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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수학여행 가요."

한동안 뚱하게 다니던 고2 아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좋겠다. 가정통신문 줘 봐."

아들에게서 가정통신문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장소, 날짜, 아니고 금액이다. 거의 60만 원이다. 지난 봄에 친구의 아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데 70만 원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뭐, 생각보다 10만 원 싸네.

금액을 확인한 뒤 일정을 살펴본다. 제주도 2박 3일, 무슨무슨 체험을 하는군. 패키지여행으로 가면 이거보다 싸던데, 수학여행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꼭 수학여행을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가야만 해? 이런저런 불만들이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지만 꾹 눌러 참는다.

"너 혹시 공부를 너~무 하고 싶어서 수학여행을 가기 싫다던가 그런 마음은 없는 거니?"
"아뇨. 전혀요."

"너 제주도 가봤는데."
"기억 안 나요."

 
아들은 기억 못하는 제주 여행 사진
▲ 아들은 기억 못하는 제주 여행 사진 아들은 기억 못하는 제주 여행 사진
ⓒ 윤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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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아들에게 건넸다.

"재밌게 놀고 와."
"감사합니다~"


좋을 때다.

혼자서 또 가정통신문을 들여다본다. 수학여행비 언제까지 내야 하는 거지? 10월 13일이면 아직 여유가 있네. 월급 받아서 주식 통장 대신 스쿨뱅킹 통장에 돈을 넣으면 되겠군.

다달이 월급을 받아 조금씩 주식을 산다. 우리 부부의 노후자금인데 아이들이 크면서 주식통장에 넣을 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수학여행비를 내면 이번 달에는 아예 못 넣을 것 같다. 한숨이 난다.

며칠 뒤에 아들한테 물었다.

"너희 반에 수학여행 안 가는 친구는 없어?"
"두세 명 있어요."

"왜 안 간대?"
"그냥 친한 친구가 없어서요."


진짜 친한 친구가 없어서 안 갈 수도 있지만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친구도 있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가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의 수학여행비로 60만 원을 내는 건 부담스럽다.

제주도 말고 강원도 산골 군대 체험장 같은 데로 수학여행을 가면 어떨까? 현대문물이 없는 외진 곳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고생한 저녁에 '엄마~ 보고 싶어요' 하며 눈물콧물 쏟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마도 수학여행으로 군대 체험을 가라고 하면 차라리 공부를 하겠어요, 할 것 같다.

예전에 아이를 한 명 키우는데 몇 억이 든다는 기사를 보면서 뭐 그렇게까지야, 했었는데 이제야 실감이 된다. 그나저나 중3딸은 졸업여행 안 가려나? 초3 막내는 작년에 입던 옷이 싹 다 작아졌던데...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이 없는 난 무슨 용기로 애 셋을 낳았을까?

이봐요, 나랏님들. 애 많이 낳았다고 애국자니 뭐니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현실적인 지원을 좀 해달란 말입니다!! 수학여행비 60만 원은 부담스러운 금액이지만 아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동시 게재합니다.


태그:#수학여행, #수학여행비, #아들, #양육비용,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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