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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제국대학 유학 시절 김수경은 정해진, 이희승, 김계숙과 교류했다. 이희승의 회고에 따르면, 조선인 유학생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도쿄제대에서 김수경과 함께 공부한 김계숙(金桂淑)은, 훗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1962~1968년)을 지낸다. 사진 왼쪽이 김수경이다.
▲ 1942년 도쿄제국대학 도서관 앞에서 이희승과 함께 도쿄제국대학 유학 시절 김수경은 정해진, 이희승, 김계숙과 교류했다. 이희승의 회고에 따르면, 조선인 유학생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도쿄제대에서 김수경과 함께 공부한 김계숙(金桂淑)은, 훗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1962~1968년)을 지낸다. 사진 왼쪽이 김수경이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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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필 중에서도 <멋>이라는 글은 짧으면서도 유장하다. 전문을 소개한다.

우리 문화의 특징으로서 가장 현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가 있기에, 나는 '멋'이라 대답한 일이 있다.

그러면 '멋'이 무엇이냐고 또다시 묻는 이가 있다면,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토라지게 꼬집어 대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포로서 우리 강토 안에서 자라난 사람이라면 '멋'이란 말만 듣더라도 옳거니 하고 입귀가 씽긋하며, 두 어깨가 추여지는 어떠한 일종의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의회(意會)랄까 이심전심이랄까, 설명 없이도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외국 사람이 이것을 물을 때에는, 한마디 해답이 없을 수 없다.

'멋'이란 첫째, 우리에게 쾌감 이상의 쾌락을 주는 것이요, 쾌감 이하의 담박미를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중국의 풍류보다는 해학(諧謔)미가 더하고, 또 서양의 '유모어'에 비하면 풍류적인 격(格)이 높다. 일본의 '사비'는 담박성은 가졌다 하겠지마는, 어딘지 모르게 오종종하고 자차분한 때를 벗어 버리지 못하였고, 그 '아와레미'에서는 '멋'에서 볼 수 있는 무돈착성(無頓着性)을 찾을 길이 없다. 어쨌든 '멋'은 주착 없는 듯, 헐게 빠진 듯, 미치광이 같은 면이 있으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소박성·순진성·선명성·첨예성·곡선성·다양성 등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을 나는 한마디로 통틀어 '흥청거림'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멋'이 말에 나타나면 익살이 되고, 행동에 나타나서는 쾌사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멋'은 실용적이 아니다. 다른 민족에서 볼 수 없는 우리 고유한 의복의 고름은 옷자락을 잡아매기 위하여 생겼을 터이니, 필요 이상으로 무작정 길어서, 걸음 걸을 때나 바람이 불 적마다 거추장스럽기가 한이 없지마는, 펄렁거리어 나부끼는 그 곡선의 비상(飛翔)이야말로, 괴로움을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쾌락을 주었기 때문에 생긴 것일 것이다. 술띠도 댕기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고려자기 물주전자의 귓대가 종작없이 길어서, 물을 따르려면 뚜껑을 덮은 아가리로 넘을 지경이니, 실용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발부리와 별달리 보선과 신코가 뾰족하고, 인두코가 또한 그러하다. 저고리 회장이 홀태가 되고, 섶귀가 날카로우며, 추녀가 위로 발록 잦혀진 것은, 이것이다. '멋'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와 같이 '멋'의 요소는 '흥청거림'과 '필요이상'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흥청거리는지라, 통일을 깨뜨리고 균제(均齊)를 벗어나서, 책의 사이즈가 백 가지로 다르고, 일본의 다다미나 쇼오지(障子)에 비하여, 우리 건축의 간사리나 창호(窓戶)가 얼마나 각양각색인가. 참차불일(參差不一)이요, 무질서라 하겠다.

오늘날은 과학만능의 시대다. 그런데 과학은 '멋'과 아주 배치되는 것이다. 필요와 규격만을 아는 것이다. 이 필요는 원자탄을 낳았고, 그래서 인간은 과학병으로 신음·전율하고 있다. 인류는 이 병으로 죽느냐. 고치고 살아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요, 고치려면 과연 어떠한 약이 있을까. (주석 1)


주석
1> 앞의 책, 169~17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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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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