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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전국 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가 공동 기획·집필합니다.[기자말]
인천여성노동자회는 1989년 창립 이후 인천 지역에서 일하는 여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 왔으며 1995년에는 '평등의전화'를 개설하여 여성 노동자들의 고충을 해결해주는 무료 상담 사업을 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량을 기반으로 '고용평등상담실'을 2000년에 개설하여 좀 더 폭넓은 상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여성노동자회 홈페이지 상담 화면에 있는 글이다.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상사의 직장 내 성희롱이었다. 전화로는 상담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성희롱 사건은 거의 대부분 대면 상담을 해야 한다. 인천과 멀었고 도착하면 저녁이었지만 내담자는 오겠다고 했다. 퇴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내담자를 기다리면서도 '정말 올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오는 과정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어두워져서 도착했다. 상사의 성희롱이 입사초기부터 있었지만 일을 배우고 있었고 직속 상사이기에 참았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서 들어간 회사였고 평생 직장일 거라 생각했기에 더욱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참을수록 성희롱은 언어에서 시작해 신체적으로 강도가 높아졌다. 입사 후 점심 시간마다 다른 여직원들이 '그 상사'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였지만 '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다른 여직원들도 성희롱을 알지만 쉬쉬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고충처리 담당자에게 얘기했는데 "왜 얘기 안 했냐, 무엇을 원하는 거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더 막막했다고 한다. 어렵게 상담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타지역에서 인천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담자는 일을 배우고 그 일을 평생의 일로 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분리 조치만 된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했다. 내담자와 나눈 내용을 정리했다. 보통 성희롱 사건은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은 사내에서 안전한 근로 환경을 만들고 피해자의 권리 회복이 우선이다. 내담자는 증거가 없다고 불안해했다. 내담자를 안심시키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날짜별로 정리했다. 참았던 과정을 복기하는 것은 괴로운 순간이었지만 내담자는 다시 일을 하려는 의지가 강했기에 침착하게 내용을 정리했다. 상황을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맥락을 정리하면서 내담자는 진작 문제 제기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 또한 내담자의 잘못은 아니기에 안심시켰다.

회사는 노무사를 고용해서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는 일상으로 원래 하던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조사 기간 피해자에게 유급 휴가를 주었다. 하지만 조사 과정은 피해자가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노무사를 만나고 내용을 정리하고 증언하고 사장과 면담까지 해야했다.

조사 후 회사는 피해자에게 원래 하던 일이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하라고 했다. 또한 휴게 시간 등에 행위자인 상사를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행위자에 대한 징계는 감봉이라고 했다. 얼마나 감봉을 하는지, 왜 피해자가 직무를 변경해야 하는지, 분리 조치는 왜 안 되는지 질문했지만 회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지칠대로 지친 피해자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제4항'에 있는 유급 휴가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조사기간 유급휴가를 주었기에 더 이상 줄 수 없다고 했다. 조사기간 중에 유급휴가(법 제14조제3항)와 성희롱 확정 후의 유급 휴가는 다르다. 강경한 회사의 입장에 피해자는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무서워졌다고 얘기했다. 왜 피해자가 행위자를 피하면서 다른 일을 해야하는지, 피해자에게 통보만 하는 회사에 묻고 물었지만 회사는 법적으로 다 했다고 했다.

결국 피해자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하기로 했다. 사내에서 처리되지 않아 노동청으로 간다는 것은 퇴사를 결심해야만 했다.

피해자 혼자 감당, 그 곁에 고용평등상담실이

'피해 근로자가 요청했음에도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유급 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나 피해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다고 법에 있지만 거의 서류 재판이며 노무사 선임 없이 피해자 혼자 하기에는 힘든 일이다. 법은 있지만 과정은 피해자가 오롯이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노무사를 선임해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할 수도 없다. 상담실은 지쳐가는 피해자에게 심리치유프로그램을 연계했다. 피해자는 상담실의 여러 도움 속에 버티고 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른다. 법은 있으나 어느 편에서 법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피해 상황에 대한 정리나 증언과 과정은 오롯이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그 곁에 고용평등상담실이 있다.

법 '제26조 차별적처우등의 시정명령'이 생겼을 때 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장이 강화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담 과정과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상담할 곳이 많아져서 더 나아졌다고 했다. 이 또한 사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겐 먼 곳이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평등상담실을 2024년부터 전국 8개청에서 직접 운영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있는 12억여 원의 상담실 예산을 폐지하고 5억여 원의 예산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예산도 줄이고, 상담실도 줄이고 다 줄여서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강화할 수 있을까.

여성노동단체의 활동은 일하는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의 시작과 끝이다. 노동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IMF 시기 여성 노동자의 상담이 많아지면서 평등의 전화를, 실업대책본부를, 비정규직 운동본부를, 차별시정 창구를, 가사노동자 권리확보를 해왔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하고 노동부가 해야, 했어야할 일이다.

지난 7월 노동청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노동청 관계자가 '여성단체는 계속 상담하실 거잖아요. 고평실과 상관없이'... 이상했다. 예산과 정책에서 '성평등'을 삭제하면서 여성단체에 노동부가 하는 말이라면 그래서 직접 운영하는 거라면 잘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오늘도 퇴근 전 전화기를 착신한다. 수시로 전화 오는 회사의 대응에 불안해하는 피해자를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현주씨는 인천여성노동자회 소속입니다.


태그:#직장내성희롱, #고용평등상담실, #성평등노동, #인천여성노동자회,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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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여성노동자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여성노동 상담 및 교육·선전 활동을 통해 성차별, 모성보호, 성희롱, 비정규직, 보육문제 등 다양한 여성노동문제를 풀어가며, 여성노동자를 위한 정책과제를 개발하고, 올바른 여성노동 정책이 수립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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