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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겨울, 구순 노모의 간절한 새벽 기도

한 어머니가 있다. 올해로 구순(90세)이 됐다. 백발의 노모는 언제 이승을 떠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5시면 교회로 향한다. 차가운 겨울눈을 맞으며, 빙판길을 조심조심 간절한 마음으로 걷는다. 적막이 흐르는 교회 의자에 홀로 앉아 생애 마지막 소망을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어린 시절부터 집안이 어려워서 힘들게 살았어라. 하지만 우리 아들 재홍이 삐뚤어지지 않고, 효도하며 잘 커 준 착하디 착한 아이였지라. 이제 나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라. 죽기 전에 단 한 가지 소원은 우리 재홍이 다른 사람들 도와줄라고, 이것저것 하다가 억울하게 회사에서 쫓겨났다는데, 다시 웃는 얼굴로 '엄니 나, 다시 회사 들어갔어라.' 그 소리 한번 듣고 저세상으로 가는 것뿐이어라.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제발 들어 주씨요."
 
  구순 노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김재홍 전 군산지회장  구순 노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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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1월 9일과 12일 두 차례,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2018년 폐쇄된 군산공장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재홍 전 지회장(1971년 출생, 1996년 입사)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창밖으로 솜사탕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군산에서 아내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는 구순 노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어머니의 새벽기도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군산공장 폐쇄

"2018년 당시 저는 조합원 1600여 명과 사무직원,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2500여 명이 일하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지회장이었습니다. 잊지도 못합니다. 2월 13일 오전 9시쯤, 군산공장 본부장이 잠깐 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겠거니 생각하고 혼자 찾아갔습니다. 그 자리에 아무 연락도 없이 인천에서 내려온 부사장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사장은 처음으로 오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본사에서 전달됐고, 곧 언론에 보도될 거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날 언론보도를 통해 5월 말 군산공장 폐쇄 소식을 접한 조합원들은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코앞에 둔 때였다. 
 
  갑작스런 군산공장 폐쇄 소식에 조합원들이 항의 집행을 하고 있다.
▲ 2018년 군산공장 조합원 집회  갑작스런 군산공장 폐쇄 소식에 조합원들이 항의 집행을 하고 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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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 기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조합원들과 함께 공청회도 하고, 서울에서 카젬 한국GM 사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공장을 폐쇄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지회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모든 대안을 열어 놓고 협상에 임할 각오가 돼 있다고까지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카젬 사장은 폐쇄 결정은 미국 GM 본사의 결정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군산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삭발을 비롯한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 김재홍 전 지회장  군산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삭발을 비롯한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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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을 막지 못한 책임, 지금도 자책"

그는 언론보도 후부터 조합원들과 함께 거리로, 인천으로, 국회로, 청와대 앞으로 향하며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단체를 찾아다녔다. 투쟁을 병행하며 군산공장 폐쇄만은 막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회사는 최초 희망퇴직자가 미달하자 조합원들에게 한 차례 더 우회적으로 희망퇴직을 강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전 지회장은 당시 '기한 내에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위로금도 받을 수 없다'라는 말들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3월 2일 수백 명의 조합원들이 희망퇴직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공장으로 찾아왔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폐쇄를 막지 못한 모든 책임은 아직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산공장 폐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 김재홍 전 지회장  군산공장 폐쇄를 막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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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친한 분들에게 전화 오면 희망퇴직은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재홍이 네가 내 가족과 일자리를 꼭 지켜준다고 약속하라'고 언성을 높이며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힘들어도 남아서 함께 싸우면 반드시 희망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썰물처럼 나가는 분들을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조합원들에게 미안합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투쟁할 건데…"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재홍 전 지회장과 남겨진 사람들의 투쟁은 계속됐다. 2018년 4월 18일 임단협 10차 교섭에서 회사는 무급휴직 5년, 21일 13차 교섭에 4년 무급휴직을 수정 제시했다. 이에 그는 군산공장 조합원들의 대표로서 교섭장에서 분노했고, 몸부림쳤다. 이후 교섭장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통로에서 홀로 울분을 표출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4월 26일 언론에 크게 보도된 산업은행과 한국지엠 경영진 간의 원문이 공개되지 않은 경영정상화 합의 내용(정부와 GM이 총 7조6000억 원 투입. GM 63억 달러(약 6조8000억 원), 산업은행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 원) 부담, 한국지엠 생산시설 10년 이상 유지 등)에 군산공장 폐쇄 철회 문구는 없었다.

고통은 끝났고, 아픔은 치유되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미래로 가는 길에 군산공장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김재홍 지회장은 함께 갈 수 없었다. 회사 측은 그에게 2018년 7월 5일 '기물 파손 및 사내 폭행으로 인한 규율 질서 문란'이라는 사유로 해고를 최종 통보했다.

