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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와 923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는 철도파업과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공공철도가 기후정의다!'라는 기획연재(6회)를 시작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공철도가 왜 필요한지, 철도 민영화가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 그리고 9월 23일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진행될 기후정의행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편집자말]
맥반석 오징어를 좋아하는 나는 한여름 60℃에 육박하는 철길 자갈 옆에 설 때마다 오징어를 떠올린다. 그러다 내가 구워지는 상상으로 거울도 없는 철길에서 오징어와 나를 일체 시킨다. 나는 구워져도 레일은 구워지면 안 된다. 레일이 늘어나 엿가락처럼 휘어져 삐질까 전전긍긍하며 물을 뿌리면서 어르고 달래본다.

나와 같은 우리 철도 시설관리원은 여름철 선로 옆을 떠나지 않는다. 그늘 하나 없는 선로를 지키며 혹시 모를 선로 이상을 감시하고 안전한 열차 운행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름철에는 선로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폭염과 폭우는 선로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더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레일과 자갈을 받치고 있는 노반이 유실되거나 무너진 토사가 선로를 덮칠 수 있기에 위험하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교통으로 '어떤 날씨나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달리는 열차'라는 인식 이면에는 철도 현장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7월과 8월, 길게는 6월에서 9월까지 시설관리원의 임무는 폭염과 폭우라는 침략자로부터 선로를 지키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응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대비하고 예방하기 위한 철도노동자의 여름나기는 이보다 훨씬 앞서서 시작된다.
 
폭염으로 달궈진 레일의 온도는 55도를 넘어서곤 한다.
▲ 여름철 레일 온도 폭염으로 달궈진 레일의 온도는 55도를 넘어서곤 한다.
ⓒ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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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열 받은 선로를 지켜라

선로를 관리하는 철도노동자의 대표적인 여름나기는 '장대레일' 관리이다. '칙칙폭폭', '덜컹덜컹' 어렸을 적 기차를 생각하면 함께 떠올린 소리지만 지금의 철길에서는 듣기가 쉽지 않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연기 내뿜던 기관차는 디젤차, 그리고 전동차로 바뀌면서 테슬라의 정숙함을 탑재했고 레일의 연결부 이음매 간격마다 덜컹거리던 승차감은 하나의 레일로 레일을 이어붙인 장대레일로 변화하며 독일 3사급 승차감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여름이면 레일이 열을 받아 늘어날 것을 대비해 레일과 레일 사이에 간격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덜컹거리지 않는다고? 나한테도 그리 알려주신 25년 전 홍남초등학교 6학년 1반 선생님이 거짓말쟁이일까? 그렇지 않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뿐이다.

새로 부설하는 선로는 레일 간 간격이 없이 장대레일을 사용하고 있으며 기존의 선로들도 레일 간 간격을 없애고 용접해 연결하여 200m 이상 최대 2㎞까지 하나의 레일로 만드는 등 '장대레일화'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덜컹덜컹'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감소시키며 유지·보수 주기를 늘리고 더 수월한 기계 작업이 가능하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로 안전 확보를 위해서 한 밤중에 장대레일을 재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 장대레일 재설정 철도노동자들은 철로 안전 확보를 위해서 한 밤중에 장대레일을 재설정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 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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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대레일이라고 여름 더위에 늘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레일이 늘어나며 발생하는 힘인 '응력'을 해소할 레일 간 간격이 없어 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응력을 레일과 침목을 붙잡고 있는 자갈 도상이 버티지 못하고 선로가 횡으로 휘어지기 전에 미리 해소해 주어야 한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설관리원들은 이놈의 레일이 열을 받아 스스로 벌크업 해서 사고를 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장대레일 재설정 작업'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레일이 늘어날 것을 계산하여 그만큼 미리 레일을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일인데, 이 작업이 말처럼 그리 간단치가 않다.

온도와 환경에 따른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십수명에서 수십명이 달려들어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심야에 긴 구간의 레일을 침목과 분리한 뒤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또 누군가는 그 새벽 내내 땅을 기어 다니며 일해야 해서 현장에서는 해당 작업자를 은어로 '땅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폭염에 대비해 취약개소에 자갈을 보충해 자갈 도상의 저항력을 높이기도 하고 레일의 온도를 단 1℃라도 낮추고자 흰색 차열성 페인트를 열심히 바르기도 하는데 열차를 타고 가다 레일이 흰색이라면 '아, 여기가 레일 온도상승에 취약한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하지만 철저히 대비해도 시설관리원은 선로를 떠날 수 없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 그늘을 찾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시설관리원은 외려 기온이 상승할수록 더 가까이서 선로를 지켜야 한다. 50℃가 넘는 선로 위를 걸으며 상시 점검하고 선로 이상에 대응한다. 땡볕에서 레일을 감시하고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또다시 밤샘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에도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지만, 철도 시설관리원들은 선로에 물과 땀을 함께 뿌리며 선로를 지켰다. 
 
