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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앞. 지난달 31일부로 경비원 76명 중 44명이 해고돼, 해고 경비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3월 14일 경비원 고 박아무개(74)씨가 "죽음으로 끌고 가는 A (관리)소장은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을 책임지라"는 호소문을 쓰고 10층 비상계단에서 투신 사망해 논란이 된 곳이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앞. 지난달 31일부로 경비원 76명 중 44명이 해고돼, 해고 경비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3월 14일 경비원 고 박아무개(74)씨가 "죽음으로 끌고 가는 A (관리)소장은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을 책임지라"는 호소문을 쓰고 10층 비상계단에서 투신 사망해 논란이 된 곳이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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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 정문 앞. 영하의 날씨에 70대 남성 셋이 아파트 안쪽을 바라보며 입김으로 손을 녹였다. 호주머니에서 번갈아 나오던 이들 손엔 '경비원 대량감원 철회', '경비원 사망 산재 인정, 괴롭힌 관리소장은 물러나라'는 피켓이 들려있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이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김(71)·노(71)·홍(70)씨였다. 간혹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주민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매일 입던 경비복이 아닌 사복차림으로 아파트 앞에 선 세 사람을 비롯해 이 아파트 경비원 76명 중 무려 44명이 지난달 31일부로 해고됐다. 아파트 측이 경비 용역업체를 변경하면서 인원을 대폭 감축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3월 14일 경비원 고 박아무개(74)씨가 "죽음으로 끌고 가는 A (관리)소장은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을 책임지라"는 호소문을 쓰고 10층 비상계단에서 투신 사망해 논란이 된 곳이다. 그에 앞서 지난해 3월 9일엔 이 아파트서 일하던 70대 남성 청소 노동자가 해고 통보를 받은 직후 집에서 심장마비로 숨지기도 했다.

76명 중 44명 계약 해지… 경비원들 "노조 활동 보복"
 
해고 경비원들이 지난달 28일 받은 계약 해지 통보 문자.
 해고 경비원들이 지난달 28일 받은 계약 해지 통보 문자.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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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죽고 억울하다고 몇 달 동안 우리가 시끄럽게 하니까, 결국 이렇게 다 잘라버린 거예요. 우리가 노조 만들고 조합원이 42명까지 됐는데, 그 사람들 이번에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잘렸거든. 근데 사람이 돼 갖고, A관리소장이 아직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가만있어요?" - 해고 경비원 홍씨

해고된 경비원들은 이번 계약 해지가 노조 활동을 한 경비원들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경비원들은 지난해 3월 박씨가 사망한 이후 노조를 만들어 A관리소장 해임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A관리소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 5년 동안 경비원으로 일해온 홍(70)씨는 "그간 용역업체가 바뀌더라도 경비원들은 고용승계가 돼왔다"라며 "이번처럼 인원을 확 줄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실제 해당 아파트 입찰 공고를 살펴본 결과, 최근 15년간 70명 대 경비원 정원은 변한 적이 없었다. 총 12동 1030세대 규모인 이 아파트는 계단식으로 돼있어 한 동에 입구가 3개씩 있고, 각 입구마다 경비원이 1명씩 있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감원으로 이젠 경비원 혼자 3개 입구를 오가며 1개 동 전체의 경비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선경아파트에서 해고된 경비원 김(71)씨.
 선경아파트에서 해고된 경비원 김(7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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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온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거예요. 당장 생계 바쁜 사람들이 여기서 피켓 들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빨리 다른 경비 자리 알아봐야지." - 해고 경비원 김씨

해고된 44명 중 상당수는 일자리를 구하느라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피켓 시위에 참여한 경비원도 셋뿐이었다. 한때 42명까지 됐던 조합원 숫자도 한자리로 줄은 상태다. 김(71)씨는 "원래 경비 일이라는 게 '그만 나오라' 하면 '알았어요' 할 뿐이지, 이렇게 시위하는 일은 없다"면서 "박씨가 죽은 것, 그리고 우리가 부당하게 잘렸다는 게 분해서 나왔다"고 했다.

