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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한 하늘에 울리는 밴드의 합주, 함성이 당연한 공간, 같은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 페스티벌의 묘미다. 지난 20일,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페스티벌을 찾았다. 

'환경과 사람 사이의 조화'를 내세운 이번 페스티벌은 다른 페스티벌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페스티벌 개막 4일 전, SNS에 업로드된 다회용기 사용 관련 안내사항에 의하면, "모든 푸드존에서 일회용품이 아닌 다회용품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 이는 환경을 생각하는 주최사 자체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일찍이 줄을 서서 손목티켓 부스 오픈을 기다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대부분 돗자리, 일회용 종이 테이블을 짊어지고 있었다. 4열 종대로 함께 서있던 옆 사람(최OO, 30대)에게 '돗자리가 꼭 필요한지, 종이 테이블은 일회용인지' 물었다.

"돗자리는 앉아서 보려면 필요해요. 진짜 테이블 가져오면 갈 때 번거로워서... 종이테이블은 보통 한 번 쓰고 버려요. 돗자리도 잔디밭 때문에 망가져서 버리고 가는 사람이 많던데요." 

그는 "페스티벌에 처음 온 거냐"며 돗자리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서있는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 페스티벌을 위해 잘려 나간 나무들이 스쳐지나갔다. 밑동만 듬성듬성 남은 공터까지 상상이 닿았을 때, 손목 티켓 부스가 열렸다.

손목 티켓과 함께, 리플릿과 이를 담은 목걸이까지 받았다. 리플릿에는 편의시설 정보, 페스티벌의 타임테이블, 안내사항 등이 적혔다. 모두 온라인으로 확인 가능한 내용이었고, 전광판에 수시로 띄워줄 수 있는 정보였다. 허투루 쓰기 아까워 종이 리플릿을 꺼내 돗자리 대용으로 썼다.
 
참가자들이 끊임없이 입장했다. 안전스태프에게 오늘 참가자가 몇 명인지 물었다. 그는 80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손목밴드는 25cm였다. 하루 공연을 위해 약 2km의 종이가 사용됐다. 종이 사용을 줄인다며 온라인 티켓을 발급했는데, 현장에서는 손목밴드에 리플릿 목걸이까지 얹어서 나눠줬다.
 
입장 전, 손목 티켓을 수령하고 있다.
 입장 전, 손목 티켓을 수령하고 있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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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줄을 서있다.
 손목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참가자들이 줄을 서있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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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으로 입장하니, 다회용기를 수거하는 부스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쓰레기 없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슬로건도 보였다. 온라인 사전 안내문에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생맥주를 파는 부스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 맥주 사려면 텀블러 필요한가요?
"아니요. 그냥 컵에 담아드려요."

- 다회용컵에 담아주신다는 건가요?
"저희는 다회용기 안 써요."

- 그러면 일회용컵 쓰고 다시 가져오면 회수해주시나요?
"쓰레기 버리는 데 버려주시면 됩니다."
 
맥주 판매 부스에 일회용컵이 쌓여있다.
 맥주 판매 부스에 일회용컵이 쌓여있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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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의 참가자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다.
 페스티벌의 참가자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있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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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들 사이에 리플릿을 깔고 앉았다. 옆자리에 너덜너덜해진 손목 티켓을 묶으며 보수하는 20대 박OO씨가 있었다. 자칭 보부상인 나는 테이프를 건네며 물었다.

- 손목티켓 꼭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그쵸. 입장하고 퇴장할 때 빠르게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겠지만..."

- 이런 페스티벌이 친환경 캠페인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손목 티켓은 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목걸이랑 리플릿은 불필요한 굿즈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문화 같은데, 이걸 주도적으로 이어가면 양심상 친환경 캠페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기까지 겪고 나니, 지난 9월 참석했던 한 뮤직 페스티벌이 떠올랐다. 당시 플라스틱통에 담긴 얼음 아이스크림을 들고 입장하려 했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제지를 당했다. 500ml 이하의 생수병은 되는데, 200ml 남짓의 아이스크림통은 반입이 불가하다고 했다.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이스크림을 지퍼백에 옮겨 담았다.
 아이스크림을 지퍼백에 옮겨 담았다.
ⓒ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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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에 대한 주최 측의 기준이 모호했다. 반입 물품을 검사하는 스태프는 규정에 따라 "지퍼백에 아이스크림을 옮겨가라"고 했다. 잠시만, 그러면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 지퍼백 쓰레기 하나가 생긴다.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이에 더해 친환경적이지 않은 일을 부당한 규정에 의해 저질러야만 하는 그 순간, 분했다. 당시 페스티벌 내부 역시 일회용컵에 맥주 등 음료를 판매했다.

완벽한 친환경은 불가능하다. 따지고보면 페스티벌을 열지 않는 게 가장 환경 친화적이다. 페스티벌의 소개말처럼,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행사에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친환경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다.

'주최 측에서 튼튼한 돗자리와 다회용 책상을 구비 해서 재사용하는 건 어떨까?' 상상해봤다. 쓰레기 감축과 질서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축제의 흥을 위해 종이 컨페티(색종이 조각)를 뿌리지 않는다면 뒷정리가 간단해지고, 불필요한 종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진짜 '친환경'에 그나마 가까워지지 않을까.

태그:#페스티벌, #그린워싱, #위장환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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