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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서 출생해 신생아 예방접종을 받았으나 출생 신고되지 않은 아동이 2236명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이 중 1%인 23명에 대해 집중 조사를 지시하였고, 그 결과 2023년 6월 22일 현재까지 23명 중 3명의 아동이 살해되거나 사망하였고 1명이 유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고한 아동의 생명을 담보로 10여 년 넘게 논의되어 오던 출생통보제는 30일 본회의에서 통과되었고 1년 후부터 출생통보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게 되었습니다. 이와함께 병원에서의 출산을 기피하는 산모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회원들은 연속기고를 통해 최근 논의되는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도입 및 정착을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합니다.[기자말]
최근 언론에 출생통보제와 더불어 보호출산제에 관한 기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미등록 아동을 방지하기 위한 '출생통보제'가 지난 6월 30일 통과되자, 보호출산제에 대한 도입 논의도 급물살을 타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김미애 의원안)'과 '위기 임산부 및 아동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조오섭 의원안)'에 의하면, 위기 임산부의 병원 밖 출산을 막기 위해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여 임산부와 신생아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과연 보호출산제가 영아 살해 내지는 유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인가?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과연 위기 임신·출산에 처한 여성은 위기에서 구원받을까? 익명 출생이 과연 아동을 구원하는 동아줄일까? (이하에서는 본 제도의 본질적 성격에 비추어 보호출산제를 '익명출산제'라 명명한다.)

현재 익명출산제의 도입 여부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익명출산제가 마치 아동의 생명을 살리는 최후의 보루이자 묘안처럼 호도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익명출산제에 대한 논의는 베이비박스 존치에 대한 찬반 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익명출산제와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측은 익명출산제와 베이비박스가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고 그것이 아동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아동의 생명권 보호에 대한 이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베이비박스의 존치 또는 익명출산제의 시행을 통하여 아동의 생명권이 보호된다는 주장을 곱씹어 보면, 소위 아동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행위들(베이비박스 운영 또는 익명출산제 시행)이 과연 '진정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을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체성에 대한 권리 희생될 수 있다고 여겨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 또는 익명출산제를 통하여 출생한 아동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게 해 줬으니 고마운 줄 알고(!), 친생부모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 "나의 출생정보"를 평생 알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해야 할까?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출생정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제7조 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에서도 '모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진다(제24조 제2항)'라고 적시하며, 아동의 출생 즉시 등록되고 성명을 가질 권리 나아가 국적을 취득할 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아동의 출생이 등록되고, 성명을 부여받으며,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동 정체성 형성에 기본적인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아동이 '등록'되어야 비로소 국가 안전망 안에 포함되어 예방접종 및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의 대상이 되고 나아가 영아 살해 및 유기, 신생아 매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엔 인권이사회는 '출생등록과 법 이전의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이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권리(Birth registration and the right of everyone to recognition everywhere as a person before the law)'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며, '개인의 법적 신원을 구성하는 기본 특성, 부모의 이름 등 아동의 가족관계를 포함하여 개인의 권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가 출생증명서에 기록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A/HRC/RES/52/25).

국내에서도 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해서는, 특정 아동의 출산 사실을 확인한 의사, 한의사, 조산사 등이 발급한 '출생증명서'가 필요한데, 해당 서류에는 ① 출생장소, 출생일시, 임신기간, 다태아 여부, 출생아의 신체 상황 및 건강 상황 등 아동 고유의 정보는 물론 ②출생아의 부모의 정보(이름, 연령, 직업), 산모의 주소 등 아동의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적시되게 되어 있다. 즉, 아동의 출생정보라 함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출생 당시의 아동의 상태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아동의 부모에 대한 정보 또한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있다. 사연 없는 가정은 없다고 할지라도 많은 경우 우리는 나를 있게 해준 부모를 알고 있고, 나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형제자매들을 알고 있으며, 나아가 나의 친척들을 알고 있다. 이는 '나'라는 존재가 이 광활한 우주의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것으로, 이러한 정보가 본인의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사항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가족 찾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입양인들의 가슴 아픈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부모 등 정보를 포함한 출생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나'라는 정체성 형성에 소요되는 엄청난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반면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이나 익명출산제를 통하여 출생한 아동들은 위와 같은 자신의 출생정보에 대하여 접근 할 수 있는 권한이 원초적으로 차단된다. 베이비박스를 이용한 산모 중에는 아동에게 남기는 쪽지를 통하여 간혹 아동의 몸무게 및 예방접종 시행 여부 등을 포함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하나, 이러한 경우에도 산모 본인의 신분을 파악할 만한 정보는 남기지 않고, 남긴다 해도 아동이 이에 접근할 방법은 현행법상 전무하다.

