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5 11:56최종 업데이트 24.01.1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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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 도쿄 시사회 ⓒ 박철현

 
"우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무료 시사회가 12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됐다. 같이 간 아들은 제일 앞자리에 앉아 영화가 상영되기 전 속속 자리를 채우는 관객들 사진을 찍으며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아들이 지난해 같은 곳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8.18 김대중 추모식을 모두 참가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일 테다. 200석 규모의 대회의실이라 아무리 많이 모여도 빈자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날은 그렇지 않았다. 그야말로 만석매진 행렬에 관객층도 다양하다. 연세가 지긋한 재일동포부터 젊은 청년 뉴커머(Newcomer), 그리고 30% 정도는 일본인 관객이다. 어림잡아 220여 명이 '인간 김대중'을 알기 위해 빼곡히 들어찼다. 도쿄 상영위원회 김달범 대표 역시 "이렇게 꽉 찰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길위에 김대중> 도쿄 시사회는 어떻게 열리게 됐나
 

상영후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김대중재단 정광일 재외동포위원회 수석부의장(왼쪽)과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 ⓒ 박철현

 
지난 10일 한국에서 개봉된 <길위에 김대중>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공동체 상영, 무료 시사회 등의 이름으로 동시상영되고 있다. 2월까지 전 세계 17개국 45여개 도시에서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일본은 도쿄(12일), 오사카(13일)가 이미 끝났고, 오는 20일에는 도호쿠 센다이에서 개최된다. 도쿄 상영회를 직접 찾은 센다이 상영위원장 윤영수 도호쿠복지대학 교수는 "이거 도쿄에서 너무 많이 와서 부담감 백배입니다" 라며 웃음을 보인다. 

상영회를 여는 모든 지역이 다 그렇겠지만, 이번 전 세계 동시상영은 해당 지역 한인들이 준비한 것이다. 비용은 물론 지역 홍보, 상영회장 대여, 포스터 제작 등등 모든 것이 자원봉사로 행해진다. 이번 전 세계 동시상영을 기획한 김대중재단 재외동포위원회 정광일 수석부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이며, 특히 1970-8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타국에서 반독재 투쟁을 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해외 상영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무엇보다 'K-민주주의'가 뭔지 현지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생각에 <길위에 김대중>을 제작한 명필름 이은 대표와 프로듀서를 맡은 시네마6411 최낙용 대표는 흔쾌히 동의했고, 덕분에 전 세계 동시상영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영화는 1923년부터 1987년까지 김대중의 정치 인생은 물론 하의도에서 목포로 나간 유년기, 잘 나가던 해운회사를 왜 접고 정치로 투신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한다. 나아가 몇 번이나 낙선한 끝에 겨우 당선된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 다음 날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해 국회의원 등록을 하자마자 국회가 해산되어 버린 부분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그 후 운명처럼 펼쳐지는 '김대중 vs. 박정희' 구도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절정을 이루고, 박정희가 사라진 이후 등장한 전두환의 1980년 5월 광주학살은 김대중을 엄청난 곤경에 밀어넣는다. 신군부에 의해 내란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도 김대중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편지를 써 내려간다. 이른바 옥중서신이다. 당시의 일화를, 이번 도쿄 시사회에 참석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말한다.

"저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인연에 대해 1988년 평민당이 만들어졌을 때를 거론하시는데, 사실 저는 제가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게 교도관들이 DJ에 대해 말하는 부분과 태도였어요. 정말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며 말하는 모습에 놀랬었죠. 훗날 김대중 선생님이 미국에서 돌아와 평민당을 창당한다길래 바로 막내로 합류했습니다."

관객들의 탄성... "영화 보러 오길 잘했다"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 홍보 포스터 ⓒ 박철현

  
<길위에 김대중>은 김대중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현대사 축약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 두번의 군사쿠데타, 한일협정, 광주사건, 1987년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현장에 김대중은 반드시 등장한다. 그리고 항상 핍박을 받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버텨내지 못할 납치, 고문, 살해위협, 테러, 사형선고, 가택연금, 타의로 인한 망명… 도저히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를 불굴의 신념과 의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이겨내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도쿄에서 미용실을 경영하는 정성희(49)씨는 자신이 경상도 마산 출신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또래 경상도 사람들은 김대중은 빨갱이에 대통령병 환자, 아니 아예 전라도는 상종하지 말라고 완전 세뇌돼 살아왔다. 나도 지금 민주당은 지지해도 김대중에 대해선 잘 몰랐는데 오늘 정말 영화 보러 오길 잘한 것 같다. 독재정권이 그를 죽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을 줄은 몰랐고, 언론도 그것에 동조해서 계속 김대중을 비난한 거였다. 특히 우리 지역은 더 그랬던 것 같고. 마지막 장면은 정말 너무너무 감동적이고… 진짜 이 영화는 경상도 사람들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한편 제작사를 대표해 참석한 최낙용 프로듀서는 "이번 작품은 총 3부 구성"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길위에 김대중>은 평민당 창당 전까지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부는 이미 제작이 거의 완성됐고 살짝만 말씀드리자면 1987년 대선부터 1997년 대선까지를 다루고 있고, 그 이후는 3부에서 다룰 예정이다"고 덧붙인다. 본편의 러닝타임이 2시간 5분이니 전부 다 합치면 6시간에 달하는 그야말로 대작 시리즈다.

시사회의 폭발적, 아니 감동적인 반응과 여운은 뒤풀이로 이어졌다. 근처 식당을 통째로 빌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애창곡 '목포의 눈물'을 불렀고, 연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도 흘러 나왔다. 도쿄 한복판, 물론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였지만 50여 명이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가히 장관이었다.

아들마저 감탄하게 만든 김대중의 삶

돌아오는 길,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에게 감상을 물었다. 올해부터 중3 수험생이 되는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작년에 아빠 따라서 행사(5.18 기념식) 왔다가 군인들이 사람들 막 죽이는 영상보고 충격받았는데 그 사건이 오늘 본 다큐멘터리 주인공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일단 신기했고, 무엇보다 김대중이 진심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거. 아빠가 왜 김대중 선생님을 존경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고. 와… 정말 너무너무 뭐랄까 경의로운 존재? 사형선고를 그렇게나 많이 받았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진짜 믿어지지가 않아."

몇 번이나 혀를 내두르며 여전히 여운에 빠져 있는 그에게 "2부 개봉하면 보러 오겠네?"라고 묻는다. 아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당연하지! 무조건 봐야지. 이제 주인공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파트2를 안 보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비록 내가 수험생이긴 하지만 무조건 볼 생각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한겨울 찬 바람이 이날 밤만큼은 훈풍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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