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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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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의사협회의 극단적 반발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발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의사협회 측은 언론 등에 '의사 숫자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애써 외면했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 없다는 의사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공식 통계로 5000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는 PA(Physician Assistant, 전담간호사) 간호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PA 간호사 도움 없이 정상적인 진료와 수련을 할 수 있는가?

2년 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일하는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병원이라고 손꼽히는 곳에서 의료인이 일하다 사망한 일을 두고 '병원 안에서 쓰러진 간호사도 못 살리는데 병원 밖에서 쓰러진 환자는 어떻게 살리느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그뿐인가.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감한 환자들도 있다. 해당 진료과 의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에선 아침마다 '소아과 오픈런'이 이어진다. 부모들은 사는 곳 주변에 소아과 의사가 없어서 아이를 업고 길을 나선다.

이곳이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모두 의사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문제만으로도 의사를 더 양성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는데 의사들은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라고 말한다.

5000명이 넘는 PA 간호사

지난 2020년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PA 간호사는 56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보건의료노조는 전국적으로 1만 명이 넘는 PA 간호사가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PA 간호사는 의사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의료인이다. PA 간호사는 의사 대신 처방을 내고 진단서를 발급하고 의료기록을 관리한다. 그들은 수련의(인턴)와 전공의(레지던트)가 부족한 병원에서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을 보조하고 입원환자들의 상태를 살펴 담당 의사의 회진을 준비하기도 한다. 수술과 입원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수술의 위험을 미리 알리고 동의서를 받는다.

이러한 일은 의사 고유업무로, 의사가 아닌 사람이 하면 의료법상 처벌을 받는다. 만일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사가 아닌 사람이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고 진단서를 발급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서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정부도 병원 관리자도 모두 불법인 줄 알면서, 진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애써 모른척하는 것이다. 어느 대형병원 원장은 "불법인 줄 알지만, PA가 없으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99개 의료기관(대학병원과 특수목적 공공병원, 지방의료원, 민간 중소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수련의와 전공의, 전문의를 모두 포함한 의사 정원 3493명 가운데 부족한 의사 수는 약 670명이었고,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PA 간호사 숫자는 3200명이 넘었다. PA 간호사만 200명이 넘는 의료기관도 있었다. 3200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의사 아이디로 의료행위를 하는 불법에 내몰리는 것이다.
 
의사인력부족으로 PA들은 현장에 투입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의사인력부족으로 PA들은 현장에 투입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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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이러한 '불법 의료'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의사가 부족하니 오래 기다려야 하고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이 악화되거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피곤하고 지친 의사에게 최상의 진료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고 친절한 설명과 구체적인 치료계획을 듣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의사들도 힘들지만, 아픈 몸으로 오랜 시간 기다리고 대기하는 환자들도 힘들고 지친다.

의사가 충분히 양성돼 부족하지 않다면 수련의나 전공의가 일주일에 80시간씩 일을 할 이유가 무엇이고, 환자가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왜 일어나냐는 말이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사를 찾아 서울로 원정 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고, 그 부담과 피해는 고스란히 아픈 환자와 그 가족의 몫이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인 대학병원과 지역 책임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은 대부분 필수 진료과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감염병 전담병원에 감염내과 의사나 호흡기 전문의가 없거나 산재환자 치료기관인 근로복지공단 병원에 재활의학과 의사가 없다. 밖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가 대한민국은 의사와 의대 졸업생이 부족하다고 말하는데 오직 의사협회만이 아니라고 '강짜'를 부리고 있다.

해법

아픈 국민을 치료하고 살리기 위해 의사협회는 지금 당장 의대 정원 확대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지역 의료공백 해소와 필수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이다.

늘어난 의대 정원이 모두 지금처럼 수도권, 대도시로 몰리고 이후 6000병상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병원 분원으로 몰린다면 지역 간 의료격차는 더욱 커지고 필수 의료 붕괴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의사가 배출되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진료과에 대한 지원이나 의료체계 문제는 차후에 깊이 있게 논의하더라도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비뇨의학과, 외과 계열 진료과의 붕괴를 막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의대 정원 확대는 반드시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지역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필수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에 기초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2006년부터 묶여있던 국내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 입시부터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대한의사협회는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정부가 2006년부터 묶여있던 국내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 입시부터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대한의사협회는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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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홍보국장입니다.


태그:#보건의료노조, #의대정원,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PA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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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보건의료노동자의 친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산업 노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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