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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보건복지부는 벼랑 끝 필수의료를 살린다는 명목 하에 4대 개혁 정책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추후 보건의료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배포한 보도자료의 첫 장에 정책의 목적이 언급되었는데, "국민 누구나 필요할 때 가까운 곳에서 안심하고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내용을 축약해 보면 정책적 개혁을 통해 필수의료를 살려서 국민의 의료접근성 및 의료의 질 모두를 개선한다는 것이 정책의 골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책의 목적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필수의료란 무엇인가'이고 두 번째는 '그러면 필수의료를 살린다면 의료접근성과 의료의 질이 개선될 수 있는가'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필수의료란 무엇인지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필수의료란 무엇일까요? 필수의료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는 아닙니다. 필수의료라는 말을 주로 언급하는 단체인 의료정책연구원에서 제시한 필수의료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

자 그러면 병원에 있는 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봅시다. 내외산소로 흔히 불리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는 필수의료에 포함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에 직결되는 뇌와 심장을 다루는 신경외과와 흉부외과 역시 마찬가지죠. 뇌를 다룬다는 점에서 신경과 역시 필수의료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친숙한 과들인 안과와 성형외과는 어떨까요? 녹내장과 백내장은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으로 이어지는 질병입니다. 실명은 심신에 중대한 위해라는 것에 두 말할 필요가 없으니 이를 치료하는 안과는 필수의료로 볼 수 있겠습니다.

얼굴에 충격이 가해져 골절이 생긴 경우 혹은 상처가 생긴 경우에는 미세한 근육이나 신경이 다쳐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표정을 짓지 못하거나 눈물이 안 흐르게 되거나 얼굴에 감각이 없어지는 등의 일이 생길 수 있는데요, 역시 이것도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된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치료하는 성형외과 역시 필수의료로 볼 수 있겠습니다.

위의 몇 가지 사례가 전부가 아닙니다. 소변이 나오는 길이 막혀 신장에 소변이 쌓이면 신장 기능이 망가져 투석을 해야 하는데 이를 뚫어줄 수 있는 비뇨기과 역시 필수의료로 볼 수 있겠습니다. 마취통증의학과 없이는 큰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마취통증의학과 역시 필수의료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물질로 막힌 기도를 뚫어내는 이비인후과는 또 어떨까요? 역시 필수의료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부러진 뼈가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재생할 수 있게 해주는 정형외과 역시나 없으면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합니다.

이렇듯 모든 과는 어느 한 시점에는 생명과, 적어도 심신의 중대한 위해와는 마주치게 됩니다. 환자를 만나지 않는 병리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또한 앞서 말한 필수의료로 분류할 수 있는 과들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필수의료가 아닌 (편의상 비필수의료라고 칭하겠습니다) 의료서비스가 있을까요? 앞서 살펴보았던 과라는 큰 단위가 아닌 서비스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가슴성형은 비필수의료일까요? 유방암 환자가 가슴을 이루는 지방을 전부 절제하는 경우 유방 보형물을 통해 원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유방암 환자의 입장에서 가슴성형은 필수의료가 될 것입니다. 피부미용은 비필수의료로 볼 수 있을까요? 선천성 거대모반증 등으로 얼굴에 큰 점이 있는 경우나 큰 상처가 나 흉이 생긴 사람들에게 과연 피부미용은 비필수의료로 보일까요? 이들에겐 피부미용이 필수의료일 것입니다.

병원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두 번, 아니면 한번도 가지 않을 장소입니다. 그러나 어떤 누군가는 백여 번을 넘게 갈 수도 있는 장소입니다. 필수의료라는 단어의 정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뇌성마비 환자도, 유방암 환자도, 선천성 거대모반증 환자도 국민입니다. 모든 의료는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나에게는 필수의료로 비치지 않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심신의 중대한 위해를 막아주는 의료서비스가 있습니다.

의료는 다수결이 아닙니다. 백명 중 한 명, 십만명 중 한 명이라도 그 사람에게 필수의료라면 결국 그 의료서비스는 필수의료인 것입니다. 필수의료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해당되지 않는 것 같은 의료서비스를 뒷전으로 한다면 그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수의료가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필수의료라는 허상의 틀이 아닌 모든 의료를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필수의료라는 단어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의료시스템은 누군가에게는 필수의료입니다. 

태그:#필수의료, #의료,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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