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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끝난 뒤 동생 규상(64)씨가 형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정선엽 병장(1956~1979)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본부 지하벙커를 지키다 반란군 총탄에 숨진 조민범 병장의 실제 주인공이다. 정선엽 병장의 선택은 훗날 반란군 수괴 전두환의 죄목에 '초병 살해'라는 네 글자를 더하게 했다.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끝난 뒤 동생 규상(64)씨가 형과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정선엽 병장(1956~1979)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본부 지하벙커를 지키다 반란군 총탄에 숨진 조민범 병장의 실제 주인공이다. 정선엽 병장의 선택은 훗날 반란군 수괴 전두환의 죄목에 '초병 살해'라는 네 글자를 더하게 했다.
ⓒ 김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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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죽음은 떳떳했습니다. 여한은 없습니다. 다만 (12·12) 반란군들이 잘못 인정 없이, 사과도 없이 세상을 뜬 것은 안타깝습니다. 일부 보수단체가 영화 '서울의 봄'을 단체 관람하려는 학생들을 가로막은 것 또한 안타깝습니다. 왜 학생들이 역사 공부하려는 걸 막는 것인지..."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로운 동문 고(故) 정선엽 병장(1956~1979) 44주년 추모식' 뒤 고인의 동생 규상(64)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씨는 '형님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게 남아있느냐'는 질문에는 "처음엔 살아 돌아오실 줄 알았다.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며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보니, 형님 죽음이 순직에서 전사로 바로 잡혀 떳떳한 죽음으로 인정받았다. 이제 한은 없다"고 말했다. "살아생전 인정이 참 많았던 분"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반란군들이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난 일과 일부 보수단체가 학생들이 영화 '서울의 봄'을 단체관람하려는 것을 가로막은 데 대해선 "안타깝다"는 심경을 밝혔다.

정호용·허화평 등 살아있는 신군부 인사들에 관한 입장을 묻자 "12·12 장본인들은 당당하게 살고 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고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44년만에 열린 총동창회 주관 추모식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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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정선엽 병장의 모교인 광주 동신고에서는 그의 사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총동창회 주관의 추모식이 열렸다. 이전에는 삼삼오오 모여 '정선엽나무' 앞에서 묵념하고 헤어졌던 것과 달리, 영화 '서울의 봄' 흥행으로 추모 인파도 대폭 늘었다.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선 고인의 후배 등 동문과 학교 관계자 등 100여명이 44년 전 그의 의로운 죽음 앞에 고개를 숙였다. 반란군의 총부리 앞에서도 초병으로서의 원칙을 끝까지 사수했던 그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겠다는 다짐도 했다.

정 병장의 동창인 정형윤씨는 추모식에서 "정선엽은 1976년 모교를 7회로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2학년에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며 "국방부 헌병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전역을 석달 남겨두고 1979년 12월13일 청사 내부에 경계근무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후임 일병이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 배치되는 것을 알고 근무지를 바꿨다"고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소개했다.

이어 "고인은 반란군이 총을 빼앗으려 하자, 이에 맞서 중대장이 지시 없이는 총을 줄 수 없다고 밝히는 순간 반란군들은 정 동문의 목과 가슴에 4발의 총을 발사했다"며 "비보를 접한 고인의 어머니께서는 선엽이가 그때 갖고 있었던 총을 순순히 반란군에 건네줬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텐데라며, 반란군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며 불면증과 눈물을 속에 2008년 운명을 달리하셨다"고 회고했다.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끝난 뒤 유가족과 동문들이 교정에 심어진 '고 정선엽 병장의 나무'에 헌화하고 있다.
 12일 광주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의로운 동문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이 끝난 뒤 유가족과 동문들이 교정에 심어진 '고 정선엽 병장의 나무'에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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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는데, 정치 군인들의 쿠데타 속에서 전사한 친구 명예는 지켜져야 한다"며 "훈장과 추모비는 계급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김오랑 소령(훗날 중령 추서)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2·12 군사반란 당시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려다 반란군 총탄에 숨진 김오랑 중령에게 2014년 보국훈장 삼일장이 전수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한래진 동신고 교장은 추모사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하던 날,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영화를 관람했다"며 "영화에선 비록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자랑스러운 선배의 모습으로 후배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후배 조오섭 의원(광주 북구갑)은 "정선엽 선배님의 그날의 선택은 진정한 용기였다. 선배님의 용기는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의 죄목에 '초병살해'라는 무거운 글자를 새겨 넣으며 역사적 심판까지 이어지게 했다"며 "군인으로서 명예와 광주 시민으로서의 시대 정신을 지켜냈으며, 이는 동신인의 자긍심으로 남았다"고 추모했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을 계기로 정선엽 병장의 참군인 정신이 널리 알려지면서 조선대학교는 내년 1월 고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광주 동신고등학교 재학 당시 고 정선엽 병장 모습.
 광주 동신고등학교 재학 당시 고 정선엽 병장 모습.
ⓒ 광주동신고 총동창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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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선엽, #서울의봄, #초병살해, #1212, #군사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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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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