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3 12:17최종 업데이트 24.03.1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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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월 29일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집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에 대해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일본 언론들이 공론화시킨 일본 자민당 정치자금 파티 수입 미기재 문제(정치자금규정법 위반)가 3개월 지난 지금 설상가상의 형국을 띠고 있다. 이미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물론 이제는 잊힌 인물이라 생각됐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소환될 만큼 수십 년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행해져 온 뿌리 깊은 스캔들이기에 애당초 전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단 말도 나오고 있다.

원래 이 스캔들은 2022년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의 특종 보도에서 시작됐다. 그해 11월 <아카하타>는 자민당 5대 거대 파벌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적어도 59건에 걸쳐 총액 2422만 엔(2억 1608만 원)의 정치자금 수입 내역을 조직적으로 미기재했다고 보도했다.


<아카하타> 기사를 토대로 고베학원대학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는 2022년 11월 28일 도쿄지방검찰청에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아베파) 소속 의원들을 형사고발 했고 이후 1년간 6차례에 걸쳐 지속적인 형사고발을 진행해 왔다.

시민단체가 가세하고 도쿄지검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에는 NHK와 <아사히신문> 등 거대미디어가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자민당의 근본을 뒤흔드는 최대의 뇌물 스캔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고발된 사안은 빙산의 일각 아닐까"

사건의 경위는 간단하다. 일본의 정치자금규정법은 정치인 후원 파티 등에서 1회당 20만 엔(178만 원) 넘는 파티권을 구입한 개인, 단체에 대해 해당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반드시 그 출처를 기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자민당,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오랫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세이와정책연구회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파벌 후원 파티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각종 정치연맹이라는 이름을 띤 티켓 구입자들의 지출 내역에는 수십, 수백만 엔의 파티권 구매 사실이 기재돼 있었지만 문제는 파티권을 판 주최 측, 즉 세이와정책연구회의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는 이들의 이름이 누락돼 있었던 것이다.

최초 고발 당사자인 가미와키 교수는 작년 12월 17일 <고베 신문>에 "3년 동안 수천만 엔의 수입기재내역이 누락돼 있었고, 내가 직접 찾아본 것만 이러하니 다른 파벌들, 개별 의원들의 후원 파티까지 찾아본다면 수억 엔에 달할 수 있다"며 "아마 고발된 사안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도쿄지검의 수사와 <아사히신문> <주간 문춘>의 보도 등을 종합하면 세이와정책연구회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동안 기재가 누락된 약 5억 엔(44억 6105만 원)의 정치자금을 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또한 소속 의원들 역시 파티권 판매 할당량 초과분에서 아예 파벌에 보고하지 않고 누락시킨 금액이 1억 엔(8억 9221만 원) 이상이라는 수사 결과도 나왔다. 즉 어디에도 기재하거나 알리지 않은 채 개인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소리다. 세이와정책연구회뿐만이 아니다.

자민당 전 간사장 니카이 도시히로의 파벌 '시스이카이'는 기재 누락 1억 엔, 개인 자금 유용 1억 엔, 도합 2억 엔(17억 8442만 원)을 누락시켰으며, 현직 총리가 영수로 있는 '고치카이' 역시 3년 동안 3000만 엔(2억 6766만 원)의 기재 누락이 발각됐다.

