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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였던 지난해 봄은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으로 설렜는데, 올해는 새싹을 찾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지난해 봄은 새 학기 준비로 바빴는데, 올해는 정원 가꾸기로 바쁘다.

아침을 먹으면 정원으로 바로 나간다. 오늘은 어떤 새싹이 얼굴을 내밀었는지, 얼마나 올라왔는지. 정원 곳곳을 다니며 새싹을 찾고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여린 새싹이 온 힘을 다해 언 땅을 헤집고 얼굴을 내미는 것이 신비하고, 감탄스러워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정원에는 분홍상사화, 작약, 튤립, 매발톱, 금낭화, 할미꽃, 국화, 아리스, 샤프란, 무스카리 등등의 꽃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설렘을 가득 안고 기다린 꽃은 분홍상사화이다. 지난해까지 시골살이는 주말에만 이루어졌었다.

더운 여름, 마을 길을 지나갈 때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몇 송이 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꽃 이름은 몰랐다. 주말마다 찾는 집이기에 오면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잡초 뽑고, 정원 만들기 위해 터를 만들고, 집 정리를 해야 했기에 그 꽃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일에 지쳐 잠시 쉬기 위해 집 가까이에 있는 수도암에 들렀다. 수도암에 내가 봤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그 꽃 이름을 찾아보았다. '분홍상사화'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중에 꼭 심고 싶었다. 구근을 구입하여 분홍상사화 정원을 지난해 가을 따로 만들었다.

분홍상사화를 닮고 싶다

분홍상사화는 2~3월이 되면 새싹이 움튼다. 그리고 그 잎을 키워가다 6~7월이 되면 무성한 잎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꽃대가 올라온다. 8~9월이 되면 단아한 품격을 지닌 분홍 꽃을 마침내 피워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순간 꽃과 꽃대가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이 흐름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그 아름다움을 잠깐 보여준 뒤 자신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분홍상사화. 참 멋진 삶이다. 올해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에 새싹이 올라 올 때마다 설렌다.
 
분홍상사화가 새싹을 올리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설렌다
▲ 분홍상사화 새싹 분홍상사화가 새싹을 올리고 있어 그 아름다움에 설렌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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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나무 심기는 오로지 내 중심이었다. 심고 싶은 나무를 구입하여 집을 중심으로 나무를 배치하였다. 하지만 땅의 상태와 장소에 따라 햇볕이 드는 시간을 제대로 몰랐다. 그러다 보니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의 나무는 냉해를 입기도 하고, 배수가 잘되지 않은 곳의 나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하고, 간격이 좁은 나무는 성장은 물론 보기도 좋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무 나름의 특성을 고려하여 나무를 옮겨 주어야 한다.

사람도 이사 한번 하기 힘든데, 나무는 옮길 때 뿌리뿐만 아니라 줄기, 잎 모든 것이 새로 바뀐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옮긴 후 심한 몸살을 앓아야 한다. 나무의 특성과 지형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나의 무지로 나무를 힘들게 했다.

냉해 입은 남천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고, 배수가 잘 안되어 성장이 더뎠던 매화나무는 배수가 잘되는 곳으로 옮기고, 간격이 좁아 답답한 화살나무는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틈틈이 책을 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식물 공부를 하고 있다. 덕분에 새로 구입한 모란과 명자나무는 제 위치에 맞게 심을 수 있었다.
  
냉해 입은 남천나무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화단을 따로 만들어 옮겨 놓고 가지치기를 했다.
 냉해 입은 남천나무를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화단을 따로 만들어 옮겨 놓고 가지치기를 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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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황관)을 구입하여 모란 화단을 따로 만들고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 심었다.
 모란(황관)을 구입하여 모란 화단을 따로 만들고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 심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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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눈 속에 덮여 있던 정원 돌담이 흐트러졌다. 벽돌이 깨어진 부분도 있다. 돌이 깨어진 부분이나, 올라가고 내려간 부분만 손보려 했는데 하다 보면 옆에까지 손이 간다. 하는 김에 좀 더 예쁘게 다듬어 보고 싶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몸은 지쳐 간다. 그래도 예쁘게 만들어지는 정원을 보고, 하늘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화단 돌담 수리. 눈으로 일그러지고, 깨어진 부분을 손질하여 정리했다.
 화단 돌담 수리. 눈으로 일그러지고, 깨어진 부분을 손질하여 정리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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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 새 이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이 재미를 모른다. 어쩌면 아예 관심 밖인 것 같다. 학교에 있을 때 학기마다 신동엽의 '산문시(제목이 '산문시'이다)'를 읽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1968년에 발표된 시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시이고, 우리가 열어갈 길을 비추고 있다. 이 시에는 우리가 그리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 교육의 이상이 다 담겨있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우리는 새 이름, 꽃 이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자연을 찾아갔을 때 아름다운 꽃을 보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듣고 그저 '이름 모를 새'와 '꽃'이라고 말하지는 않나?

내가 시골살이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계절의 변화,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통상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 계절의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심각하니 자연을 보호하자'고들 하고, 그 사례로 분리수거, 일회용 제품 덜 사용하기, 냉난방기 덜 돌리기 등등을 말한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첫걸음은 자연을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서다. 맑은 하늘, 깨끗한 바람, 예쁜 꽃, 아름다운 새소리,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 등등을 오감으로 느껴야 한다. 그것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이 사라지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 부산에서 몇 집 남지 않은 초가에서 자랐다. 못 먹고 못살아도 흙담 밑에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사립문에는 측백나무, 작은 마당에는 무화과, 감나무, 포도나무 등등이 있었다. 어쩌면 어릴 때 그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자랐기에 또 이렇게 퇴직 뒤 시골살이를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는 꽃을 보면 이름을 알기 위해 스마트폰을 통해 확인하고, 새소리를 들으면 그 새 이름을 알기 위해 유튜버나 인터넷으로 다가간다.

몇 년 전 EBS 프로그램 '한국기행'에서 울릉도에 사시는 70대 할아버지가 눈 덮인 마당에 핀 동백꽃을 보고 하신 말, '나는 저 동백꽃만 보면 눈물이 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할아버지의 삶이, 인품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할아버지는 차가운 눈 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워낸 동백꽃이 너무 대견하여 꼭 안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 동백꽃은 할아버지 자신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 눈물은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굳건히 헤쳐온 힘든 삶, 그래도 그 힘듦을 이겨 여기까지 왔음에 대한 자기 연민, 인정, 위로, 만족 등의 감정이 녹아 있을 것이다.

가끔 배웠다는 이들의 궤변과 억지를 들을 때면 그게 내 귀를 닫게 하고,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한다. 여린 식물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온전히 자기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에 감탄하고, 공감하고, 거기에 자기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즐겁게 함께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시골살이, #꽃이름, #새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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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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