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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예술마을 도서관의 '예술을 쓰다,'
 서학 예술마을 도서관의 '예술을 쓰다,'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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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다. 강연, 책 놀이, 가족 공연, 예술 창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전주 서학 예술마을 도서관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 예술가와 함께하는 마을 탐방과 예술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을 쓰다'라는 상시 코너로 방문객들에게 예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을 쓰다'는 글감 바구니에서 무작위로 글감 두 개를 꺼내 문장을 완성하는 활동이다. 방문객들이 남기고 간 글에는 각자의 사연과 다짐, 재기발랄함과 순진무구함이 점철되어 깊은 울림과 웃음을 주기도 한다.

"서학동은 52년 전 내가 태어난 마을이다. 나에게 따뜻한 마을의 기억이 있는 곳, 심지어 도서관 앞 목욕탕 자리 나나모텔 그대로 있다는 게 추억의 책갈피에 넣어야겠다."

인간은 누구나 시간 앞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삶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면 축복할 만한 일이다. 지금 여기에서 반세기 전 삶의 장소와 마주한 사람은 오랜 기억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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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있다. 그리고…. 나는 뒤돌아본다. 그때 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돌이켜 보면 후회스러운 지난날…. 하지만, 난 오늘도 전진한다."
"스물여섯의 뜨거운 여름날 지친 몸을 이끌고 떠나온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 안녕 잘하고 있어."
"엄마는 뭔가를 실패한 너의 쓸쓸한 뒷모습까지도 다 사랑한단다. 너의 다음 도전을 응원할게."


인간이 원하고 바라는 욕망의 실현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욕망에 대한 기대만큼 인간은 실패를 경험했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실패에 대한 태도이다. 도서관 방문객은 용기와 사랑, 투지와 자신감 등으로 자신과 상대방을 격려하고 있었다.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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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사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달콤 쌉싸름한 것은 틀림없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인 사랑! 늘 행복을 선물하지 않아서 절망과 비통, 기다림과 존재의 부재라는 아픔을 겪는다.

"내가 너를 기다렸던 버스 정류장. 시간이 지날수록 네가 오는 시간은 늦어졌고, 아예 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어두워진 버스 정류장을 지킨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다 언젠가 다시 빛날 수 있겠지."
"닿지 않을 너라서 널 더 기억해."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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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멋진 글귀를 쓸 거라고 오해하지 마세요!"
"낙엽 밟는 소리에 귓가가 간지러워."


허무개그 속에 재치 넘치는 글도 보이고 입체적이고 감각적 표현이 돋보이는 글도 발견했다.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도서관 방문객이 쓴 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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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디에도 없는 무지개를 찾다가 그 개인의 삶이 축소된 마지막 뒷모습을 남기는 것."
"반복되는 일상도 소중한 것들로 채워가면 특별한 날이 될거야."


인생을 관통한 철학적 사유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심오한 글도 있다. 서로 다른 글감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이 여러 가지 느낌으로 다가와 읽는 내내 즐겁다.

"오늘 하루 비가 오던이 물웅덩이가 생겼는데 물, 웅덩이에 빠졌다. 근데 번개가 쳐서 놀랐다. 끝"
"책상이 이사를 가면 난 이제 어디로 가지."


도서관에 인접한 초등학교의 학생들 방문으로 도서관은 제법 북적거린다. 아이들은 '예술을 쓰다'에도 동참한다. 아이들의 표현은 거칠 것이 없어 개인의 해석이나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사실의 진술에 충실하다. 맞춤법이 틀리면 어떠랴? 글의 마지막을 알리는 '끝'에도 거침이 없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우리의 욕망 실현에 따른 걱정과 염려가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도서관을 방문한 어린이가 쓴 글
 도서관을 방문한 어린이가 쓴 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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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일의 발생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떠나 우리를 당황하게 하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경험이다. 서학예술마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예술을 쓰다'는 우리를 풍부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를 잠시 문학과 철학의 세계로 초대한다. 우리는 가끔 예술가가 되어 약육강식의 삭막하고 거친 세상을 감성이 넘치는 마음으로 건널 필요가 있다. 무작위적인 두 개의 글감이 우리를 아름다움과 사색의 시간으로 안내하고 험한 세상을 잠시 편한 마음으로 건너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예술을 쓰다'에서 발견한 여러 사람의 글을 통해 지난날을 추억하고 삶의 고단함과 격려, 사랑과 철학적 사유를 경험했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절로 웃음 짓기도 했다.
우연함이 가져다주는 생각의 기회, 평범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와 다짐, 재기발랄함과 순진무구함에 취해 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학 예술마을도서관 '예술을 쓰다' 코너에 참여한 방문객들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태그:#도서관, #예술, #철학, #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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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 및 거주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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