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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 지난 두부, 어떻게 처리할까?
 유통기한 지난 두부, 어떻게 처리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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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4일)이었다. 인터뷰를 앞두고 김희숙 진행자(기후환경 디제이)가 갑자기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청취자들께 깜짝 퀴즈를 냈다.

'냉장고를 정리하다 유통기한 지난 두부를 보면 어떻게 하시나요?
1번. 얼른 버린다
2번. 얼른 해먹는다
3번. 버릴지 해먹을지 '소비기한'을 확인해본다.
상품은 없습니다.'


그랬더니 문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무조건 버린다는 분부터 버릴지 말지 망설이게 된다는 문자들, 그런데 뜻밖에 이런 답변도 왔다.

'남편에게 먹입니다^^'

이 날의 출연자 김은정 소비자기후행동 대표는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주부들도 남편에게 먹인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함께 웃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유통기한 지난 식품은 먹지 못하는 거로 생각하거나,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왠지 꺼려져서 고민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마시고 '소비기한', 소비자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한도를 표시한 '소비기한'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유통기한은 식품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 즉 유통업체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먹을 수 있는 한도를 나타내는 기한은 '소비기한'이라고 하는데 보통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길다.

식약처 실험결과 두부의 경우 통상 17일의 유통기한이 명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먹을 수 있는 품질유지기한인 '소비기한'은 이보다 6일가량 긴 23일이다. 발효유는 유통기한(18일)보다 소비기한(32일)이 2주가량 길고 햄은 19일가량 길다.

그럼에도 유통기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발견하면 깜짝 놀라며 버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통기한 경과로 폐기되는 가공식품의 폐기 비용이 1조 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미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 등에서는 먹을 수도 있는데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음식물 폐기물을 줄이고 식품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탄소배출량을 절감하기 위해 이미 '소비기한' 표시제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영국은 아예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유통기한을 표기하지 않고 소비자 관점에서 품질유지기한과 소비기한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은정 대표(소비자기후행동)는 우리나라도 소비기한을 도입할 것을 요구하며 법제화 노력을 기울인 기후시민 중 한 사람이다. 결국 올해(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1년간의 계도기간이라는 형태로 도입되었고 내년(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오늘의 기후>는 김은정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과정과 남은 과제까지 들어봤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추세라기보다는 대세"

-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못먹는 건 아니다. 팔고 못 팔고는 유통기한이 좌우하지만 이걸 먹고 못 먹고는 소비기한이 좌우한다. 

"맞다. 냉장유통 시스템이 열악하던 시절에는 기업들이 최소한의 유통기한을 설정하여 유통하는 것이 변질 위험을 줄이고 그에 따른 소비자 민원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우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냉장 시스템이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14일에서 12일, 10일까지 유통기한을 줄이면서 짧은 유통기한이 좋은 우유인 것처럼 광고까지 하였다.

그에 따라 소비자들도 마트에 가면 가장 안쪽에 있는 우유를 사려고 기를 쓰고 유통기한이 다 되면 개봉하지 않은 우유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유통을 위해 만든 제도였는데 은근슬쩍 소비를 유발시키고 업체들의 판매 수단에 소비자가 좌지우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멀쩡한 식품들이 버려지고 있던 것이다.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생활폐기물 중 26%가 음식 폐기물이고 그중에 10%이상이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버려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도 약 55%의 소비자가 유통기한이 경과하면 폐기하겠다고 답했다.

2020년 6월에 열린 제2회 식·의약안전열린포럼(아래 열린포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음식물쓰레기로 인해 약 25조 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고 이 중에서 유통기한(sell-by date) 경과로 폐기되는 가공식품 폐기비용이 1조3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유통기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식품이 무엇일까? 우유의 경우 유통기한은 2주 내외이지만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권장하는 소비기한은 24일이고 실험에 따라서는 40일 이상이 되기도 한다. 보관방법에 따라서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 두부는 17일에서 23일로, 햄류는 소비기한이 유통기한에 비해 50% 이상 길어진다."

- 외국에서는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추세라는데 이유는?

"추세라기보다는 대세다.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관심과 채택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U에서는 공식적으로 유통기한은 사용하지 않고 품질유지기한과 소비기한만을 사용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뢰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녹색소비자연대가 실시한 연구에서 11개 업체 18개 품목을 대상으로 2300여 명의 소비자가 참여하여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병행표시의 효과를 분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비기한을 유통기한과 병행하여 표시했을 때 반품율이 3%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반품으로 인한 손실비용이 최대 176억 원 감소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정 내에서 식품 폐기시점이 연장되어 약 3000억 원의 폐기 손실이 절감될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보고서에서 2008년 데이터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오래된 자료이고 참여 사례가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모든 제품, 모든 소비자로 확대했을 때 나타날 효과를 추정해볼 수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관심과 채택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관심과 채택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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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도 소비기한으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중심에 소비자기후행동이 있었던 거로 안다.

