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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울 터미널에서 울지 않을 방법을 아직은 모르겠다. 아빠가 기다리던, 아빠를 기다리던 만남의 장소 몇 번째 의자까지 또렷한데, 여기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때 천장에 매달린 TV 속 연합뉴스는 무슨 방송을 했는지도 선명한데 거기에 아빠만 없다. 빈약한 내 기억회로는 꼭 이런 날만 슈퍼 메모리가 된다. 

아빠는 아산병원에서 수술과 항암을 했다. 병원 가까이 사는 나는 평생 처음으로 아빠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일 좋아하고 혼자 노는 게 좋은 남자 어른'이기만 했던 아빠의 키워드가 그때부터 점점 다채로워졌다. 아빠에게 용건 없이 '그냥' 전화할 수 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약 한 달 전, 실제의 아빠는 작은 토기에 담겨 땅으로 갔다(관련 기사: "눈만 뜨면 싸돌아다녀" 엄마가 이러는 이유 https://omn.kr/27rey ). 아빠의 휴대폰은 그 후로도 약 한 달 간 살아있어 랜선 바이트로 남아 있었고, 사망신고가 각 행정기관에서 처리될 때까지도 약 보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드나듦은 내 휴대폰 문자에도 성실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다 '완료' 문자가 왔다. 아빠가 휴대폰상의 랜선 바이트로조차 남은 게 없다는 마지막 통보였다. 

랜선 속에서도 소멸한 아빠를 정리하러 다시 동서울 터미널에 왔다. 엄마 혼자 정리하다가 또 어디 주저앉아 울고 있을까 봐 아침 티켓을 끊었다. 

아빠 핸드폰 지갑에서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집돌이 아빠와 안 어울리는 '우리나라 최고 잔도길 best 4'라고 적혀있었다. 엄마한테 보여줬더니 순식간에 금방 눈이 빨개진다.

"니 아빠, 가기 전까지 멀쩡했잖아. 그래서 날 풀리면 놀러 갈 데 찾아보랬거든. 듣는 척도 안 하는 거 같더만 이리 써 놨네. 하여간 뒤에서 다 챙긴대니까."  

사망 날짜 확인하는 병원... 예고 없이 쑥 들어오는 슬픔
 
아빠가 남기고 간 메모. 날이 추워도 그냥 가볼 걸 그랬다
 아빠가 남기고 간 메모. 날이 추워도 그냥 가볼 걸 그랬다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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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 햇빛이 곱게 비치는 거실에 소리죽인 눈물이 응달을 만들었다. 예고 없이 쑥 들어오는 이런 슬픔에 적응 중인 나는 얼른 나갈 채비를 했다. 

주민센터에서 정갈한 명조체로 '사망'이라고 찍힌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았다. 언젠가는 '당연했'었던 서류 한 장을 세밀하게 되짚어본다. 어릴 때라 잘 기억하지 못 하는 3-4년과, 있지만 살짝 뭉뚱그려진 40년과, 터미널과 병원에서 총천연색이 된 2년의 짧은 서사가 이 서류 한 장에 보이지 않게 담겨 있었다. 눈물이 떨어져 부풀어 오른 종이 한쪽을 쓱쓱 닦아서 이내 가방에 챙겼다. 

은행 세 군데를 들렀다. 아빠가 없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했다. 부드러운 펜촉이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은행일을 끝내고 텃밭 냉이를 캤다. 눌린 마음이 꽃샘추위 바람을 타고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땅에 납작 붙은 검보랏빛 냉이를 손끝이 까맣게 물들도록 다듬었다. 냉이는 된장국 속에서 진한 향을 퍼뜨리며 우리의 흐트러진 한숨을 가만히 다독였다. 

아산병원 CT실에서 휴일근무 운영축소로 예약을 변경하라는 전화가 왔다. 다음 주 일요일이 아빠 검진날이라 그렇다. 검진을 취소해 달랬더니 왜 그런지 사유를 묻는다. 말문이 막혔다.

간신히 통화를 끝내고 ARS로 외래 취소를 하려는데, 상담원 취소만 된단다. 숨을 고르고 통화를 하던 중 소천 날짜를 확인해 달라는 말에 다시 또 눈앞이 흐려졌다. 상담원은 거듭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산병원 CT실에서 온 문자. 문자 덕에 예약일이 생각났다.
 아산병원 CT실에서 온 문자. 문자 덕에 예약일이 생각났다.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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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 애도가 잠든 잔디장에 꽃을 놓고 동서울 터미널로 돌아왔다. 진행형이 완료형으로 되기 전까지 아빠의 흔적은 벽화처럼 이곳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울지 않을 방법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태그:#아빠장례식, #애도,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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