경비원들은 해고 3일 전인 지난달 28일에야 문자 한 통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김씨는 "경비는 대개 연초나 월초에 취직해서 계약을 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연말에 잘라버리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3개월 단기계약으로 용역업체와 근로계약을 맺는 간접 고용 형태였다. 이번처럼 아파트 측이 용역업체를 변경하고 정원을 감축해버리면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선경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경비원 해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인사 관리는 용역업체 소관"이라며 책임을 넘겼다. 용역업체 측 역시 "우리는 아파트 쪽에서 입찰한 인원수대로 계약을 했을 뿐, 아파트 쪽에 인원을 늘려달라고 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 기대는 없지만…"
  
선경아파트에서 해고된 경비원 노(71)씨. 뒤로 과거 동료였던 한 경비원이 지나가고 있다.
 선경아파트에서 해고된 경비원 노(71)씨. 뒤로 과거 동료였던 한 경비원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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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의 피켓 시위가 끝난 뒤 해고 경비원 세 사람은 인근 상가 지하에 있는 백반집으로 향했다. 24시간 근무를 마친 뒤 아침 6시에 교대하고 퇴근하면 종종 함께 찾던 식당이라고 했다. 8000원짜리 동태찌개에 몸을 녹이고서야 당당하기만 했던 목소리에 각자의 근심이 묻어났다.
 
홍씨 : "여기서 5년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경비원 한 명당 30가구를 맡았거든요. 한 가구에 4명씩 잡으면 대충 120명이잖아요. 얼마 안 되니까 정말 잘 지냈죠. 여긴 강남이고, 내 구역에 의사만 수십 명에 검사, 판사, 교수가 수두룩했어요. 나름대로 정도 들고.

근데 이런 일 벌어지니까, 그 중에 나서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물론 다들 각자 살기 바쁘니까... 알죠. 나는 더 이상 경비 일 안 하려고 해요."
노씨 : "호텔에서 경리업무 하다 정년 퇴직해서 경비 일 시작했거든요. 일하는 것 자체는 좋았어요. 아이들하고 소통도 참 잘됐고. 노인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라 무거운 것 들어다 주고 나면 기분도 좋고. 부자 동네잖아요. 먹을 것도 많이 줬어요. 이 아파트가 40억인가 한다잖아요. 근데 우리는 이렇게 정초부터 하루 아침에...

아쉬운 게 뭐냐면, 박씨 돌아가시고 싸운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 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눈치로 탁 봐서 먼저 도와주고 하던. 근데 그런 사람들이 먼저 잘려나가잖아요. 경비직이 할 일이 못돼요. 주민들은 그래도 괜찮은데, 관리소나 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우리를 천시해요. 사람 취급을 안 해요.

근데 있잖아요. 나는 이렇게 시위를 할 때는 좀 불편한데… 하고 나면 속이 시원해요. 내가 평생 이런 부당한 걸 겪어도 아무 말 안하고 살던 사람이거든요.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서 일하다 해고된 경비원들이 지난 11일 피켓 시위를 마치고 인근 지하 상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24시간 근무를 마친 뒤 아침 6시에 교대하고 퇴근하면 종종 함께 찾던 식당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경아파트에서 일하다 해고된 경비원들이 지난 11일 피켓 시위를 마치고 인근 지하 상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24시간 근무를 마친 뒤 아침 6시에 교대하고 퇴근하면 종종 함께 찾던 식당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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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 "지금은 취직 걱정이죠. 별 수 있겠어요. 아내는 죽고 아들이랑 사는데. 자식도 빠듯할 텐데 손 벌리긴 싫잖아요. 며칠 좀 더 쉬다가 저도 또 경비 자리 알아봐야죠. 우리 같은 사람이 뭐 다른 거 할 수 있겠어요?

우리들 나이가 다 70이 넘어요. 경비원 중에 65세 밑으론 아예 없어요. 세상 일 다 알아요. 그래서 나는 별로 기대도 안 해요. 누가 우리 얘길 들어요. 어찌됐든 주민들이 갑이고 우린 을이잖아요. 주민들이야 생활하는데 지장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저 조용히. 시끄러운 것도 싫고.

그렇다고 뭐 나도 '이 아파트 아니면 안 된다', '목숨 걸어서라도 여기여야 된다' 이런 것도 아니에요. 경비 일이라는 게 원래 그래요. 좋은 회사서 잘려서 싸우고 그런 거랑 전혀 달라요. 우리는 원래 그렇게 취급 당하는 거죠. 근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죽었는데 1년이 다 되도록 뭐 하나 바뀌는 것도 없고. 이거 잘못됐다고 목소리 좀 냈다고 경비원들 다 잘라버리고. 이 잘 사는 동네에서. 그래서 별볼일 없는 놈이지만 그저 한마디 하고 있는 거죠.

여기가 아침 6시 출근인데… 면목동 집에서 새벽 5시에 나오면 딱 한 시간이 걸려요. 근데 난 그 시간이 좋았어. 감사하다고 할까. 내가 관절염이 생겨서 다리를 좀 저는데요. 막말로 나는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의류제조업 공장에서 40년 일하다 경비 시작했으니까. 근데 쉽지 않네요."

태그:#경비원, #선경아파트, #대치동, #강남,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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