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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니 신전에서 그리스 로마시대 흔적을 만나다
 
가르니 신전
 가르니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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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비랍을 보고 난 우리는 가르니(Garni) 협곡으로 향한다. 가르니 협곡은 아자트(Azat) 강을 따라 만들어진 거대한 협곡으로, 가르니 신전과 주상절리라는 대단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가르니 협곡 위에 형성된 가르니 마을은 예레반 동남쪽 30㎞ 지점에 위치한다. 마을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르니 신전이 있다. 가르니 지역이 역사에 나오는 것은 기원전 8세기 우라르트(Urart) 왕국 때부터다. 그리고 기원전 3세기 오론트(Oront) 왕국 때 이곳에 왕의 여름궁전이 지어졌다.
 
헬라어 비석
 헬라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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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원 후 1세기 이베리아(Iberia) 왕조의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 왕이 이곳에서 살해된 후 왕궁보다는 성채로 사용되었다. 1세기 후반 아르사스 왕조의 티리다테스(Tiridates) 1세 때 태양신 미르(Mihr)에게 바치는 이오니아식 신전과 왕비를 위한 궁전 겸 성채가 지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1945년 아르메니아 화가 사리얀(Martyros Saryan)이 발견한 비석을 통해 확인된다. "아르메니아의 위대한 왕인 티리다테스가 즉위 11년 만에 신전과 함께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었다." 이 비석은 현재 북쪽 성벽에 난 문을 통해 들어서면 오른쪽 앞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 초반 티리다테스 3세 때는 가르니 신전이 호스로비둑트의 여름궁전으로 변화되었다. 여름궁전이 파괴된 것은 7세기로 본다. 그것은 무너진 궁전 옆에 7~9세기에 원통형의 성 시온(Saint Sion) 교회가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가르니 성채 밖으로 성모교회 등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건물이 1386년 티무르제국의 침입으로 약탈당했고, 1679년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그 후 아르메니아가 동서로 분열되어 이란과 튀르키에의 지배를 받으며 잊혀졌다.
 
왕실 목욕탕
 왕실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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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이르러 가르니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관심이 생겨났고, 20세기 초·중엽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를 토대로 1969년부터 1975년 사이 붕괴된 원재료를 활용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가르니 신전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원형을 많이 상실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는 실패했다. 성 시온교회는 완전히 파괴되어 원형의 벽과 내부 구조만 확인할 수 있다. 왕실 목욕탕은 바닥의 모자이크화와 난방시설 일부가 남아 있어, 아르메니아 왕실의 목욕문화와 목욕탕의 역사를 알려준다.

신전과 왕실 목욕탕을 들여다 보다
 
가르니 신전 주두와 천정 벽장식 프리즈
 가르니 신전 주두와 천정 벽장식 프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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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니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천연의 요새다. 그것은 동서남 세 방향이 절벽으로 차단되어 있고, 북쪽으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쪽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일부 지역을 연결하는 374m 정도의 성벽이 만들어졌다.

높이는 6~8m, 두께는 2~3m이며, 성벽에 14개의 망루 겸 탑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북문으로 들어서면 길이 동남쪽으로 이어진다. 길 왼쪽으로 상가들이 있고, 오른쪽은 풀과 나무가 심어진 야산이다. 길을 따라가면 꽃밭이 조성되어 있고, 복원에 사용되지 않은 기둥 부재들이 주변에 세워져 있다.

왼쪽 길로 가면 신전과 교회터가, 오른쪽 길로 가면 덮개를 덮은 목욕탕이 나온다. 우리는 먼저 신전으로 향한다. 첫눈에 정면 6개 측면 8개의 원형 기둥이 우뚝하다. 기둥의 상부 주두(柱頭)가 이오니아식으로 되어 있다.

그 위로 면석과 장식벽 그리고 천장받침이 있다. 식물문양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벽은 프리즈 형태로 연결된다. 천장받침 위로 삼각형 모양의 박공과 지붕이 보인다. 박공에는 조각장식이 있었을 텐데 파괴되었고, 복원하면서 민무늬 벽돌을 사용한 것 같다. 지붕 위 꼭짓점 부근에는 화려한 장식이 세워져 있다.
 
이오니아식 주두를 가진 기둥과 익랑
 이오니아식 주두를 가진 기둥과 익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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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기둥 안으로는 익랑(side wing)이 있고, 그 안쪽으로 전실(前室: pronaos)가 있다. 전실로 들어가면 신과 만나는 기도공간이 있다. 그 안쪽으로 제단과 지성소가 있었을 것이다. 이곳을 신실(神室: naos)이라 부른다. 신실은 지붕과 벽이 있는 건물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그곳 벽감에 신상이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성소 너머는 후실(後室: opisthodomos)로, 사제들이 신과 교감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신전이 궁전으로 변형되면서 내부는 왕실의 용도에 맞게 변형되었을 것이다.

