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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31일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카프카스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기자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 바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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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통상 중국의 장안에서 로마까지 이어진다.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까지가 중국땅이다. 파미르고원 너머 중앙아시아는 카스피해까지 펼쳐진다. 카스피해에서 흑해 사이 땅을 통상 코카서스라 부른다. 흑해와 지중해는 역사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튀르키에가 지배해 왔다.

코카서스인가 카프카스인가?

나는 그간 이들 지역을 끊어서 여행해 왔는데, 이번에 좋은 계기로 코카서스(카프카스) 3국을 답사하게 되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조지아의 항구도시 바투미까지 13일, 약 2주 간 여행했다.

바쿠는 카스피해 서쪽의 항구도시로 석유와 가스생산의 중심지다. 바투미는 흑해 동쪽의 항구도시로 관광과 휴양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주제를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카프카스 문화유산 기행'으로 잡았다.
 
흑해 동쪽 항구도시 바투미
▲ 바투미 흑해 동쪽 항구도시 바투미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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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코카서스와 카프카스라는 두 가지 지명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어 코카서스(Caucasus)에 바탕해,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한 남북지역을 통상 코카서스라 부른다.

그러나 언어적·지리적인 것을 종합해 볼 때는, 현지에선 코카서스보다는 카프카스로 불러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카프카스(Kafkas·캅카스)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는 카프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현재 카프카스를 대표하는 국가로는 아르메니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아르메니아어 표기로는 'Kovkas'다. 조지아어로는 'Kavkasia'다. 아제르바이잔어로는 'Qafqaz'다.

한편, 과거 이 지역을 점령하거나 지배했던 강대국인 이란, 튀르키에, 러시아어 발음도 '카프카스'에 가깝다. 이란어(페르시아어)는 'Qafqaz'다. 이란은 아제르바이잔과 언어적·종교적으로도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다.

이란의 북서부 지역 흑해 연안의 행정구역 명칭이 아르제바이잔이다. 이 지역에 사는 아제르바이잔인이 이천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과거 아제르바이잔 지역이 러시아와 이란에 의해 분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튀르키에어로는 'Kafkas'다. 튀르키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인종적․정치적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형제국이라고 부른다.
 
'러시아인들, 물러가라'는 벽보
▲ 루스키 '러시아인들, 물러가라'는 벽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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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러시아어로는 'Kavkaz'다.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아르메니아와 가깝고, 조지아와는 갈등관계에 있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데, 터키가 아제르바이잔 편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 편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조지아 영토 내에 있는 남오세티아 지역을 점령하고 있어 조지아인은 러시아인을 아주 싫어한다고 알려져있다.

트빌리시 시내에 가면 곳곳 벽에서 'Ruzki go home'이라는 구호를 볼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가 조지아 서북부 압하지아(Abkhazia)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국가로 인정하면서 갈등은 더 심해졌다.

브레히트의 드라마 <코카서스의 백묵원>

내가 카프카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도와준 문학작품이 있다.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대표작 <코카서스의 백묵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폭격으로 파괴된 카프카스 산악마을에서 펼쳐지는 재판극이다. 백묵으로 그려진 원 안에 있는 아이의 진정한 엄마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재판관이 강조하는 개념이 유용성이다. 아이를 낳은 총독부인 나텔라(Natella Abaschwili)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들 미헬(Michel)을 버리고 도망간다. 이에 비해 하녀 그루쉐(Grusche Vachnadze)는 간난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아이를 지켜낸다. 그러므로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는 양모인 그루쉐가 키우는 것이 낫다고 판결을 내린다.
 
카프카스 산맥의 상징 카즈베기산(해발 5054m)
▲ 카즈베기산 카프카스 산맥의 상징 카즈베기산(해발 505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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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막에서는 염소사육 집단농장과 과수재배 집단농장 사이에서 계곡의 물사용(관개: 灌漑)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다. 결론은 계곡에 대한 권리는 노동으로 얻는 소득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생산성이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입장이 이어지는 5막을 통해 서사극 형태로 펼쳐진다. 제1막은 <지체 높은 아이>다. 전쟁통에 총독 부부가 젖먹이 아들 미헬을 버리고, 하녀 그루쉐가 그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다. 제2막은 <북쪽 산악지역으로의 도주>다. 이 북쪽 산악이 바로 카프카스 산맥이다. 제3막은 <북쪽 산악지역에서>다. 그루쉐는 온갖 고초를 겪으며 아이를 지켜낸다. 전쟁이 끝나자 무장 기병들이 그루쉐로부터 아이를 빼앗아 도시로 데려간다. 이때 내레이터로 나오는 가수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장 기병들이 아이를 끌고 간다.
그 귀중한 어린 것을.
이 불행한 여인은 군인들의 뒤를 쫓아 시내로 따라간다.
그 위험한 곳으로.
낳은 어미는 아이를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기른 어미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누가 이 사건을 판결하게 되는지,
누구에게 이 아이를 넘겨줄 것인지?
누가 재판관이 되는지,
공정한 사람인가 아니면 그릇된 사람인가?
도시는 불탔다.
재판관석에는 아츠닥이 앉아 있다."

 
카프카스 산악마을
▲ 카프카스 산악마을 카프카스 산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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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막은 <재판관 이야기>다. 아츠닥은 마을의 서기로 군인들에 의해 재판관으로 임명된다. 그는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제5막 <백묵원>에서 이 아이의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하는 재판이 이루어진다. 총독부인과 하녀 그루쉐는 모성애에 대한 소송에 돌입한다. 아츠닥은 백묵원 시험에 들어간다. 총독부인은 아이를 끌고 가지만, 그루쉐는 아이를 끌고 갈 수 없어 놓아버린다.

"그루쉐: (절망적으로) 내가 그 애를 키웠거든요. 내가 그 애를 찢어 당겨야 하겠어요?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어요.

아츠닥: (일어난다) 이제 본 법정은 누가 이 아이의 진정한 어머니인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루쉐에게) 네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거라. 아이를 데리고 이 도시에 머물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총독부인에게) 어서 꺼져 버려. 사기죄로 형벌을 내리기 전에."


연극의 끝부분에 가수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날 저녁 아츠닥은 사라졌다. 그루지아 사람들은 그 사람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때를 정의가 구현된 황금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재판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사회정치적인 유용성이다. 카프카스와 조지아에서는 잠시 황금 시절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주어진 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했던' 시절이다. 드라마를 통해 잠시 그걸 엿볼 수 있었다.

태그:#코카서스, #카프카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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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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