. 어느 수업, 출석체크를 하던 누군가로부터 "이 사람은 매일 일찍 가는데, 누군 조금 늦었다고 지각처리하고!"라는 불만 섞인 혼잣말이 들렸다. 출석부에 서명을 하던 나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물었다. 

당황한 듯 여성은 "아, 아니에요" 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알고 보니, 출석부는 자진 서명인데 누군가 꼼수를 부리는 것을 알고 불만인 듯했다. 
 
갈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자료사진).
 갈등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까(자료사진).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교육장엔 60대 이상인 분들이 많은데 경력자도 신입도 섞여 있다. 실습을 앞두고 4인 1조로 한 팀이 되었는데 쉬는 시간을 이용해 조장이 조원을 호명하는데 아무리 호명해도 한 명이 대답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갈때즘 누군가 슬그머니 들어와 내 뒷자리인 맨 뒷좌석에 앉았다. 혹시나 싶어 이름을 물었더니 우리 조원이 맞았다.

속내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출석체크만 하고 나갔다 끝나갈 때쯤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다 그런 거지 뭐 서로서로 이해해야지" 하면서 눈을 찡긋 하셨다. 사정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으니 봐줘야 한다고도 하셨다. 강의시간에 공정과 공평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공평한 조건을 갖게 되는 것이 공정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실습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도 대화가 순탄치 않았는데 실습 당일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조원들과 갈등이 생겼다. 실습기관 담당자는 참관 수업을 10-12시까지 전달받았다고 했고 조장은 11시까지라고 했다. 나를 제외한 조원들이 일제히 11시가 맞다며 조장의 말을 거들었고 담당자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역시 이 상황 이 이해가 잘 안 되어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곧 담당자 말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10-12시가 맞다고. 

그 일로 나는 조원들로부터 융통성과 눈치가 없다며 핀잔 비슷한 말을 들었다. 조장이 개인 사정으로 11시에 가야 했는데 그걸 몰랐냐는 것이다. 생각의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중간에서 그렇게 시간을 농간해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습을 진중하게 생각했던 나와는 다른 조원들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단기간 모인 공간에서 얼마큼 어디까지 개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단체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이 결코 나이 탓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세대차이로 구분 짓는 일반적 오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은 조원들과의 소통은 번번이 힘들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들끼리 모였음에도 이렇게 불통일수가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말만 많고, 말도 많은 사람들 속에 나는 결국 그들의 질문에 '모르겠어요'라고만 답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왜 뜻이 다른 말을 주고받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갈등이 생길 때 그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최선이었다.    
     
문해 교육을 받는 나이 든 학생들 뒤에 앉아 수업을 참관했다. 강사님은 그날 '다르다'와 '틀리다'를 설명하고 계셨다. 처음엔 생활 속 예를 들어 가볍게 설명하시더니 수업 마무리에는 긴 글을 칠판에 적어 학생들에게 읽게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학생들은 돌아가면서 그 글을 읽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갈등은 '서로가 다르다'라는 점을 인정하면 줄일 수 있다."

속으로 문장을 따라 읽던 나는 순간 마음속에 섬광이 일었다. 몇 년간 찾지 못했던 면접관의 질문에 비로소 답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면접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해 채용되지 못한 것보다 더 답답했던 건, 이후 시간이 아무리 주어져도 그 질문에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 이 문장의 내용은 지금 이 시간 이 타이밍에 내 가슴에 와닿아 나를 깨우치게 했다. 이미 알고 있던 말일수도 있고 기억만 못할 뿐 어느 책 구절에서 봤을 법도 했겠지만 오늘 그렇게 나를 바꾼 것이 중요했다. '줄일 수 있다'는 문장이 먼저 다가왔고 '생길 수밖에 없다'가 나를 안심시켰다. 

사람. 다르다. 갈등. 인정. 등 낱말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문장'은 시험지 답을 모르는 학생의 퀘퀘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조화로운 문장처럼 사람도 조화로운 관계에 답이 있을 텐데. 나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고 갈등이 애초 생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생각했다. 

벽을 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가끔 이유는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고정된 시선으로만 생각하니 사고의 유연성이 없었다.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해결이 아닌 '줄일 수 있다'는 마지막 문장처럼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노력인데, 정작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계속 노력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뒤늦게 글을 배워 글에 담긴 뜻과 의미를 전달하는 문해학습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답을 찾은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 답은 기본과 기초에 있는데, 더 많이 배울수록 어렵게 돌고 돌아 복잡하게 찾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출석체크 불만을 들었던 그날 저녁, 강의도중 이탈과 출석체크에 대한민원이 많으니 강의시간 엄수해 달라는 기관의 문자가 도착했다. 발 빠른 대처다. 실습날 있었던 일로 불만을 표하자, 지인은 불만보다는 긍정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그래, 그렇지. 알고 있던 것도 타인에게서 들을 때 새삼 더 와닿을 때가 있다. 내 안에 갇히는 걸 경계해야 할 것 같다.  

태그:#갈등, #면접관질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