익명출산제의 경우 산모의 정보는 밀봉하여 아동권리보장원에서 보관되며, 아동이 성인이 되어서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이 역시 친생모의 동의 없이는 가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아동의 출생 상태에 대한 정보와 친생부모의 정보를 포함한 기록을 통칭하여 '출생에 관한 정보'라고 할 때, 한 아동의 출생과 한 여성의 출산에 대한 기록이 오롯이 친모만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동의 출생기록은 아동이 태어났음과 함께 OOO의 자가 태어났음에 대한 기록인데도, 베이비박스나 익명출산으로 기록된 아동들은 '태어났음' 이외의 기록은 백지로 남는다.

출생한 한 인간의 삶을 '생명을 구했다'라는 확인되지 않은 명분(이 명제는 베이비박스가 없었다면 생명을 잃는다는 인과가 성립해야 사실이 된다)으로 '한 인간의 정체성 중 핵심적인 부분을 백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베이비박스 또는 익명출산의 문제이다.
  
가족 찾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입양인들의 가슴 아픈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부모 등 정보를 포함한 출생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나'라는 정체성 형성에 소요되는 엄청난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가족 찾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많은 입양인들의 가슴 아픈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부모 등 정보를 포함한 출생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나'라는 정체성 형성에 소요되는 엄청난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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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출산제와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

익명출산제나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많은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이것이 아동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위기 임신 상태로 아동의 임신을 중단하기를 원하거나 양육 포기를 고민하는 친생부모에게는 "아동을 베이비박스까지 잘 데리고 오기만 하면 아동유기의 사유는 묻지 않겠다"며 손쉬운 아동유기에 대한 정보를 주고, 심지어 '안전한' 유기라며 죄책감까지 덜어주며 아동유기를 조장한다. 나아가 아동에게는 "부모의 정보를 알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부모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네가 살 수 있었단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복지부 2021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세 이하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한 달에 평균 약 100만 원의 양육비를 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통계청의 2021년 평균 월급이 333만 원임을 감안하면 총 수입의 1/3이 아이 양육 비용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동 양육비의 증가는 비단 미혼모뿐만 아니라 법적 배우자의 자녀를 임신한 여성과 그 가정의 구성원들에게도 임신 및 출산 자체를 고민하게 한다. 하물며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임신을 했다면 이는 그 자체로 '위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여성이 아동 양육을 포기하기까지는 이 같은 경제적 위기 상황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아동 양육의 책임을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상대방 남성이 그 책임을 회피(예를 들어 여성이 임신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핸드폰 번호를 바꾸거나 게임 아이디를 삭제하는 방법으로 사라져버리는 등)하고, 불안한 고용상태에 있는 여성은 당장 휴가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혹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학업 중단이 어렵고) 당장 일을 하지 못하면 생계유지 자체가 어려워지고, 여성의 원가정과도 관계가 단절되어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등 여러 복합적인 사정들로 인하여 양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단순히 '기록이 남는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기록에 남는 것이 두려워 '아기를 버리거나 죽일 수 있는 모성'으로 미혼모를 낙인 찍는 것으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구조적 편견을 고착화한다.

