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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신속한 공포와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염원 이태원참사 유가족 침묵의 영정 행진 전 기자회견의 모습이다.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신속한 공포와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염원 이태원참사 유가족 침묵의 영정 행진 전 기자회견의 모습이다.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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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59명의 '영정'을 품고

17일 오후 1시 59분, 10·29이태원참사(아래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서울시청 광장 분향소에 비치된 영정을 내렸다. 지난해 2월 4일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위해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영정을 들고 서울시청 광장까지 행진했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가족들은 영정 속 소중한 이의 얼굴을 쓰다듬었고, 다시금 영정을 품고 얼음비 내리는 거리로 나서야 하는 참담한 현실에 억눌러왔던 눈물을 훔쳤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유가족·종교인·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참사특별법(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약칭)의 신속한 공포를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침묵의 행진에 나섰다.

이태원참사에서 '영정'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참사 직후 윤석열 정부는 국가애도기간(2023.10.30.~11.4)을 선포했고, 대통령은 연일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조문을 했다. 유가족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꾸려진 정부 주도 분향소에는 국화꽃만 빼곡히 채워졌을 뿐, 희생자의 영정과 위패는 없었다. 이는 참사 발생 24일 만에 열린 유가족들의 첫 기자회견(2022.11.22)에서 강력한 항의에 부딪혔다. 기자회견장에서 유가족들은 영정과 스마트폰에 간직했던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역대 어느 정부에서 영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를 설치했느냐"라며 분노를 쏟아냈다.

2022년 12월 15일(참사 발생 48일 후), 유가족은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다. 유가족들은 분향소에 일부 영정을 안치하며 "이제부터 진짜 추모와 애도를 시작하겠다"라고 밝혔다. 참사 직후 자리가 없던 영정은 유가족과 시민들의 기억과 애도를 통해 사회에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유가족이 꾸린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규정하며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한편 2023년 1월 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참사의 핵심 기관인 서울시, 경찰청, 행정안전부 등의 '윗선' 인사들에 대해 한차례 소환조사도 없이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더하여 서울시는 참사 100일을 앞두고 유가족과 시민단체에서 추진한 시민추모대회의 광장 사용을 불허했다. 분향소 또한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옮길 것을 종용하였다. 시민들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그렇게 영영 잊히는 애도를 주문한 것이었다.

유가족이 바라는 참사의 진상 규명은 더디기만 했고, 참사의 책임은 고위공직자를 비껴갔다. 반면, 사회적 애도를 위한 추모공간은 철거 위협에, 시민추모대회는 불허를 통보받아야 했다. 참사 100일이 지났어도 사회적 애도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유가족들은 녹사평역에 안치된 영정을 꺼내 가슴에 품고 거리로 나섰다. 서울시청에 다다랐을 때, 유가족과 시민들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를 '불온한 것'으로 치부했던 서울시의 턱밑에 추모분향소를 설치하였고, 영정을 안치했다.

유가족에게 '영정'은 소중한 가족과 분리돼버린 세계에 희생자의 존재가 잊히지 않도록 해주는 상징이었다. 시민들은 영정을 바라보며 희생자와 조우했고,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었다. 영정은 유가족과 시민들을 연결하며 사회적 애도를 실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은 진상규명을 통해 희생자·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겠다는 약속을 나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사회적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 단추였다. 하지만 9일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곧바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거부권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신속한 공포와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염원 이태원참사 유가족 침묵의 영정 행진을 위해 영정이 내려진 분향소의 모습
 10.29이태원참사특별법 신속한 공포와 독립적 조사기구 설립 염원 이태원참사 유가족 침묵의 영정 행진을 위해 영정이 내려진 분향소의 모습
ⓒ 이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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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특별법 즉각 선포' 간절함 담은 침묵 행진

서울시청 광장에서 용산 대통령집무실까지 유가족·종교인·시민들은 159명의 영정을 들고 침묵 행진에 나섰다. 행진 참석자들의 요구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국회에서 통과한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대통령이 즉각 선포하라는 것,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하여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었다. 행진 전부터 내리던 싸라기눈은 점점 두껍고 거세졌다. 영정 속 희생자의 사진에 물기가 맺혔고, 액자 틀에 눈이 쌓였다. 참가자들은 연신 영정을 닦아내며, 축축하게 젖어버린 눈길을 걸었다. 신발에 닿은 눈이 녹아 물먹은 발이 겨울 추위에 시리었다.

참사 발생 438일 만에 국회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참사 특별법 마련을 위해 한여름 장대비에 젖은 몸을 일으키며 삼보일배를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에서 응답이 없자, 유가족들은 곡기를 끊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국회는 그제야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고, 유가족들은 10일 만에 단식을 멈출 수 있었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살을 베는 영하의 추위에서도 유가족들이 얼음장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온몸을 던지는 오체투지에 나섰던 이유는 여야의 협의와 합의를 통해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제정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밝히려는 노력이 제도권 내의 정쟁으로 소비되어 희생자, 피해자, 그리고 유가족을 향한 사회적 혐오가 생산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가족들은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데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으리라 믿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통과가 세 차례나 미뤄지면서 원안에서 수정이 거듭되었다. 그때마다 가족들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다. 마지막까지 여야의 협의를 통해 수정된 법안은 조사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을 3개월로 단축했고,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도 삭제했다. 조사에 응하지 않았을 시의 제재 또한 형벌에서 과태료로 완화했다.

조사위원회의 경우 원안 5인이었던 상임위원을 3인으로 줄였고, 구성 또한 여당 4인, 야당 4인, 국회의장 3인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유가족 몫의 조사위원 추천권도 삭제했다. 이는 2014년 세월호특별법(4ㆍ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가 총 17인의 조사위원으로 구성되고, 그중 희생자가족대표회의에서 3인을 선출했던 전례와 비교하자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여야 합의를 통한 독립된 조사기구가 설치될 수만 있다면 이마저도 양보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가 된다며 법 시행일까지 총선 이후인 4월 10일로 박아두자는 여당의 요청마저 수긍했다.

하지만 끝내 여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집단 퇴장하였다. 결국 특별법은 177명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었다(국민의힘 소속 권은희 의원은 유일하게 자리를 지켜 특별법을 찬성하였다). 여당은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여당 인사들은 "더이상 조사할 게 없다", "무소불위 권한을 가진 이태원 특검", "참사를 정략적으로 악용"한다며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훼손했고, 유가족 가슴에 대못 박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18일 오전 여당은 의총을 통해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대통령에게 건의할지 결정한다.

가장 아픈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이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은 황망하게 작별한 가족을 생각하며 터져 나오는 슬픔을 삼켜야 했다. 진실과 정의가 뒤집히는 국가에서 유가족들은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 정치라면, 대통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해 온몸을 던져 말했던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참사의 고통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담아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당이 그토록 걱정하는 '참사의 정쟁화'와 '국론 분열'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희생자·유가족·종교인·시민들의 시선이 용산 대통령집무실로 향했다. 소리 없는 간절함이 사람들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태그:#이태원참사, #이태원참사특별법, #침묵의영정행진, #서울시청광장, #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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