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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의 시집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에 담긴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 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어울리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특수교육 교사인 나는, 교사의 기다림이 학생에겐 스스로 성장할 기회인 것을 종종 잊는다. 이런 나에게 이 말은 금언으로 다가온다.

교내 체험활동 포스터를 만들 때, 교사가 직접 그 문구를 작성하고 컴퓨터로 출력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보기도 좋아 만족하는 교사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직접 안내문을 손으로(또는 컴퓨터로) 작성하여, 적합한 장소를 고민하여 스스로 붙이는 것은 어떨까?
 
학생들이 교내 체험활동 포스터를 손글씨로 직접 제작하여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에 붙여놓았다.
 학생들이 교내 체험활동 포스터를 손글씨로 직접 제작하여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에 붙여놓았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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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요리할 때, 교사의 손이 자꾸만 개입하고 싶어 안달이 나더라도 학생이 직접 하도록 믿고 지켜보면 어떨까? 요리가 좀 거칠고 맛이 좀 없으면 어떤가? '내가 좀 도와줄까?'라고 내 입이 말하려 해도 참는 것은 어떤가?
 
한 학생이 자신만의 레시피로 김치를 만들었다.
 한 학생이 자신만의 레시피로 김치를 만들었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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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해야 할 일을 교사가 대신 하지 않는 교육방식은 계획에서 실행까지 많은 교육적 질문이 필요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교사로서의 갈등을 겪어내야 한다. 갈등을 겪는 교사들이 참조할 만한 글이 있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 마음속의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인내를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물음 그 자체를 닫혀 있는 방처럼, 아주 낯선 말로 쓰인 책처럼 사랑해주십시오. 지금 당장 해답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 당신이 해답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에게 그 해답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산다는 것은 긴요한 일입니다. 지금은 물음을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당신은 차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먼 미래의 어느 날, 해답 속으로 들어가서 해답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 송영택 역, 2021: 35)."

그렇다. 교사에겐 해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 장애를 겪는 학생이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는 교육 방식에 대한 질문 말이다. 예를 들면 체험학습 장소를 선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학부모와 교사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은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 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어울리는 교사'의 질문을 담은 기다림에 가치를 부여한다. '내 삶에서 나를 배제하지 말라'는 목소리에 학생의 참여로 답하는 가치 말이다. 반면에 교육 현장에서 해답을 담은 보여주기식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조급증은, 학생 스스로 성장하는 힘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게 하고, 학생이 경험해야 할 일을 교사가 대신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학생들이 삶을 자율적으로 가꾸는, 삶에서 주체가 되는 힘은 경험에서 얻는다. 교사가 학생이 경험해야 할 일을 대신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누가(무엇이) 학생들의 존재를 빈약하게 만드는가? 기다림의 교육학이 필요하다.
 

태그:#특수교육, #기다림, #선택과결정, #자기결정권, #특수교육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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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교사이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탑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장애를 겪으며 사는 내 삶과 교육 현장을 연결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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