철도노동자들이 차열성 페인트를 뿌린 선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 철로를 식히는 철도 노동자들 철도노동자들이 차열성 페인트를 뿌린 선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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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하늘과 철길 사이의 철도노동자

철도 노동자를 긴장하게 하는 건 '폭염'뿐만이 아니다. 올해 여름,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이상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 호우로 인해 열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예년과 다른 점은 안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열차 운행을 중단한 것으로, 폭우로 인해 노반이 유실되거나 토사가 선로를 덮쳐 열차 운행이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지난 7월 15일 밤, 나는 마침 비상대기 근무를 했다. 밤새 나의 근무지인 장항선의 선로를 점검하던 중 신성역과 광천역 사이에 토사가 무너져 선로를 덮친 곳을 발견하고는 그 새벽에 삽과 가래를 들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레일과 침목 위까지 토사가 유입된 상황이었고 비를 맞으며 함께 출동한 동료들과 삽질과 가래질을 해댔다. 평상시 같으면 청동기시대 유적지 박물관에서 봤던 것도 같은 가래질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미니 굴삭기 좀 사달라고 툴툴거렸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토사를 빨리 걷어내고 곧 통과할 첫차를 안전하게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겨우 열차와 접촉하지 않을 정도의 응급 복구를 마쳤을 때쯤 선제적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제야 침착하게 완전한 복구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발 미니 굴삭기 좀 사달라고 툴툴거리며 안도했던 기억이다.
 
철도노동자들은 폭우로 토사가 밀려와 철로를 덮치면 기차 운행의 안전을 위해서 긴급하게 보급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 빗속에서 가래로 토사 제거 작업중인 철도노동자들 철도노동자들은 폭우로 토사가 밀려와 철로를 덮치면 기차 운행의 안전을 위해서 긴급하게 보급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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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철도 현장엔 노반유실과 토사 유입으로 운행 중단이 불가피한 곳이 있고 탈선사고로 운행 중단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곳까지 안전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운행 중단을 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었고 안전한 작업을 위해서라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차를 미리 멈춰야 할 정도의 이상 집중 호우가 자주 발생하는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앞에서, 정작 대안 교통이라는 열차 운행을 멈췄다는 데 대한 아쉬움도 동시에 느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 처럼 비가 오거나, 세상을 모두 하얗게 바꿀만큼 폭설이 내리면 자동차는 위험하니 되도록 타지 않고 오히려 열차로 걸음을 돌렸던 것도 이제 옛 말이 된 건가 싶은 아쉬움이다.

보통 철도를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교통이라고 하는데 이는 철도가 배출하는 탄소가 적고 친환경적이라는 의미다. 나는 철도가 대안 교통이라는데 한 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고 싶다. 바로 어떠한 날씨에도 이용 가능한 대안 교통으로의 철도다.
 
열차도 미리 멈춰야 할 정도의 이상 집중 호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철도 노동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선로에 이상이 없는지 빗속에서 일일이 확인하는 철도노동자들 열차도 미리 멈춰야 할 정도의 이상 집중 호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철도 노동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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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처럼, 심각한 이상 기후에 운행이 중단되는 경우가 생기긴 했지만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여전히 철도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안전하게 이용 가능한 교통수단이다.

기후 재난이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비를 통해 다른 교통수단이 운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하더라도 여전히 철도만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 기후와 악천후 속에서도 철도는 안전하다는 믿음을 준다면, 그만큼 철도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늘어날 것이고, 궁극적으로 탄소배출도 줄어들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속 철도노동자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우리 철도노동자들은 기후위기 속에서의 대안 교통,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교통으로의 철도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 어쩌면 기후위기에 대해 별다른 고민이 없는 노동자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철도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철도를 안전하게 만드는 이들의 땀, 그 자체가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 교통의 토대이다. 더 많은 분들이 현장에서 땀흘리고 있는 철도노동자를 믿고, 안전한 철도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흘리는 철도노동자들의 땀이, 철도의 공공성을 지켜내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철도노동자는 하늘에 구멍이 나도 안전한 철도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구멍 난 하늘도 철도가 고치게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철도노조 정책국장(천안시설)입니다.


태그:#철도노조, #923 기후정의행진, #기후위기, #폭우,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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