가르니 신전에는 사방 익랑의 천정에도 식물문양 조각이 새겨져 있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사각형의 기본틀을 만들고, 그 안에 다시 마름모꼴을 만들어 식물문양을 집어 넣었다. 그렇지만 파괴로 인해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사방 익랑은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이어진다.

남쪽 익랑에서는 가르니 협곡과 건너편 산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이들을 돌아 건물 북쪽 정면으로 오면 기단부 정면 계단을 통해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다. 정면 계단은 모두 9단이다. 그리고 계단이 없는 측면은 지대석, 면석, 상대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실 목욕탕의 모자이크화
 왕실 목욕탕의 모자이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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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목욕탕은 건물 상부가 없어져 정확한 외관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 벽과 배관 그리고 바닥의 모자이크화가 남아 있어, 목욕 시스템과 평면구조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목욕탕은 네 개의 연속된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의 한쪽 벽에 반원형의 공간을 할애해 보일러 시설을 만들었다. 지면 위에 지름이 20~25㎝ 되는 원통형의 배관 기둥을 세우고, 배관을 통해 뜨거운 물과 증기를 목욕탕으로 공급하는 구조다. 그러므로 목욕탕은 배관 위에 평평하게 만들어졌다.

방이 네 개 있는데, 입구 쪽 방이 탈의실 겸 전실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은 열탕과 온탕으로 보인다. 네 번째 방의 바닥에 모자이크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욕 후 휴게실로 여겨진다.

모자이크화는 가운데 사각형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남녀 주인공을 그려 넣었다. 남자는 뿔이 달린 댕기 머리를 하고, 여자는 긴 머리에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 머리 위에 두 줄의 헬라어가 보이는데, "우리는 열심히 일했지만 얻은 게 없다"라고 번역된다고 한다.
    
바다의여신 테티스. 그 아래 돌고래가 보인다.
 바다의여신 테티스. 그 아래 돌고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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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주변으로 인간과 바다생물 그리고 인간을 닮은 신이 묘사되어 있다. 인간으로는 어부와 선원이 보인다. 바다생물로는 물고기, 돌고래, 굴이 보인다. 그리고 반인반수의 켄타우로스, 반인반어의 인어도 보인다.

인간을 닮은 신에는 이름이 적혀 있어 그들의 성격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오세아누스는 해양의 신이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이다. 에로스는 사랑의 신이다. 펠레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버지다. 그 외 더 많은 신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깊은 바다, 고요한 바다, 해안, 아름다움 같은 헬라어 단어들이 보인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림의 주제가 그리스 서사시 <오딧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자이크의 미학적인 표현, 이야기의 내용, 구도와 양식, 색깔 등을 통해 3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반 이상이 파괴된 가르니 목욕탕에서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아르메니아가 그리스 로마와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대단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르니 협곡에서 만난 거대한 주상절리
 
가르니 협곡의 주상절리
 가르니 협곡의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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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니 협곡은 가르니 신전에서도 내려다 보인다. 그러나 협곡에 있는 지상 최대의 주상절리를 보려면 아자트강을 따라 형성된 협곡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르니 신전 동쪽 1㎞ 지점에서 차를 내린 다음, 협곡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서 '돌들의 교향곡(Symphony of stones)'을 들을 수 있다.

이 교향곡은 바람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가상의 선율이다. 그러므로 순수음악적이기보다는 공감각적인 무조음악이다. 탈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르니 익스프레스라는 전동차나 말을 이용할 수도 있다.
 
파이프 오르간처럼 쭉쭉 뻗은 주상절리
 파이프 오르간처럼 쭉쭉 뻗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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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주상절리가 워낙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어 그 모양도 기기묘묘하다. 기둥이 상하로 길게 이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각기둥이나 말뚝처럼 땅에 박힌 것도 있다. 덮개가 있는 동굴 형태를 이뤄, 그 아래 제비들이 집을 짓고 살기도 한다. 또 주상절리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이 지역이 비교적 건조하고, 나무들이 많지 않아서 주상절리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상절리를 좀 더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11세기에 아자트강에 놓은 아치형 다리를 건너가 보는 게 좋다.

태그:#가르니 신전, #이오니아식 주두, #여름궁전, #왕실 목욕탕,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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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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