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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정부청사 교육부 전경. 지금도 이 건물 아래에서 교권 강화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세종정부청사 교육부 전경. 지금도 이 건물 아래에서 교권 강화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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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자로 충청북도의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명예퇴직했다. 손녀딸을 돌봐야 해서, 30년 넘게 살아온 그 도시를 떠나 세종시로 삶터를 옮겨 왔다. 교직을 떠난 뒤,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흉흉하다. 교사들의 죽음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후배 교사의 전화

9월 1일에 함께 근무했던 후배 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종시에 사망한 서울 초등학교 교사를 위한 추모 공간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자세히 알지는 못해서, 세종시교육청에 추모 공간이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 교사는 9월 4일이 사망한 그 교사의 49재이고, 교사들이 그날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해 그 교사를 추모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그날을 학교장이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든가 개별 교사들이 연가나 병가를 내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 그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학교의 학교장과 그날 휴가를 내는 교사는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단다. 해임이나 파면이니 하는 극한적 용어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또한 교육부는 그날 휴가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두 번이나 내려보냈다고 했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 휴가 낼 계획이 없었던 그 후배 교사는, 교육부장관과 교육부의 행태를 보고 욱하는 감정이 치솟아 올라왔다고 했다. 그래서 연가를 내고 사망한 서울 초등학교 교사 추모 행사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했다.

그랬다. 35년의 교직생활을 돌이켜 보면, 교육부와 교육청은 단 한순간도 교사의 편인 적이 없었다. 교사의 편이기는커녕 일단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심지어 교사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어떤 사안에 휘말린 교사들이 교육부나 교육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공교육 멈춤의 날과 관련한 교사들의 휴가와 관련해 교육부장관이 공교육을 하루 멈추고 사망한 교사를 추모하자고 나설 수는 없을 테니 휴가 자제를 간곡히 요청하며 차분하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추모하자는 정도의 발언을 해야 옳았다. 그런데 교사들이 휴가를 낼 조짐이 보이자마자 대뜸 징계 운운하며 겁박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키우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휴가 낼 생각이 전혀 없던, 그 후배 교사가 휴가를 낸 것이 그것을 웅변한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연가나 병가 같은 휴가는 교사들에게 부여된 법적 권리인데, 교육부장관이 자의적으로 휴가를 제한하려고 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교사의 임면권은 시도 교육감이 가지고 있는데, 무슨 권한으로 교육부장관이 교사를 해임하거나 파면한다는 말인가.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장관은 4일 밤 징계 방침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교육부는 교사들의 아픔을 달래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 마땅할 듯하다. 교사들의 집회 규모를 줄이는 데 온 신경이 가 있는 듯하다. 그래야만 대통령의 질책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교사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하려고 하지 않는 교육부. 이러니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부 무용론이 회자되는 것 아닐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교육부에서 내놓은 교권 강화 대책들도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교권 강화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교육부에 그걸 바라는 건 정말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는 교육부를 통하지 않고 교권 강화 대책을 마련할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그야말로 답답한 형국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손보자? 별개의 사안이다

교권 강화와 관련한 논의 중 가장 걱정되는 점은 '학생인권조례'를 손보자는 움직임이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의 인권이 신장되어 교권이 추락했다는 인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35년 교직생활 경험상, 학생 인권 강화와 교권 추락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별개의 사안이다. 학생 인권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옛날보다야 많이 나아졌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교직생활을 시작한 때와 비교했을 때, 학생들의 복장 관련 규정과 용모 관련 규정이 좀 더 허용적으로 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일단 학교에 등교하고 나면 학교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다. 물론 담임교사에게 이야기하면 대개의 경우 외출이나 조퇴를 허락해 주지만, 교사에 따라 꽤 까다롭게 구는 경우도 있다. 담임교사에게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 게 싫어 외출이나 조퇴를 포기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학생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학생이 조퇴를 원하면 그 까닭을 너무 시시콜콜하게 묻지 말고 허락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님과 통화해서 동의를 얻은 다음에 말이다.

이밖에도 학생들은 자연인으로서 마땅히 누려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 제법 많다. 이런 점에 대해 동료 교사들과 얘기해 보면, 동료 교사들은 그게 무슨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내가 근무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면 벌점을 받는다. 몇몇 학생에게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면 안 되는 이유를 물었더니 모른단다. 담임 선생님이 슬리퍼 신고 등교하면 안 된다고 했단다. 그래서 몇몇 담임교사에게 물었더니, 이유는 정확히 모르고 학생부장 교사에게 전달받았다고 했다. 학생부장 교사에게 물었더니, 학생생활규정에 그렇게 되어 있다며 본인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근무한 그 학교의 교사들 중에는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교사들은 슬리퍼를 신고 등교해도 되고 학생들은 안 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해줘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그러지 않고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벌점을 부과한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않는가. 자신이 신고 싶은 신발을 신고 등교할 자유 정도는 학생들에게 주어도 좋지 않을까?

학생들의 인권도 강화하고 교권도 강화함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학생의 인권을 옥죄고 교권을 강화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교육 당국이 교육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교육 현장에서 요구하는 교권 강화 대책을 내놓기를 진심으로 빈다. 교육이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아울러 유명을 달리한 선생님들의 명복을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교권, #학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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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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