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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2023, 신지영, 김정연, 김예나, 문현 옮김, 갈무리) 표지이다.
 실비아 페데리치(Silvia Federici)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2023, 신지영, 김정연, 김예나, 문현 옮김, 갈무리) 표지이다.
ⓒ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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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마녀사냥'이 몇백 년 전에 있었던 옛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는, 최소한 21세기에는 비유적 표현으로만 사용된다고 여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마녀사냥' 정의가 이를 잘 보여준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마녀사냥'을 두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14세기에서 17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교회가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하여 화형에 처하던 일"이라고 규정한다. 이 규정 다음에는 "18세기 무렵부터 계몽 사상의 영향으로 없어졌다"라는 문장이 붙어 있다. 두 번째 정의는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들은 그 젊은 여성을 집으로 데려간 뒤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구타가 시작됐다. 가해자들 가운데 한 명이 "너는 마녀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여러 명이 달려들어 26세 여성의 배, 가슴,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폭행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피해 여성은 머리채를 잡힌 채 밖으로 끌려 나왔다. 가해자들은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질질 끌고 마을을 가로지른 다음 사원 옆에 버렸다."
(뉴욕타임즈, 2023년 5월 13일, 수하지니 라즈(Suhasini Raj), <인도는 '마녀사냥'이라는 오래된 재앙을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일부)
 
2021년 인도 동부 자르칸드 주에서 두르가 마하토(Durga Mahato)가 당한 일이다. 조금 더 최신 뉴스도 있다. 2024년(올해) 2월 19일 뉴욕타임즈에는, "UN 전문가들은 2022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젠더 기반 여성 살인이 2만 건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실제 발생 건수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보았다"라는 기사가 실렸다(2024년 2월 19일, 뉴욕타임즈, 압디 라티프 다히르(Abdi Latif Dahir), <끔찍한 여성 살해에 충격받은 아프리카 활동가들, 변화를 요구하다>).

인도나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규모나 구체적 사건 내용이 조금씩 다를 뿐, '마녀사냥'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폭력 현상이다. 2014년 7월 4일 뉴욕타임즈에 실린 호로위츠의 칼럼이 사실의 일부를 드러낸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프리카, 태평양과 남미, 심지어 미국과 서유럽의 이민자 사회에서도 마술 혐의로 공격당한 피해자들이 급증했다. 유엔 난민과 인권 기구 연구자들은 마녀로 지목돼 살해당한 사건이 매년 수천 건에 달한다고 했다. 구타와 추방 사건은 수백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즈, 2014년 7월 4일, 미치 호로위츠(Mitch Horowitz), <21세기식 마녀 살해> 일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쟁인 마녀사냥 

 
2017년 2월 4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트럼프 정권의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 집회 시위 사진이다. 참가자 한 명이 “우리는 불타지 않은 마녀의 후손들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105쪽에도 같은 사진이 실렸다. https://lrl.kr/E8sA
 2017년 2월 4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트럼프 정권의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 집회 시위 사진이다. 참가자 한 명이 “우리는 불타지 않은 마녀의 후손들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105쪽에도 같은 사진이 실렸다. https://lrl.kr/E8sA
ⓒ Paul Sab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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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페데리치가 쓴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마녀사냥'이 어느 날 우연히 '미신'이나 종교적 원인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깊게 탐구하고 원인을 파헤쳐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중요한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이 '사유화', 몸뚱이 밖에 가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마르크스(Marx)가 <자본론>에서 말한 '시초 축적'과 연관돼 있으며, 그 현상은 훨씬 더 냉혹하면서도 은밀하게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은 경제와 사회를 사유화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 41쪽)

"…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16세기와 17세기에 이르면 반 이상의 마녀재판은 속인인 치안 판사가 주재했고 재판을 조직하고 재정적 대가를 치른 것은 시(city) 정부들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자본가 엘리트가 그들의 사회개혁 프로젝트와 더 엄격한 노동 규율의 도입을 추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그들의 눈에 여성의 섹슈얼리티란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책, 63~64쪽)
 
자본주의 초기, 권력과 자본은 오랜 기간 폭력과 제도를 통해 '공장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처럼 보이게 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 과정이 '마녀사냥'에도 적용됐다. 미셸 푸코(Foucault)식으로 말하면, 권력과 자본은 노동자다운 '품행'을 만들었듯이, '여성스러운 품행'을 만들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라는 '인클로저(enclosure)'는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공간을 누군가 '사유화'하고 다수를 배제하는 과정이다. 울타리를 치고, 경계를 나누는 일은 비단 공간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성별과 세대를 가르고, 개인과 개인을 나누어 서로의 이익을 챙기는 전쟁터를 만들었다. '마녀사냥'은 그 과정에서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 전쟁의 모습을 띠었다.
 
"자본주의적 노동 재편이 기대고 있는 노동의 성별분업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주체'가 되도록 그녀들은 '문명화'될 필요가 있었다. 마녀사냥은 유럽 여성이 새로 강제된 사회적 책무를 받아들이게 했다. 또한 유럽의 '하층계급'에 엄청난 패배감을 안겼다." (책, 72쪽)
 
최근 한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고 있다. 성 평등주의자를 의미하는 페미니스트(feminist)가 비난의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주위에는 경쟁자만 존재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남성들이 여성 혐오에 뛰어든다.

혐오는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유럽, 오늘날 아프리카와 남미, 인도 등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은 자본과 권력의 '큰 그림'에 갇힌 이들이 벌이는 '여성 학살(페미사이드 feminicide)'이다.

'마녀사냥'은 누군가에게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준다. 조금 더 넓게, 여성에 대한 공격도 마찬가지다. '마녀'를 찾아내 불태워야 한다고 선동하는 이들이 노리는 것은 결국 사회적 약자들의 분열일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수의 연대이다. 글로벌 거대 기업 삼성이 그토록 오랫동안 노동조합을 파괴하려고 애썼던 이유가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 때문만은 아니다(삼성그룹은 노조 설립과 활동을 회사 차원에서 방해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난 16일 1심에서 패소했다).
 
"마녀사냥의 귀환에서 배우는 교훈은 이런 형태의 박해가 역사상의 어떤 특정한 시대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박해는 자체의 생명력이 있어서, 배척당하고 비인간화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라면 어디에서든지 동일한 메커니즘에 따라 생겨날 수 있다. 마녀라고 고발당한 사람들-여전히 주로 여성들인데-을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데 혼신을 다하는 괴물로 둔갑시켜 동정하거나 연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로 만들기 때문에, 마술 고발이야말로 궁극의 소외와 배제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책, 161쪽)
 
모든 사회문제가 그렇듯, 기억과 연대가 중요하다. '마녀사냥'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녀사냥의 역사와 논리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는 마녀사냥의 다양한 방식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책, 165쪽).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도 그런 '노력'의 한 장면이다. 장면이 쌓이다 보면 경쟁과 배제로 만들어진 사회 체제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지은이), 신지영, 김정연, 김예나, 문현 (옮긴이), 갈무리(2023)


태그:#페데리치, #실비아페데리치치, #우리는당신들이불태우지못한마녀의후손들이다, #마녀사냥,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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