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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암역 대로에 비어있는 상가들
 안암역 대로에 비어있는 상가들
ⓒ 이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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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12시께 서울 성북구 안암역 부근.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안암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참살이길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학기 중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을 대기줄이지만, 방학을 맞은 대학가 상권에는 직장인들과 몇몇의 학생들 만이 남아있었다. 코로나 종식이 선언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방학이었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이와 같은 한산함은 방학과 학기중 유동인구 차이가 뚜렷한 대학가 상권의 특징이기도 하다. 마스크 의무화가 해제된 이후 올해 1학기에는 학교 인근으로 다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권분석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안암상권 일일평균 유동인구는 1만 3873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안암 상권 유동 인구 (자료 출처 :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권분석)
 안암 상권 유동 인구 (자료 출처 : 소상공인진흥공단 상권분석)
ⓒ 안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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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A씨 역시 특히 올해 축제는 "코로나 이후 첫 고연전이라 그런지 (안암 부근에)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동인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학가 상권답게, 안암 상권은 대면 수업이 시작되며 다시금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취재진이 직접 만나본 점주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학생들이 돌아온 안암 상권은 과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을까?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 후폭풍'

"작년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은데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매출이) 작년보다 많이 좀 떨어졌어요."
"(이번) 방학 기간은 코로나 때보다 못한 것 같아요."
"이번 방학은 코로나 끝나고 첫 방학인데 코로나와 상관없이 전체를 비교했을 때 가장 최악이네요."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대학가 상권은 특히 그 피해가 심각했다. "늘 방학인 거죠. 학생이 없었으니까 1년 내내 방학인 거야." 고려대학교 인근에서 5년째 스프집을 운영 중인 B씨는 코로나 당시를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장사가 잘 돼야 절반이고 안 되면 평소의 ⅓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코로나 이전엔 안암역 뒷골목과 정문 부근 두 지점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B씨는 결국 대출금을 갚기 위해 임대료 보증금을 빼고 지점을 하나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 남은 가게를 정리하고 싶어도 대출금 상환이 걸려있다보니 폐업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실시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자영업자 2022년 실적 및 2023년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요식업·숙박업 등 자영업자 500명 중 약 40%가 향후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마저 폐업 시 모든 대출을 상환해야 한다는 조건과 권리금 회수 때문에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수치이므로 오늘날 소상공인의 실정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대부분의 점주들은 이번 여름이 코로나 종식 이후 처음 맞이하는 방학이지만 예년 방학에 비해서도 낮은 매출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3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코로나 시기 장사를 시작했지만 올해 매출이 가장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 해제되고 출입국이 자유로워지니까 학생들도 나가고 외국인들도 고국에 돌아가서 (코로나 시기 방학에 비해) 매출은 훨씬 떨어진 것 같아요."

안암동에서 15년 넘게 닭갈빗집을 운영하는 장씨 역시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교환학생이 많이 줄었다는 점에서 매출 부진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이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매출 하락은 거리두기 해제 이후 방학 기간 학교 부근에 머물던 학생들이 해외 등 외부로 나가게 되며 그나마 존재했던 고정 소비층마저 유실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코로나 이후 전반적인 소비 패턴의 변화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5년 정도 술집을 운영하던 D씨는 "코로나를 지나면서 학생들의 생활 패턴이 조금 바뀐 것 같다"며 이전에는 새벽 3시까지 만석이던 가게가 요즘은 1시를 넘어서는 파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 생활 패턴 자체가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어느 정도 적당히 마시고 다들 집에 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코로나의 여파는 단순히 매출 하락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정책미래소상공인연구소 정원석 소장은 코로나19가 자영업 업태에 끼친 변화를 크게 시간적, 공간적, 디지털전환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부채가 높은 자영업 특성상,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영업시간을 축소하거나 점심 또는 저녁 장사만 하는 곳이 늘어났고, 배달업을 병행하며 오프라인 공간을 축소하는 경향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배달 병행, 키오스크 설치가 대세… 점주들 반응은 엇갈려

실제로 코로나 시기 배달산업은 눈에 띄는 호황을 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증가하자, 배달을 시키거나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사람들 역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실시한 배달앱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대비 839.7% 증가하여, 5년 사이 거래액이 9배 정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암 골목 점주들은 배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안암에서 7년 정도 술집을 운영 중인 E씨는 "코로나19 시기에 모두가 어려웠지만 배달업을 통해 이전보다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초기 홀 영업을 중단하고 배달에 매진한 덕에 모두가 힘든 시기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배달업 병행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점주들도 있었다. 스프집을 운영하는 B씨는 코로나 시기에 배달을 시작하지 않은 이유로 '플랫폼에 대한 낮은 신뢰도와 어려운 용어 사용'을 꼽았다. 그는 "배달어플에 등록하려고도 했는데, 똑같은 말을 자기들 용어로 사용하니까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 헷갈리더라"며 플랫폼 입점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최근 매장을 하나로 줄이게 되자 다시금 배달 플랫폼 입점을 지원해주는 지자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안암동 골목을 2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영철버거 역시 현재 배달이나 포장을 병행하고 있지 않다. 점주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배달을 시작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코로나로 배달을 시작하긴 했으나 여전히 그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반응도 있었다. 술집 점주 D씨는 "배달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까 음식점끼리 경쟁이 치열해서 매출은 나오는데 마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배달료 주고, 용기 나가고, 서비스 주고 하면 매출에 큰 도움이 안된다. 비용 내는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D씨처럼 배달업 병행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은 올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실시한 온라인 유통거래 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앱을 이용하는 소상공인의 67%가 플랫폼 거래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부담되는 한편, 절반 가량이 작년 매출액 중 배달앱을 통한 매출 비중은 10% 미만이었다고 응답했다.

그밖에도 코로나 이후 안암 상권에는 인건비 감축과 효율성을 위한 무인 점포나 키오스크가 많아지고 있었다. F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상권의) 30% 정도가 새롭게 들어온 무인 점포"라고 말했다. 많은 소상공인들은 키오스크 설치가 알바생 한 명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실제로 취재를 나간 대부분의 가게들은 코로나 이후 인력을 줄이고, 홀에는 키오스크를 두어 운영 중이었다.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며 배달업을 병행하거나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등의 변화가 안암 상권에도 불어왔지만, 오랜 기간 학생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가게를 운영하던 안암동 상권의 특성상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은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다만 정 소장의 말처럼, "'키오스크나 서빙로봇 등 다양한 디지털 전환의 요소'가 앞으로 산업 변화의 중심 축이 될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하고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가 주관한 '새내기 유권자들을 위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 함께 만드는 우리동네 뉴스' 사업팀의 공동 성과입니다.


태그:#안암상권, #코로나 이후, #소상공인, #업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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