더군다나 베이비박스 또는 익명출산제를 통한 위기 임신에서의 상담은 이러한 산모의 유기 사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아동 원가정 양육에 필요한 사회적·경제적 통합 지원을 우선하지 않고, 쉽게 아동 양육 포기 의사를 재단한다. 아동 양육을 포기할 만큼 어려운 개별적 사정들에 귀 기울이지 않고(또 들었다고 해결해 줄 의지도 여력도 없으니) '그래 아동을 못 키우겠다고 하니 아동을 여기에 맡기고 가라'라는 메시지만을 준다는 점에서 아동의 유기를 조장한다.

또한 익명출산제가 위기 임산부의 산전 검사와 출산 등을 경제적 지원한다고 하나, 그 대상이 되는 아동은 입양될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어려운 사정에도 아동을 양육할 의지를 가진 미혼모들은 본 제도의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다. 경제적 곤궁 등을 이유로 익명 출산 신청하고 출산한 산모가 출산 후 익명 출산을 철회하고 아동을 양육하고자 할 경우, 미혼모에게 지원했던 병원비의 환불을 요청할 것인가?

이처럼 익명출산제는 입양을 통한 아동의 양육을 포기한 경우에만 지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 곤경에 처한 산모들에게 '안전하게' 아동 양육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익명출산제가 시행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베이비박스가 사라지지 않고 현존 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익명출산제는 아동 출생 전에 상담을 통하여 익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하도록 지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동 출생 후에도 산모가 원하는 경우 출생 후 1개월 내에 한하여 익명으로 아동을 지자체가 인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미 출산을 했지만, 아동 출산 후 1개월이 지난 산모에게는 익명출산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아동 출산 후 1개월이 지난 산모에게 또 다시 아동 양육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도록 할 것인가? 기존과 동일하게(?) 베이비박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다분하지 않을까?

전폭적인 위기 임신 출산 지원 정책으로 진행되어야

이러한 상황들을 살펴볼 때, 위기 임신 출산에 대한 정책의 방향은 결국 위기 임신 출산의 모든 산모에 대한 상담 및 전폭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임신, 출산 및 양육 기간 중 언제고 찾아 올 수 있는 '위기'의 시간에 효과적으로 대응을 하며 아동과 여성 모두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익명출산제를 위시한 아동과 친생부모의 영구적 분리 가능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산모 정보에 대한 익명성'을 바탕으로, 아동과의 영구적이며 손 쉬운 분리를 가능하게 하는 베이비박스는 여전히 잔존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임신-출산-양육의 전(全)과정에서 여성의 삶은 사라지고, 여성은 단지 특정 아동을 품었던 익명의 모체로서 존재할 뿐, 아동의 삶과는 영영 분리되고 만다.

그러나 여성이 아동을 임신했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고, 그로 인하여 특정 개인이 태어나 실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모의 임신과 출산의 사실이 사라지지 않으며, 그로 인해 태어난 아동의 존재가 부정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모든 아동 양육의 포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그 여성의 삶의 이야기가 전제되어야 하며, 동시에 아동의 존재가 부정되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지껏 이들의 어려움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베이비박스'라는 것을 안내하며 이들에게 쉽게 아동을 포기하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아동이 태어나서 존재하는데 어떻게 그토록 쉽게 없었던 일이 되는가? 이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부정 당하는 심정을 과연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이제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효과적인 통합지원(긴급 핫라인, 의료, 거주, 자립, 양육 등)을 통한 위기 임신 지원 정책을 통하여 친부모와 아동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지, 익명 출산의 도입을 통한 아동과 친부모와의 영구적 결별은 결코 아닐 것이다.

통합적 위기 임신 지원 정책의 설립 및 추진이 여러 부처(여가부, 복지부, 교육부 등)와 함께 시행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이지만, 결국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 다른 쉬운 길을 찾다보면 그것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것이 먼저이다.

* 필자 소개: 글쓴이 전민경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출생등록제 제정, #보호출산제 반대, #민변 , #아동청소년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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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88년에 결성된 변호사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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