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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여름이 깊어지면서 시도때도 없이 곤충들이 출몰한다.
▲ 분홍 마가렛 위에 앉아있는 사마귀 여름이 깊어지면서 시도때도 없이 곤충들이 출몰한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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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이렇게 키워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나는 아이들을 극강의 자유 속에 놔둔다. 바뀐 나이로 6살, 8살인 두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를 가는 것 외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둘째는 집에 오면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혼자 책을 보며 뒹굴거린다. 학교에 다니는 첫째는 해가 질 때까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고, 집에 오면 간신히 숙제 정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학습지를 하지도 않고, 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다. 공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게 전부이고, 집에서는 숙제 이외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혹시 어려워하는 점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하는 일이다. 학습지를 시키지 않는 건, 단순한 반복의 공부가 아이에게 꼭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내 생각 때문이다. 학원은 아이가 다니고 싶어하지 않아 보내지 않고 있다. 사교육을 아예 시키지 않겠다는 강경 반대론자는 아니다.

세상 모든 게 공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세상 모든 게 공부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공부가 꼭 책 속에 있지 않다고 믿기에, 아이가 공부라는 단어에 일찍 질려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고 엄마아빠도 여전히 세상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다. 앉아서 하는 것말고도 모든 걸 공부로 받아들인다. 인사하는 것도, 놀이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책도 무엇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매주 도서관에 함께 가는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마음껏 고른다. 요즘은 두 녀석 모두 학습만화에 꽂혀 있어, 온갖 종류의 학습만화를 빌려 보고 있다. 종일 학습만화만 읽어도 그저 놔둔다. 만화를 많이 보는 게 아이에게 나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떤 책이든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는 게 아닐까.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것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시들해지겠거니 하고 있다.

너의 덕질을 응원해
 
바닷가 돌 사이사이에는 보말, 거북손, 갯강구, 게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관찰 중인 아이들.
▲ 바닷가는 신나는 놀이터 바닷가 돌 사이사이에는 보말, 거북손, 갯강구, 게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관찰 중인 아이들.
ⓒ 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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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성실히 좇아간다. 이른바 덕질을 하는 것. 첫째의 경우 아주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코끼리를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공룡을 줄줄 읊었고, 다음은 곤충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지금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혀를 낼름 거리는 뱀이나 새끼 지네를 보고도 귀엽다고 한다. 웬만한 생명체는 맨손으로 잡는다. 공벌레, 거미, 사마귀, 귀뚜라미 등. 시골이다 보니 늦봄부터는 곤충들이 많이 출몰하는데, 아이는 수시로 잡았다 놓아준다. 쓰지 않는 빈통에는 날마다 다른 생명체들이 입주를 한다.

비가 자주 오는 장마에도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마당에서 발견한 사마귀를 채집통에 넣었다. 산란관이 있는 걸로 봐서 암컷이라고 첫째가 말한다. 풀밭을 뛰어다니는 귀뚜라미와 섬서구메뚜기도 함께 잡아 두었다. 곤충들이 좋아하는 허브도 잔뜩 넣었다. 운 좋게 마당에서 플라나리아도 만났다. 몸이 잘려도 다시 재생되는 신기한 동물. 아이들은 플라나리아를 책에서만 보고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촉촉한 채집통에 넣어놓고 관찰을 하고 있다. 미끈한 몸에 세모 머리,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새가 퍽 신기하다.

학교에서는 스스로 곤충채집 동아리를 만들어,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학교 주변 생물들을 관찰하고 채집한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면 잡은 것들을 풀어주고 채집도구들을 씻어 정리하는 것까지 아이의 몫이다. 아이는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여러 명의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표라는 자리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책임지고 일하는 자리라는 걸 배워간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더 값진 공부를 하고 있는 것.

앎의 기쁨을 알아가길

순수하게 무언가를 궁금해 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참 귀하다. 덕질은 아이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다. 아이는 나보다 동물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다. 내게는 생경한 동물의 이름도 척척 맞추고, 특성에 대해서도 줄줄 말한다. 이 관심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마음만은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바란다. 살면서 그런 열정에 사로잡힌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공부는 습관이 아니라 동기부여로 지속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세상에 대해 넘치는 호기심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고, 모든 공부를 짐으로 받아들인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관찰하고, 그 관심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게 아닐까.

아이가 커갈수록 공부할 양이 늘어나고, 꼭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 전까지는 아이가 자유롭게 세상을 탐구했으면 좋겠다.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정말 찰나에 불과하니. 이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는 곳인지, 앎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배워갔으면 좋겠다. 앎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을 극강의 자유 속에 던져놓는다. 지금 이 자유로운 시간이, 그리고 순수한 열정이 아이들을 자라게 할 것이라 믿으며.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제주도, #육아삼쩜영, #육아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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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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