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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A보험사는 서울 한 대학병원 김아무개 교수에 "MRI·MRA 판독으로 뇌혈관의 협착 및 폐쇄 진단을 확정 진단하는 것은 과잉 진단일 가능성이 없는가"라고 질의했다.(기사내용과 무관)
 지난 4월 A보험사는 서울 한 대학병원 김아무개 교수에 "MRI·MRA 판독으로 뇌혈관의 협착 및 폐쇄 진단을 확정 진단하는 것은 과잉 진단일 가능성이 없는가"라고 질의했다.(기사내용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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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가 자사에 유리한 진단을 하지 않았다고, 의사인 저에게 협박문을 보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더라고요."

보험회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절감할 목적으로, 자사에 불리한 진단서를 작성한 대학병원 의사에 협박성 우편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또 보험회사가 보험약관과 다른 내용의 진단 기준이 담긴 '지침'을 손해사정사들에게 배포해 의사와 공유하도록 하면서 자사에 유리한 진단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A교수는 지난 4월 대형 보험회사로부터 한 통의 우편을 받았다. '진단서 작성 기준에 대한 의견 요청'이라는 제목의 3쪽짜리 내용증명 우편물이었다. 

뇌경색(질병코드 I63) 등과 관련한 병원 쪽 진단 기준을 묻는 내용이었다. 이어 "보험금은 진단명에 따라 각각의 보험가입금액이 설정돼 고액의 보험금이 지급되고 있어, 보험회사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서술도 포함됐다. 

대학병원 교수의 MRI 판독 결과도 못 믿는 보험회사

또 보험회사는 "진단금의 경우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함"이라며 "그런데 귀 원에서 진단받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MRI·MRA 촬영 후 뇌혈관 관련 진단을 받고, 별다른 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고액의 보험금만 청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로 인해 대부분의 건들이 과잉 진단으로 분쟁이 되고 있다"며 "50% 이상의 협착이 없는 환자에게 MRI·MRA 판독으로 뇌혈관의 협착 및 폐쇄 진단을 확정 진단하는 것은 과잉 진단일 가능성이 없는가"라고 질의했다.

A교수는 보험회사의 주장이 의학적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판독을 통해 분명히 협착임을 확인했다"며 "만약 50% 미만의 협착은 협착이 아니라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어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환자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50% 미만이라도 항혈전제나 항응고제 같은 약을 쓴다"며 "약물치료도 당연히 치료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A교수는 보험회사가 회신 불가능한 질의서를 병원 내 10인 이상이 열람하는 우편의 형태로 보낸 것은 그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의도라고 강조했다. 

약관과 다른 지침으로 '압박'..."보험금 미지급 목적의 이중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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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경우 구체적으로 어떤 고객인지를 명시하고, 분쟁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보낸 공문을 보면, 환자명, 나이, 일자, 투약 일수, 회신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는데, 보험회사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에서 문서를 받게 되면 병원 내부자 10인 이상이 이를 열람하게 된다"며 "보험회사는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허위 진단서', '과잉 진단'이라는 주장을 병원에 널리 전파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A교수는 보험회사의 내용증명 발송에 대해 명예훼손, 업무 방해로 고소한 상태다. 

또 A교수는 보험회사가 보험약관과 다른 내용의 진단 기준이 담긴 일종의 '지침'을 손해사정사들에게 배포하고, 이를 의사들과 공유하도록 하면서 '압박 카드'로 쓴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그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이중 장부와 같은 것"이라며 "'지침'에는 뇌졸중의 경우 협착의 정도가 50% 미만이면 협착이 아니라고 적혀있는데, 이는 보험회사가 고객들에게 준 보험약관과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했다. A교수는 "약관과도 다르지만, 의학적으로도 완전히 엉터리인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보험회사 "주치의 의견 질의는 심사과정에서 가능"

다만, A교수는 해당 보험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사들도 자사에 유리한 진단을 종용하거나, 이와 관련한 지침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교수들도 여러 보험회사에서 유리한 진단을 하라는 압박을 구두상으로 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들 쉬쉬하고, '내가 보험회사 요구대로 진단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넘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A교수는 "그렇지만 사기성으로 만든 보험사 지급 심사 지침대로 진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잉 진단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보험회사 쪽은 주치의 의견에 대한 질의는 보험금 심사 과정에서 가능한 일이며, 진단과 관련한 내부 지침을 의사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병원에 발송하는 내용증명의 경우 진단서를 작성하는 주치의 의견을 질의하는 것으로, 보험사의 보험금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심사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보험회사들은 내부 질병 진단에 관한 가이드를 가지고 있다"면서 "주치의에 이를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진단해도 큰 수익 없는데..."보험사의 무리한 관여, 과잉진단은 모욕"

하지만 진단 결과에 따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과도하지 않은 질병의 경우에도 보험회사가 진단에 무리하게 관여하는 것은 의료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가장 정확한 것은 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단을 내리고, 진료한 의사의 판단"이라며 "법적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음을 감수하고, 신중하게 내린 의학적 진단에 보험사가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은 의료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수치료나 백내장의 경우 수익을 목표로 과잉 진단·진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런 경우가 아님에도 진단의를 압박하는 것은 지나친 횡포"라며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헌수 순천향대 교수(IT금융경영학)도 "보험회사는 문제 상품을 출시하지 않거나 사고 발생 때 소비자에게 경고하는 식으로 스스로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한다"며 "이를 등한시한 채 전문적인 판단을 해야 할 제3자에게 이 같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회사들이 지급 심사를 이유로 법적 근거 없이 내부 지침을 의사에게 상시적으로 보여주며 압력을 행사하는 점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태그:#보험, #보험사, #보험금, #진단금,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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