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 4학년 휴학 중인 둘째 딸과의 대화다. 딸은 컴퓨터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굳이 알바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 시간에 자격증이나 학과공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용돈 받아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엄마 아빠 모르게 사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한두 달씩은 할 필요가 있어."

"아니, 지금 알바 시급은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을 것인데. 최저임금 봐 바라. 괜히 고생만 하고 그러는 거 아닐까."
"아니던데. 지금 있는 OO가게는 사장님이 시급을 1만1000원 정도 주고 있어서 괜찮은 거 같은데..."


아빠는 딸과 대화하면서 학과공부와 취업과의 상관성, 최저임금과 알바시급과의 관련성을 복합적으로 고민하면서 잔소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딸에게 밥벌이의 고단함과 숭고함을 말하기 전에 딸의 등이 먼저 보였다. "그니까. '취업'은 언제나, 어떻게..."라는 문장은 오늘도 꺼내지 못했다.

최저임금제의 복잡한 민낯
 
2024년도 최저임금이 9천860원으로 결정됐다.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 모니터에 표결 결과가 게시되어 있다. 박준식 위원장(왼쪽 두번째)을 포함한 공익위원들이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
 2024년도 최저임금이 9천860원으로 결정됐다.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 모니터에 표결 결과가 게시되어 있다. 박준식 위원장(왼쪽 두번째)을 포함한 공익위원들이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정치적 좌표나 경제적 상황에 따른 이해관계와 견해대립이 첨예하다. 불행하고 불편한 논쟁이다. 특히 소규모 자영업자인 사용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결장이 돼버린 것은 심히 유감인 상황이다. 비정규직의 애환과 최저임금의 금액을 둘러싼 공방과 진실 속에서 승자는 없다. 논쟁을 지켜보는 이들도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제'는 1988년도부터 시행됐다. 헌법 제3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8월 5일까지 결정해 지체 없이 고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의 적정한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상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최저임금의 상승과 노동시장에서의 고용 감소는 반드시 비례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부담은 역시나 경제적 약자일수 있는 영세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에게 집중된다. 왜냐하면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의 95%는 이들이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향상(증가율)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생산성 증가보다 높은 임금은 노동 구조 개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근로자 구조의 변동은 소득이 낮은 저숙련 노동자에게 대부분 불리한 상황을 제공한다. 최저임금은 대략 334만 명의 저소득 노동자가 적용 대상이 된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자칫 최저임금제도로 보호하려는 밑바닥 일자리들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다.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022년 기준 법정 최저임금액인 916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은 전체 중 12.7%였다. 영세적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29.6%, 농림어업이나 숙박 및 음식점 업에서는 그 비율이 30%를 넘었다. 결국 근로환경이 열악하고 약자일수록 제도는 현실과 유리된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상적인 기준보다는 사회적인 합의를 전제로 실현가능한 최저임금을 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지킬 수 있도록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은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을 위하면서도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최저임금 결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근거해 합리적인 최저임금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회생변제계획안에서 읽히는 (최저)생계비

'최저생계비'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을 비롯한 각종 사회복지 수급자 선정 및 급여 책정의 기준이 된다.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소득이 120~150% 이하에 머물 경우 차상위계층으로 분류해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경제적 상황이 계급이 되는 사회적 현실에서 최저생계비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환경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경제적 파탄에 이른 채무자들에게 최저생계비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기도 하다.

한계채무자들의 고민은 개인파산이냐 개인회생이냐의 문제로 시작된다. 이는 계속적 수입과 가용소득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채무자의 연령이 많을수록 개인파산으로, 더 젊을수록 개인회생으로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회생절차는 정기적, 계속적으로 생계비를 초과하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인 개인채무자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생변제계획안은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한 채무자가 자신의 가용소득 전부를 투입하여 얼마동안 어떤 방법으로 채권자들에게 채무금액을 변제하여 나가겠다는 내용으로 계획을 세운 것을 말한다. 가용소득은 채무자의 계속적 수입을 전제로 해 산정한 소득에서 채무자 및 그 피부양자의 생계비를 공제한 금액이다.