안타깝게도 17.02% 한국지엠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도, 고용노동부도, 법원도, 조합원들의 절박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몸부림쳤던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한국지엠에서는 2018년 한 해 동안 군산공장 폐쇄 이후 경영정상화 합의 전까지 노사 간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다수의 노동조합 활동가에 대한 법정 소송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김재홍 지회장은 해고됐다. 
 
2018년 회사가 제시한 무급휴직 주요 내용
▲ 합의서 2018년 회사가 제시한 무급휴직 주요 내용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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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폐쇄 이후 살아남은 조합원들의 순탄치 않았던 삶

지나온 시간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떠났던 사람들, 모두에게 시련의 시간이었다. 김재홍 지회장은 4월 26일, 군산공장 688명 조합원의 3년간 무급휴직을 한국지엠 전체 조합원들의 민주적인 선택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급휴직 기간 조합원들은 대부분 일거리를 찾아서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어떤 이들은 군산에서, 부평에서, 안타깝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군산에서 부평으로 홀로 거처를 옮긴 기러기 아빠들은 이혼하기도 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지옥 같았던 무급휴직이 끝났다. 그들은 대부분 부평 2공장으로 배치됐다. 그것도 잠시 그들은 2022년 11월, 부평 2공장 폐쇄로 또다시 정비부품물류로, 창원공장으로 일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평에서 창원으로 전환 배치된 이들은 23년 하반기부터 내년 11월까지 창원공장에 남거나 다시 부평 1공장으로 배치가 완료될 예정이다. 군산공장 폐쇄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자동차공장을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았다. 그 시간 동안 심리적 불안과 적응장애로 인해 사람 관계는 무너졌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할 수조차 없었다.

"조합원들이 여기저기 어쩔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상황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가끔 통화하는 분들은 대인기피 현상과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해고된 상황이지만, 군산 조합원들의 불안정한 삶이 모두 제 책임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어머니를 홀로 모시면서도 나를 믿어준 아내가 있었고, 아빠에게 힘내라고 늘 응원해 주는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뒷바라지 제대로 해준 게 없는데 둘째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고, 첫째는 올 3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돼서 기뻤습니다. 지금도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군산공장 폐쇄 6년 만에 노사 교섭에 해고자 문제를 문서화했다.
▲ 2023년 해고자 관련 노사합의서 일부  군산공장 폐쇄 6년 만에 노사 교섭에 해고자 문제를 문서화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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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전 지회장이 해고된 이후 해마다 노사 간 교섭에서 복직 문제가 다뤄지긴 했었다. 하지만, 2018년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양보한 임금 및 단체협약 그리고 복지의 복원은 쉽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다 2023년 10월 12일, 신임 헥터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임금협상에서 처음으로 해고자 문제를 노사가 문서화했다. 합의서에 따르면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안정과 발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여, 회사는 본건 해고자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지속해서 노동조합과 성실히 협의"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사 간 합의 이후 회사는 새해가 될 때까지 단 한 차례의 협의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게 김 전 지회장의 설명이다. 

아픔을 딛고 성장하고 있는 한국지엠?

한국지엠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 2022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됐다. 23년도에도 6년 만에 최대 판매 실적을 보이며 흑자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군산공장 폐쇄로 시작된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2018년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8100억을 지원했었다.

그중 수백억의 금액으로 완성된 창원 CUV 도장공장은 북미 수출과 내수용 트랙스 크로스오버 주문 물량을 생산하는 데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부평 1공장도 마찬가지다. 부평 1공장과 창원공장은 26년까지 밀려드는 북미지역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주말도 공장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GM 본사 차원의 최종적인 결정이 나지는 않았지만 2027년부터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도 매우 긍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는 구순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 소박한 꿈을 조심스레 말하는 김재홍 전 지회장  그는 구순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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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구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토록 바라는 복직이 된다면 저는 조립부 컨베이어벨트 공정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웃으며 몇 년 남지 않은 정년까지 노동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 그동안 조합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아픔을 줬습니다. 저의 소박한 꿈은 어머니의 남은 여생을 함께하며, 사람 많지 않은 곳에 살면서 텃밭을 가꾸며 가족들을 위해 소소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해고자 복직, 모두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것

군산공장 폐쇄 이후 모두가 어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연 많던 시간을 이겨낸 사람들은 자리를 잡아갔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재홍 전 지회장은 구순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남아있다. 인터뷰 끝자락, 그는 마음속 이야기를 다 꺼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해고자의 얼굴에는 6년 동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했던 상처와 슬픔이 깊게 배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웅헌씨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대외정책부장입니다. 위 기사는 금속노동자와 노동과세계에 송고될 수 있습니다.


태그:#한국지엠, #김재홍, #해고자, #군산공장, #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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