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현대 문명의 상징 중 하나인 자동차는 아이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흉기 중 하나다. 자나깨나 불조심이 아닌, 자나깨나 차조심. 이것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문신처럼 새겨진 명제다.

주변을 살피기에 능숙할 수 없는 협소한 주어를 가졌기에 아이(I)다. 아이들의 시야는 오직 자신에게만 몰두해 있다. 그렇기에 존재 하나하나가 어떤 책 제목처럼 '어린이라는 세계'라고 불리며 그 안에서 쉽사리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어가 아이(I)에서 2인칭인 너(You)를 알고 그걸 합쳐서 1인칭 복수인 우리(We)를 만들 수 있고 3인칭 복수인 그들(They)에게 까지 도달할 수 있음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은 조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이 세계가 온통 쿠션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지 역동적인 움직임을 자랑한다. 이럴 때 이 어린이라는 세계에 가장 큰 균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교통사고다.

그래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가진 부모는 몇 개의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는지, 차가 얼마나 다니는지를 감각적으로 판단해서 최적의 안전한 동선을 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난입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이 손 절대 놓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마치 투사가 된 듯 몇 겹의 방패로 그들의 세계를 감싼다.

이런 의식 속에서 살아서일까, 아이가 처음 초등학교를 입학 했을 때 달리 보이던 풍경이 있었다. 그것은 학교 가는 길의 횡단보도마다 안전 깃발을 들고 차를 막아주는 '녹색학부모회'분들의 존재감이었다(본래 '녹색어머니회'였는데 '녹색학부모회'로 불리는 추세다).

이분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등하굣길 교통 안전 봉사를 통하여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하신다. 아이가 없을 때 이분들의 존재는 번거로움이었다. 빨리 지나가고 싶은데 안전 깃발로 가로 막을 때 마다 몇 초도 안 되는데 안절부절 마음이 급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입학 이후 이분들을 보니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가 학교까지 가는데는 총 4개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그 모든 곳에 이분들이 계셨다. 그건 마치 '횡단보도의 수호신'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등굣길 녹색 학부모회
 등굣길 녹색 학부모회
ⓒ 김정주(본인이 직접찍음)

관련사진보기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차가 달려 와도, 브레이크가 없는 듯 빠르게 달리던 차가 와도, 깃발로 막아서는 순간 그 앞에서 다소곳해진다. 그리고 '건너가세요'라는 말 한 스푼과 방긋 웃는 미소 한 스푼이 합쳐질 때 안전함은 폭발한다. 아이들이 건너는 모습을 넉넉하게 기다려주는 차들의 앞모습도 어쩐지 웃는 표정이다.

특별히 시니어 클럽 분들도 나와서 이 일을 도와주시는데, 아이 학교 앞 마지막 횡단보도에 계신 한 어르신은 한 명 한 명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고, 때로는 하이파이브를, 그리고 짧은 칭찬까지 해주셨다.

"인사를 그렇게 잘하다니 너무 멋쟁이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라", "아주 예쁜 사람이구나", "오늘이 제일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라" 등등.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아오셨길래 저런 행동이 가능한 건지, 잠시 차 한 잔 하면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였다.
 
등굣길 횡단보도 녹색 학부모회 시니어 클럽
 등굣길 횡단보도 녹색 학부모회 시니어 클럽
ⓒ 김정주(본인 직접찍음)

관련사진보기

 
등굣길 횡단보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어린이라는 세계와 어른이라는 세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장관이다. 어른이라는 확장된 주어를 가진 존재가, 아이들을 단단하게 지켜준다.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은 소위 부정적인 예를 건드릴 때 쓰인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서는 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꽤나 긍정적이다. 우리 사회가 등굣길 횡단보도의 확장판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이를 바래다주고 한참을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사람 사는 세상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는 마음껏 웃고 있었다.
 
등굣길 횡단보도
 등굣길 횡단보도
ⓒ 김정주(본인 직접찍음)

관련사진보기


태그:#초등학교, #등굣길, #어린이라는세계, #교통안전, #사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