생계비를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공제하는가 여부에 따라 채권자들의 몫과 채무자와 그 가족들의 생활수준이 결정된다. 여기서의 생계비는 채무자와 피부양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 채무자회생법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 피부양자의 연령과 수, 거주 지역, 물가상황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2023년 개인회생 신청 시 최저생계비 인정기준은 1인 가구 124만6735원, 2인 가구 207만3693원, 3인 가구 266만890원, 4인 가구 324만578원 등이다. 이는 대략 중위소득의 60% 이내에서 결정된다.

회생위원들이 회생변제계획안 검토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생계비 산정이다. 생계비 산정 규모에 따라 채무자의 기본생활 유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법률의 고려사항 외에도 계속되는 물가상승 등의 경제상황까지도 반영해서 산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기준 중위소득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주거비나 의료비, 교육비나 양육비 등의 추가 생계비 인정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7월 14일 서울회생법원 안의 모습. "개인회생" "파산면책" 등 안내푯말이 있다.
 2022년 7월 14일 서울회생법원 안의 모습. "개인회생" "파산면책" 등 안내푯말이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빈곤의 사회학, 생존의 희망 리포트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는 약자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나, 그 결정은 강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 삶의 딜레마는 이러한 결정 과정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그 기준은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인가? 실제 한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수입과 지출비용일까? 누군가의 밥벌이와 생존이 힘 있는 자들의 정치적인 타협과 이해관계의 산물은 아닐까?

누군가 최저임금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주장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자본주의적 일상이다. 서로의 사정과 처지가 다른 까닭에 공감을 주고받기가 쉽지 않다.

결국,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윈윈 게임 설정과 상생 전략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상생시스템 설계의 문제는 정치공학의 과제다. 상생환경 조성이 정치의 숙명적 역할임에도 우리의 정치는 제로섬의 프레임을 조장하는 비겁함이 득세한다. 역시나 비통한 이들을 위한 정치는 요원한 걸까.

"우리나라 상인들은 동물보호법의 동물만큼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이 떠오른다. 상인인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정치가 먹고 사는 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법과 제도마저도 시민의 밥벌이와 동떨어져 만들어지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이다. 기업이 큰 돈 빌린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주고, 시민이 먹고 살아가야 할 작은 돈에 관해서는 악착같이 갚으라는 시스템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치나 제도라고 부를 수 없다. 시민의 삶과 멀리 떨어진 정치적 저의(底意)에 깊은 회의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퇴근길.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에서 어떤 시청자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사연을 읽어주는 DJ의 음성에는 흐뭇함과 따뜻함이 묻어났다. 40대 후반의 어느 집 가장의 얘기였다.
 
"저에게 오늘은 제2의 생일 같은 날입니다. 몇 년 전 회생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하고나서 3년의 변제기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녁에는 가족들과 모처럼 치킨·피자 파티를 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아이들에게도 더 신뢰가 가는 아빠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신청곡은 추가열의 '행복해요'를 부탁합니다."(신청자의 사연)

"이 사연을 읽어주는 제가 다 뿌듯하네요. 가족 분들과 부디 따뜻한 저녁, 행복한 일상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어려운 사정을 헤치고 다시 일어서신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이 노래처럼 우리 모두 행복해요."(응원하는 DJ의 멘트)
 
 
개인회생 신청으로 채권자들에게 3년간 변제를 끝낸 어느 아빠의 각오와 다짐이었다. 아마도 변제기간 중에서는 최저 생계비에 가까운 생활비로 살다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던 간식도, 가족들끼리 외식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마음 졸이며 최소한의 생활비로 몇 년을 살았을까. 경험하지 못한 사정이라 공감하기 쉽지 않겠지만, 개인회생이 끝난 해방감은 날아갈 듯 하지 않을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뭉클함이 밀려왔다. 부디 든든한 아빠로 남편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시라!

"살아있어 행복해, 살아있어 행복해~~~" 노랫말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저녁이었다. 치킨에 거품 넘치게 맥주도 한잔 드시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저임금, #최저생계비, #회생변제계획안, #회생파산, #행복해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