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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범도 흉상의 육사 이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이미 해군 측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 가능성을 언급하며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문제는 이 사안이 역사논쟁의 수준을 넘어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반공이데올로기 공세의 한 측면으로 기능하며 한국군의 정체성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보수일간지는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당시 진행된 홍범도 유해 송환과 육사 내 흉상 설치 등 일련의 기림행사가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국군의 뿌리를 바꾸기 위한 계획적 조치라고 판단"하고 "문재인 정부에 의해 훼손된 한국군의 정체성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단독] "김원봉 막히자 홍범도…文정부 목표는 '軍뿌리' 바꾸기" 중앙일보 2023년 8월 31일자 보도).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가 생각하는 한국군의 뿌리는 무엇이며 정상화하려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안타깝지만 한국군의 뿌리를 반공이라는 이념의 잣대로 무장독립운동 부분을 제거하고 해방 이후의 한국군으로만 한정한다면 한국군의 뿌리는 자랑스럽지 못하다.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등 남한의 자생적 국가건설 노력이 미군정에 의해 좌절되었듯이 한국군 역시 자생적으로 준비되던 움직임들 역시 미군정에 의해 좌절되었다. 일제강점기 학병을 거부하거나 징집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군준비대, 학병동맹, 임정과 연계된 광복군 중심의 대한국군준비위원회 등 다양한 세력과 조직이 해방된 국가의 군대 건설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미군정은 군정법령을 통해 자신이 창설한 조선국방경비대 이외 일체의 군사활동을 불법화하고 많은 단체들을 해산시켜 버렸다.

이렇게 형성된 한국군의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는 주지하다시피 일본군, 만주군 출신의 군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한국군의 오랜 문제인 혹독한 규율과 폭력을 통한 지휘·통제는 군국주의 시기 일본군에서 복무하며 경험한 일본군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에 기인했다.

또 한국군은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좌익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대규모 숙군을 하며 반공의 군대로 변질되었다. 강한 이념지향성을 가진 한국군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는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 학살의 역사로 이어졌다.

내 나라, 내 국민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의지가 좌절되며 외세 주도로 만들어진 군대, 형성과정에서 이념에 몰두해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던 군대, 군사쿠테타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정치권력 장악에 몰두했던 군대... 

한국군의 뿌리를 또 정체성을 해방 이후로 한정한다면 한국군은 수많은 참군인의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역사를 갖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후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시민의 힘으로 또 군대 자체의 자정능력으로 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군의 뿌리와 정체성을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로 설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의미있게 평가되어야 한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스로의 실정을 덮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과 반대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악용하기에는 홍범도를 포함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가 진실되며 무겁다는 것을 윤석열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태그:#홍범도, #한국군, #반공이데올로기,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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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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