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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최근 '소매업자는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안내 사항을 주류 관련 단체들에 보냈다. 덤핑 판매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거래 방식이 아니라면 소매업자가 주류를 싸게 판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진은 1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맥주 매대.
 국세청은 최근 '소매업자는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안내 사항을 주류 관련 단체들에 보냈다. 덤핑 판매 등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거래 방식이 아니라면 소매업자가 주류를 싸게 판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진은 1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맥주 매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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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국민 먹거리인 라면과 치킨 업계를 조준하여 압박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국민 기호식품인 술에 대한 가격 안정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들려온 소식은 국세청이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 소매점이 술을 공급가(도매가)보다 더 싸게, 즉 할인하여 팔 수 있다는 안내문을 7월 말 국내 주류 관련 5개 단체에 전달했다는 보도였다.

이전까지 업계는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라는 규정에 따라 음식점, 마트와 같은 주류 소매업자는 도매상으로부터의 구매가 이하로 주류를 판매할 수 없었다. 이 규정이 생긴 이유는 주류 제조·도매업자가 점유율 확대 등을 목적으로 소매업자에게 구매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토록 한 뒤 손실액을 보전해 주는 등 편법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내수 활성화 대책으로 기획재정부가 '주류 시장 유통 및 가격 경쟁을 활성화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확대를 유도하겠다'라는 운을 띄우자 이번에 국세청이 상기 규정에 대해 '정상적인 소매업자의 주류 할인 판매'는 허용하겠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외에 정부는 맥주와 막걸리에 붙는 주세(물가연동종량세)의 개편안도 내놓았다. 이와 같은 정부의 행보는 술값을 안정시켜 소비의 확대와 물가 안정까지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해당 정책의 당사자인 음식점 사장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할인 판매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주류 할인 판매에 대해 고깃집 사장님의 반응을 물어봤다.
 주류 할인 판매에 대해 고깃집 사장님의 반응을 물어봤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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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를 도매가보다 싸게 판매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예를 들어 소주가 1000원에 들어오면 그 이하로는 팔면 안 된다고 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이게 풀려서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음식점들이 술을 할인해서 팔긴 어려울 것 같아요."

경기도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을 운영하는 A씨는 필자의 '주류 할인 판매 허용'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술 원가가 다른 메뉴에 비해 좋은 편이지만, (판매가 대비 원가율이 평균 25~35%라고 한다) 요새 임대료는 물론 인건비에 각종 식재료, 공공요금까지 너무 올라서, 이런 손실을 술 판매로 메꾸는 형편인데 그걸 할인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소줏값을 45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렸어요. 주변 음식점들도 다를 비슷한 판매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요.

아마 할인 판매를 한다고 하면 잠시 잠깐 하는 이벤트성으로 하겠죠. 가령 '개업 몇 주년 기념' 뭐 이런 명분으로 시선 끌기용으로 하겠지만 상시 할인은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다를 수 있어요. 본사가 정책적으로 가맹점에 특정 메뉴를 판촉하기 위해 해당 메뉴를 주문하는 손님에게는 소주를 천 원에 팔라고 지시하면 가맹점은 그렇게 따라야 하니 하겠죠.

현재도 순댓국 전문 프랜차이즈들은 소주를 비교적 싼 가격인 3500원에 팔고 있어요. 점주들이 그렇게 팔고 싶어서가 아니고 본사 지침에 따르는 거죠. 그리고 술을 싸게 팔면 당연히 그 손실 비용을 다른 메뉴에 반영하겠죠.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예상했던 바이지만 주류 할인 판매에 대해 사장 A씨는 부정적이었다. 특히 그는 최근 고물가로 음식점 이윤이 무척이나 박해진 상황에서 주류 할인을 선택할 사장은 없을 것이라 전했다. 그러면서도 생존 경쟁에 치인 사장 중 하나가 당장의 매출 때문에 주변 음식점 모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치킨게임의 도구로 '주류 할인'을 사용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 과연 누가 뛰어들까 

광주광역시에서 접객형 대형 치킨점을 운영하는 B씨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주류 할인이요? 제가 장사하느라 정신없어서 그런지 지금 처음 들어보네요. 하여튼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고 해도 저는 절대 안 합니다."

만약 주변 음식점에서 이 정책에 따라 술을 할인 판매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희는 그래도 안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가게 바로 옆에 고깃집이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미 1년째 주류 1+1 행사를 하고 있어요. 맥주나 소주 한 병 시키면 하나 더 주는데, 제가 지켜봤지만, 술값을 싸게 해준다고 해서 손님들이 '거기서 먹을까?' 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하다못해 제가 아는 '술 무한 리필' 안주집도 있는데, 거기는 안주를 시키면 술을 무한정 주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도 별로예요."

꽤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사장 B씨의 말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주류 할인 판매'가 불가했음에도 어떻게 보면 이미 현장에서는 '주류 할인'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가게의 영업 방식이나 판촉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류 할인이 소비자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특히 그는 술 소비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음을 전했다. 치킨 가게 이전에도 대학교 앞에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술 안주를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을 경영한 경험이 있던 그는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술 소비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전했다.

"치킨 가게도 술과 음료를 먹어줘야 마진이 좋아요. 그래서 딱 치킨만 먹고 나가면 섭섭하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술 많이 먹지 않는 분위기예요."

이처럼 현장의 음식점 사장들은 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번 정부 정책을 애주가들은 분명 환영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직원 한 명 쓰는 것도 버거운 현실에 1인 음식점이 추세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사장들이 제 살 깎아 먹기에 가까운 주류 할인 경쟁에 뛰어들지는 무척이나 의문스러울 뿐이다.

태그:#주류할인, #음식점, #술,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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