자민당 5대 파벌의 정치자금 수지보고서
 

마쓰노 히로카즈 전 관방장관이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이와 관련된 기시다 총리의 답변이었다. 작년 11월 21일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어디에도 기재가 없고 파벌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활동비 비슷하게 뿌린 거니까 결국 뒷돈, 돈세탁 뭐 그런 거 아니냐?"라는 입헌민주당 오니시 겐스케 의원의 질문에 기시다 총리가 "뒷돈이란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해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결백을 증명한답시고 총무성이 공개적으로 밝힌 자민당 5대 파벌의 정치자금 수지보고서가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2월 24일 일본 총무성이 공개한 2022년 자민당 5대 파벌의 정치후원 파티 수입보고서에 따르면 세이와정책연구회가 9480만 엔(8억 4582만 원), 시스이카이(니카이파) 1억 8845만 엔(16억 8137만 원), 헤이세이연구회(모테기파) 1억 8142만 엔(16억 1865만 원), 시코우카이(아소파) 2억 3331만 엔(20억 8236만 원), 고치카이(기시다파) 1억 8328만 엔(16억 3583만 원)의 후원금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료 덕분에 의혹은 더 커졌다. 국회의원 94명이 속해 있는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정책연구회 후원 파티 수입이 1억 엔도 채 안 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12월 8일 자 보도에서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아베파로부터 1000만 엔(8914만 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았으면서 자신의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는 기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민당 정치인 이름이 최초로 등장한 기사였고, 이때부터 정국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마쓰노 관방장관의 대응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중의원, 참의원 예산위원회는 물론 "뇌물을 받았는가"라는 언론의 계속된 질문에 그는 "저의 정치자금 및 단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해서 적절히 대응하려고 한다"라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연이어 니시무라 야스토시, 하기우다 고이치, 다카기 쓰요시, 세코 히로시게 등 이른바 자민당 5인 뇌물의원 리스트가 등장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각료 경험을 가진 자민당 중진의원으로 특히 니시무라와 하기우다는 차기 총리 물망에도 오를 정도로 국민들에게 널리 이름이 알려진 대중성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NHK도 가세했다. 지난해 12월 10일 NHK는 "최근 5년 동안 1000만 엔 이상의 뇌물을 받은 의원은 마쓰노 관방장관 외 4인을 제외하더라도 하시모토 세이코 전 도쿄올림픽 담당대신 등 10명 이상으로 보인다"며 "오노 야스타다, 이케다 요시타카, 다니가와 야이치 등이 최근 5년간 4000만 엔에서 5000만 엔의 뇌물을 받았다"고 해당 의원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름이 밝혀진 의원들의 대응이었다. 만약 사실이 다르다 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해당 언론을 고발할 수도 있을 텐데 하나같이 입을 맞춰 "성실히 (도쿄지검의) 조사에 응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제대로 조사하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대응 때문에 자민당 내부의 '우라가네'(뇌물, 뒷돈)는 이미 조직적으로,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지난 1월 23일 아직 조사 중에 있지만 파벌의 영수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자신의 파벌 '고치카이'를 해체한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 이후 세이와정책연구회 및 시스이카이(니카이파)도 해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연일 하락하는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집권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들에 대한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의혹은 여전히 불식되지 않아 2월 29일과 3월 1일 양일간에 걸쳐 '정치윤리심사회'(이하 정윤심)가 개최됐다. 정윤심은 정치인의 윤리를 심사하기 위해 중의원, 참의원 및 지방의회에 두는 위원회로 1985년에 만들어졌지만 40여 년 동안 8번밖에 개최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정윤심의 경우 무려 18년 만에 열리는 것으로 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자민당 5인방 등 수뢰 의혹의 핵심 인물들이 출석해 어느 정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까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혹은 더 증폭될 뿐이었다. 먼저 니시무라 야스토시 전 경제산업상은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22년 4월 파벌 회합에서 당시 아베 신조 대표가 의원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은 앞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7월 불의의 사고를 당하셨다. 그 후 파벌 의원들로부터 환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8월 간부들끼리 따로 만나 회의를 했지만 (환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반면 시오노야 의원은 "2022년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환급을 하자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쓰지모토 기요미 입헌민주당 대표 대행은 4일 참의원예산위원회에서 "이번 정윤심에서 아베 전 총리의 사망 후, 언제 누가 뒷돈 환급을 재개했는가에 대해 니시무라 의원은 '논의는 했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고, 시오노야 의원은 '올해(2022년)에 한해서는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기시다 총리에게 질의했다.

쓰지의 말은 일리가 있다. 아베는 4월 관두자고 했지만 7월에 사망했고, 그렇다면 간부급끼리 모였던 8월 회의가 관건인데 이 자리에 참석한 니시무라는 결론이 안 나왔다고 한 반면, 시오노야는 올해까지만 하자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둘의) 발언이 엇갈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확한 설명이 행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나 이번 스캔들이 불거져 나왔을 때 그가 취한 행동을 보면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식이다. 오히려 라이벌 세이와정책연구회를 이번 기회에 박살 내겠다는 흉중도 읽힌다. 하지만 3~4개월 동안 일본 정치는 이 스캔들로 공전하고 있고,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하고 있다.

지난 10일 교도통신이 발표한 지지율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월보다 4.4%p 하락한 20.1%로 최저치를 갱신했다. 비지지율은 64.4%로 전월 대비 5.5%p 상승했다. 보통이라면 내각 총해산을 해야 할 지지율이다. 정적 제거에만 골몰하다간 그 모든 책임을 자민당 총재인 기시다 총리가 뒤집어 쓸 수도 있다. 이번 자민당 뇌물 스캔들이 어떻게 결론 날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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