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7 14:24최종 업데이트 24.03.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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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석열 한국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3자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위해 도착한 모습. ⓒ AFP=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18일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3국의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듯 하다. 3국에서 누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건, 어느 당이 제1당이 되건 한미일 안보협력이 자국 국익에 맞게 작동되는 시스템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성김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지난달 12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일단 3국간 협력 활동을 제도화하고 정말로 확고하게 구축하고 나면 3국 협력은 미국과 한국, 일본의 선거에 의해 영향받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제도화만 시켜놓으면 3국에서 어느 세력이 승리하건 캠프데이비드의 정신이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그런 제도화의 문제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직후에 나온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제니 타운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 등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됐다.

이들이 제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같은 인물이 또다시 나오기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정상회의 직후에 보도됐듯이,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차기 한국 정부는 윤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를 폐지하고 증대된 안보 관계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말로 윤석열 정부 이후를 염려했다.

한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 25일, <뉴욕타임스>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반감은 오랫동안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의 약한 고리가 돼왔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한일관계의 추가 해빙을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국 세계 전략의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를 미일의 뜻에 맞게 작동시키는 윤 대통령이 종신제 총통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제도화의 필요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하게 되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7일자 <미국의 소리> 한국어판에 따르면, 제도화를 실현시킬 방안으로 마크 그린 윌슨센터 대표는 사무국 설치를 제안했다. 한일 역사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람 이매뉴얼 주일미국대사는 지난해 12월 5일에 한미일 협력을 3국 DNA에 내장시키는 문제를 언급했다. (관련기사: 2023 한일 역사문제 10대 사건... '한국의 DNA를 조작하는 사람들' https://omn.kr/26vrl) 이 정도가 돼야 한국 선거에 관계없이 자국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미국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국 선거와 관계없는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를 희망하는 것은 한국 선거에 개입하기 힘든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선거에 개입할 힘이 있었다면 사무국 설치니 DNA 내장이니 하는 말들을 운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선거에 개입해왔던 미국
 

<동아일보> 1997년 10월 15일자 보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한국 선거를 좌지우지하기 힘든 지금의 미국이 볼 때, 꿈만 같았던 일들이 과거에는 많았다. 한국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 지금보다 훨씬 용이하게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 했던 것이다.

1993년에 발생한 제1차 북핵위기를 1994년에 제네바합의로 봉합한 미국은 그 뒤 북한과 미사일 협상 및 미군유해 송환협상을 벌였다. 1996년 4월 20일 자 <동아일보> 5면 우단에 보도된 것처럼 빌 클린턴 행정부는 비밀리에 수교 협상도 진행했다.

그랬던 미국이 1996년 4·11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갑자기 대북 긴장을 고조시켰다. 위 신문의 그달 10일 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19일로 예정된 미사일 협상을 중지하거나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9일자 <교도통신>을 통해 내보냈다.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운운함과 동시에 미국이 북미 협상을 연기하는 모습은 보수냉전세력인 신한국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앞서 20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미국은 총선 전까지 북미대화를 자제해달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을 수용했으나 한국 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북미대화의 물꼬를 토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미국이 여당의 선거를 위해 북미 간의 긴장 모드를 일시적으로 조성해 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1995년 10월 1일 자 <경향신문> 1면 우하단에 보도됐듯, 4·11총선 7개월 전인 1995년 9월 29일(워싱턴 시각)에 미국은 '평양 외교단지에 미국 연락사무소를 입주시킨다'는 합의를 북한과 체결했다. 그해 12월 6일에 신한국당으로 개칭될 민주자유당(민자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미국은 북한과의 이 합의도 연기했다.

1997년 10월 13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 근거한 이틀 뒤의 <동아일보> 2면 좌하단 기사에 따르면, 북·미가 연락사무소 개설에 합의한 직후인 1995년 10월에 김영삼 정부는 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을 통해 미국에 부탁을 했다. '매우 어려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미국이 총선 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면 민자당이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게 된다'는 취지였다.

연락사무소 개설을 연기해 달하는 이 요청에 대해 토마스 허바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때는 한국의 국내 정치적 여건을 감안하겠다"는 비밀 약속을 해줬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약화시키겠다는 이 약속은 연락사무소 설치를 아예 무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 정부 때의 두 사례는 1990년을 전후한 세계적 탈냉전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던 시절에 일어난 일들이다. 미국의 입김이 훨씬 강했던 냉전시대에는 미국의 총선 개입이 한국의 운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다.

1948년 3월 3일 자 <동아일보> 1면 상단에 따르면, 존 하지 군정사령관은 제1대 총선을 5월 9일에 실시한다는 특별성명을 3월 1일에 발표했다. '5월 10일 선거' 계획은 5월 9일이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5월 10일 선거'로 바뀌었다.

선거일이 이처럼 5월로 정해진 상태에서 미군정은 3월 22일의 군정법령 제173호를 통해 제한적인 농지개혁을 실시했다. '유상 몰수, 유상 분배'에 기초해 일본인 농지를 불하하는 이 조치는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주장해온 좌파 정치세력을 약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조치를 기반으로 이승만 정권은 그해 8월 15일의 정부수립 이후에 농지개혁을 추가로 진행했다. 보수세력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이런 농지개혁은 한국 좌파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 한국 선거에 대한 미국의 개입 중에서 이처럼 강력하고 지속적인 효과를 낳은 사례는 드물다.

오늘날의 미국은 1948년 총선은 물론이고 1996년 총선 때의 개입도 관철시키기 힘들다. 한미 양국의 역학관계가 그만큼 달라져 있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은 선거 개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한국을 한미일 삼각 협력에 묶어두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윤석열 정권이 힘을 잃는다 해도 한국을 한미일 안보협력 안에서 단단히 묶어놓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남의 의사를 조작하는 것 못지않게 나쁜 것은 남의 의사를 무시한 채 남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의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한미일 협력을 제도화하겠다는 움직임은 한국인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한국의 대외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주권 침해적 발상의 표현이다.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이 같은 태도에 경종을 올리는 길은 한국 선거와 관계없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제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표시하는 것이다. 한국의 운명은 일차적으로 한국인들의 의사표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미국에 명확히 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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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4.10 총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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