"원래 2009년경에 소비기한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냉장유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소비자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2020년에 다시 7월에 국회에서도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강병원 의원 대표발의)되었다.

이 개정안은 그해 11월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식품 안전성 우려와 냉장관리·유통시스템의 미비 등을 근거로 반대의견이 제시되었고 결국 '보다 깊이 있는 검토를 위해 계속 심사'하기로 하면서 의결이 보류되었다. 유통기한에 가장 민감한 제품 중 하나인 유제품을 다루는 한국낙농육우협회에서도 냉장관리·유통시스템을 구축하고 식품 안전을 위한 소비자 교육을 실시하는 등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하기 위한 여건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반대하였다.

그런데 소비자기후행동에서 관심을 가지던 차에 식약처에서 소비기한표시제에 대해 소비자의 입장을 듣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아직 인식이 낮은 소비기한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유통기한 때문에 섭취가 가능한데도 버려지는 음식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음식 입장에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버려지면 얼마나 화가 날까하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기획해 보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소비기한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되지 않아서 재미난 기획으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참여자에게 앵그리박스(소비기한을 알리는 내용과 물품을 담은 박스)를 발송했고 500여 명의 정치인, 인플루언서, 작가, 활동가들이 참여해 많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회원들과 함께 팩스를 넣고 전화를 하고 좀 많이 귀찮게 했다. (웃음)"

- 식품회사들은 어떤 입장일까? 얼핏 생각하기엔 식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소비기한 표시에 소극적일 듯한데.

"법안 통과에 마지막까지 거세게 반대했던 단체가 한국낙농육우협회였다. 'FTA 협정으로 수입 우유에 대해 관세가 없어짐에 따라 낙농·유가공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응기간 및 냉장유통환경 개선기간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결국 낙농산업의 현실 등을 고려하여 소비기한 도입 품목 중 우유 및 가공유에 대해서는 적용이 8년 유예된 채로 법안이 통과되었다.

원래 2023년부터 시행이었으나 포장지 사용과 유통 시스템 개선을 이유로 1년을 또 유예하여 현재는 유통기한, 병행, 소비기한이 혼재된 상태이다. 법안 통과 이후 생산기업, 유통기업, 소비자, 학계, 관련부처가 함께하는 논의테이블이 만들어졌으나 2회의 회의 후 소식이 없다. 식품업계 입장은 인쇄해 둔 포장재 소진, '소비자의 인식이 부족하다' '식약처에서 새로 만든다는 냉장 기준을 맞추려면 지원이 필요하다' 등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이유와 지원 요청을 하면서 미룰 궁리만 하는 중인 듯하다."

- 최근 국감에서는 식품에 표기되는 날짜 표시제를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바꾼 '소비기한 표시제'가 도입된 지 10개월이 지났으나, 소비기한을 연장한 제품은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알려졌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가?

"단호한 시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소비기한 시행을 유예해준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 기업들도 지지부진하고 5년 안에 소비기한에 대한 기준을 주겠다던 식약처도 뚜렷한 발표가 없는 상태이다.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기술에 대한 기준이나 지원에 대한 계획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시행을 하면서 문제점이나 필요한 지원사항에 빠르게 대처하면 될 일이다.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변경하면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이로 인해 경제적 자원을 절약할 수 있으며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게 된다. 소비기한 표시가 지구 온도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EU를 포함한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이 소비기한을 도입했으며 미국에서는 식품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니 소비기한 표시제의 장점은 입증되었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두고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 음식물 쓰레기 감소 등 장점을 부각하는 입장과 소비자의 식품 안전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여 배척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식품 정책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다. 소비자의 식품 안전을 보장하면서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문제를 없애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만큼 소비기한 표시제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 끝으로 소비자(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 정책의 취지에 맞게 잘 시행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소비기한 통과를 위해 노력한 식약처의 노고를 잘 안다. 그래서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함께한 것이다. 그런데 법 시행이 너무 지지부진하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소비기한에 대해 알고 있고 왜 법이 통과되었다면서 소비기한을 표시한 제품을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의아해 한다.

정부는 법을 만들었으면 단호하게 집행하는 것이 필요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계획한대로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도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 시민들에게 소비기한에 대한 더 강한 믿음을 갖고 정말 좋은 정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정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식품안전에 대해 소비자가 가장 안심할 때는 아무도 우리를 속일 수 없고 내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다. 우리 시민들도 두고만 보지 마시고 지속적으로 정보를 요구하고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10월24일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만 매일 2시간 편성제작되고 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경기, 인천 전역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태그:#기후변화, #음식물쓰레기, #유통기한, #소비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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