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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장애 학생 진로드림 페스티벌이라는 직업기능경기대회가 있다. 참가 대상은 전국특수학교(급) 고등학교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지적, 시각, 청각, 지체 장애를 겪는 학생이다. '스티커 붙이기'는 고등학교 과정에 재학 중인 뇌병변장애 학생의 경기 종목이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의하면 뇌병변장애인은 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뇌졸증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하여 발생한 신체적 장애로 보행이나 일상생활의 동작 등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뇌병변장애를 겪는 학생이 손으로 하는 섬세한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떨리는 손으로 도안에 맞게, 일정 시간 동안 스티커 붙이기 경쟁을 하는 것이다. 진로를 탐색하고, 직업 기능을 높이며, 자아 성취감을 고취시킨다는 말로 말이다.

진로와 직업교육은 자신이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것을 탐색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데 스티커 붙이기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면서 그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포크를 사용해서 음식을 먹는 뇌병변 장애인에게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는 억압이다. 스티커 붙이기는 반복훈련이라는 이름으로도 교실에서 볼 수 있다.

동료 특수교사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에게 수업 중이니 학습도움실 뒤편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 한 아이는 자기 이름을 공책에 반복해서 쓰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스티커 라벨을 박스에 붙이고 있었다. … "아이들 장애도 중하고, 스티커 부착 같은 단순한 반복 작업도 직업 활동으로 중요하잖아요!" 내가 목격한 그 수업은 바로 '진로와 직업' 교과 수업이었다(윤상원, 2022: 185).

"아이들 장애도 중하고, 스티커 부치기 같은 단순한 반복 작업도 직업 활동으로 중요하잖아요!"라는 말은 학생이 겪는 장애로 인해, 직업을 고려할 때 단순한 반복 작업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반복훈련을 통해 인내심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고, 작업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직업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 말이다.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단순하게 반복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했다. 진로와 직업이라는 교과 시간에 이름 쓰기, 스티커 붙이기, 볼펜 조립, 빨래집게 조립과 같은 단순한 활동을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는 것은 다양한 잠재적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를 가로막는 벽이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이 빨래집게를 조립하고 있다.
 학생들이 빨래집게를 조립하고 있다.
ⓒ 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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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교육내용과 교육 방법이 장애를 겪는 학생에 대한 낮은 기대감에 토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낮은 기대감은 교사와 학교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흔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학생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배신의 조짐이기 때문이다.

교사: "동수(가명)는 요즘 뭐하고 지내나요?"
학부모: "집에서 빨래집게 조립하며 시간을 보내요."
교사: "(깜짝 놀라며) 네? 왜요?"
학부모: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혹시나 취업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전화로 학부모에게 졸업생의 근황을 묻고 나서 동료 교사가 나에게 전해준 말이다. 아, 충격이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아직도 집에서 빨래집게를 조립하고 있다니... 편협한 진로와 직업교육은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왜소하게 만들고 고정된 존재로 가둬버린다. 교사로 사는 삶이 한없이 두렵고,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진로와 직업교육이 장애를 겪는 학생, 그 누군가를 억압하고 배신하며, 누군가에게 족쇄를 채운다면 교육내용과 방법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시급하다. 성찰은 질문에서 나온다고 했다. 진로와 직업 교과의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은 장애를 겪는 학생을 존중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박사 학위 논문에 실린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쓴 글입니다.


태그:#진로교육, #직업교육, #특수교육,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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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 교사이며,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탑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을 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장애를 겪으며 사는 내 삶과 교육 현장을 연결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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