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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현충일과 유사한 행사 등을 할 때 양귀비 꽃을 상징으로 사용한다. 노병의 손에 들린 양귀비 꽃이 함께 애환을 보이는 듯하다
 호주에서는 현충일과 유사한 행사 등을 할 때 양귀비 꽃을 상징으로 사용한다. 노병의 손에 들린 양귀비 꽃이 함께 애환을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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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추웠어요. 너무너무 추웠다는 기억이 제일 크게 남아있죠."

아주 오래 전 아직 '정정한' 그들, 한국전 참전 호주용사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추억 이야기였다. 서너 달 지나면 집으로 돌아오겠다면서 떠났던 열여덟, 열아홉 '소년'들은 길어진 한국전쟁에서 길게는 3년을 넘기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떠났던 친구를 잃어버리고 슬픔 가득 안은 채 홀로 귀국길에 오른 병사도 있었다. 그리고 흐른 세월이 어느새 70년.

정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전세계 22개국에서 각종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곳 호주 빅토리아 주 멜번에서는 지난 7월 27일 오전 11시, 멜번 시내 소재 전쟁기념관(Shrine of Remembrance)에서 헌화식을 가진 후 인근 풀맨 알버트파크(Pullman Albert Park) 펑션 홀로 자리를 옮겨 참전용사들을 위한 감사 오찬 행사를 열었다.
멜번분관(분관장 이창훈 총영사)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24명 빅토리아 주에 거주하는 생존 참전용사들 중 17명과 참전용사 유족 및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1부 헌화식은 KVAA(Korea Veterans Association of Australia : 한국전 참전 호주용사 협회) 프레드리만(Fred Lehmann) 부회장이 진행을 맡았으며, 존 브라운빌(John Brownbill) 목사의 기도로 시작됐다.

기념시 낭독, 기념사에 이어 이창훈 총영사는 답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참전했던 1만7146명의 용감한 호주군인들의 희생을 기리고 정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이들의 희생이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총영사는 어떤 말로도 이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여러분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나탈리 술레이먼 호주재향군인 장관, 로벗 웹스터 RSL (Returned and Services League of Australia) 빅토리아 주 회장등을 비롯 많은 호주 정치인들과 군 관계자들이 차례차례 헌화했다. 박응식 빅토리아 주 한인회장, 최종곤 한국전쟁 참전비 관리위원장 OAM, 김경운 민주평통 멜번지회장, 리차드 조 한화디펜스 호주지점장 등도 준비한 화환으로 희생 용사들을 기렸다.

묵념, 양국 국가 제창등으로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인근 풀맨 알버트팍 펑션 홀로 자리를 옮겨 멜번분관 주최 참전용사들을 위한 감사와 위로 오찬 행사를 이어갔다.
 
정전70주년 기념 헌화식이 거행되고 있는 멜번 전쟁기념관 내부
 정전70주년 기념 헌화식이 거행되고 있는 멜번 전쟁기념관 내부
ⓒ 스텔라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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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총영사는 환영사에서 참석 귀빈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감사와 환영의 뜻을 전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해 주는 참전용사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한 바로 전날 들려온 특별한 소식, 바로 한화디펜스가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를 생산 공급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는 내용을 전하며 여러분이 희생으로 지켜준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을 했고, 앞으로 양국의 우호관계는 더욱 발전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웨이블리 한글학교(교장 조영애)의 어린이 중창단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헌화식과 오찬에서 양국 국가를 리드 해 큰 박수를 받았으며, 이채순 단장이 이끄는 한사랑 북소리 패의 공연도 환호 속에 이어졌다. 또 식사가 시작되며 한국의 TV 방송을 통해 방영됐던 세계 각국 참전용사 인터뷰와 멜번에 거주하는 윤영철 피디가 제작한 호주 참전용사 인터뷰 필름, 민주평통 멜번지회(지회장 김경운)가 제작한 회고 동영상과 더불어 멜번 한인 2세 도미닉 김(Fly High Production)이 드론으로 촬영 편집한 한국전참전비 동영상이 소개됐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는 참전용사들에게 사진 앨범을 증정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이 앨범은 지난 5월 멜번분관 주관으로 이대산 사진작가가 참전용사들의 개인 및 가족사진을 촬영, 액자로 제작한 것이다. 훈장을 달고 멋진 포즈로 찍힌 사진이 액자에 멋지게 담겨진 것을 보며 참전용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노병들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액자를 들여다보고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다.

1, 2부 순서에서 스피치에 나선 귀빈들은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돼 왔지만, 그 중심이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절대 잊지 않은 전쟁'으로 만들어줬다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멜번분관에서 제작 준비한 기념 사진 액자를 받고 환하게 웃는 참전용사 
(왼쪽은 멜번분관 이창훈 총영사
 멜번분관에서 제작 준비한 기념 사진 액자를 받고 환하게 웃는 참전용사 (왼쪽은 멜번분관 이창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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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군관계자들도 '많은 전쟁이 있었으나 끊임없이 우방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면서 '그런 나라여서 오늘같은 큰 발전을 가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에게 넘치는 감사를 하며 영웅으로 만들어 준 것을 감사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처음 그들을 인터뷰하고 행사를 취재했던 십수 년 전, 그들은 '한국의 추위', '생각보다 긴 전쟁에서 가졌던 향수', 그리고 전쟁의 아픔을 딛고 놀랍도록 발전한 대한민국을 이야기했다. 다시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던 참전용사들은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을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매년 이어진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통해 참전용사들과 참석 한인들은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농담도 주고 받을만큼 가까워졌다. 실지로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매 행사때 마다 멋진 진행 솜씨를 보이는 멜번분관 김가혜 전문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에게 보낼법한 눈빛과 미소를 보이곤 한다.

그렇게 우방국 군인이 아니라 오래 봐 온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해진 그들이 얼마 전 부터 헤어질 때면 꼭 하는 인사가 있다.

"See you next time…(다음에 또 봅시다)". 그렇다, 여기 까지는 흔한 인삿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덧붙인다. "If I can…(할 수 있다면.)" 그럼요… 할 수 있죠. 할 수 있고 말고요. 다음에 꼭 봬요.

마주 인사를 하지만 차츰차츰... 그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 90세를 넘긴 노병들은 만약 자신이 할 수 있다면 또 보자고 인사를 하면서 여전히 해맑게 웃는다. 그런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평화를 우리가 누리고 있지만... 전쟁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아 안타까움을 남긴다.

'정전'이 아니라 '종전'으로 가기 위한 숙제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다.
 
호주멜번전쟁기념관
 호주멜번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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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멜번저널>에 중복 게재됩니다.


태그:#한국전참전호주용사, #멜번, #정전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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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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