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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편집자말]
병원 병실(자료사진)
 병원 병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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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계단을 내려가는 젊은 여자는 간호사다. 아침 6시 10분에 달리듯 계단을 내려가며 가방을 뒤지는 건 출입용 IC 카드를 찾는 행동이다. 짐작대로 그녀는 신속하게 단말기에 IC 카드를 댄다. 삐익~ 철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도 나도 탈의실에 들어섰다.

낮은 조도 아래서 간호사 몇 명은 소파에 눕다시피 기대어 졸린 눈을 감고 있고, 서너 명은 핸드폰을 보며 어제오늘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다를 떤다. 휴게실 안쪽 캐비닛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휴게실을 나온다. 병동 업무 시작 전에 스트레칭을 할까 하는데 다른 층 간호조무사가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자기네 층은 간호조무사 다 채워졌어요?"
"네. 선생님 계신 층은 아직이에요?"

"어제 파트장한테 혼자 근무하기 힘들다고 빨리 간호조무사 구해달라고 했더니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시행령인가 뭔가에 '간호조무사 한 명이 환자 삼십 명을 케어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면서 참으라는 거예요. 파트장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기가 막히고 화가 나던지."


맞장구를 치기도 전에 서운함과 분노 짙은 말이 이어졌다.

"간호사는 한 명당 환자 여덟 명을 케어하고 간호조무사는 혼자서 삼십 명의 환자를 돌보라고! 간호조무사가 무슨 로봇도 아니고!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참고 있는데 이게 말이 돼? 걸어 다니는 환자 삼십 명인 건지 대소변 치우는 환자 삼십 명인 건지 적혀있는지 궁금하네. 통합병동에서 한번 근무하면 다시는 안 한다잖아. 최저 임금으로 3교대 하면서 몸만 상하지. 젊은 간호조무사들이 통합병동 근무를 한데? 통합병동 간호조무사 구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누가 다시 하고 싶겠어! 할 짓이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어라 덧붙일 말이 없었다. 호응을 원하는 대화가 아니었다. 그냥 넋두리고 푸념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인력배치에 관한 정보는 나 역시 처음이었다. 일 년 넘게 근무하면서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간호조무사 7명이 3교대로 근무하면서 40병상의 환자를 케어하는 기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은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정보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은 나이 드는 또 다른 증거다.

다른 층 간호조무사와 함께 병동을 향해 나란히 걷는데 착잡했다. 업무를 시작도 하기 전에 어깨가 무거웠고 뭔가 아니다 싶으면서 급격히 기분이 다운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면서 '선생님~ 그래도 파이팅!'이라고 한마디 남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웃는 얼굴이 스쳐서 조금 위안이 됐다.

병동 문이 열리고 간호조무사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밤새 혼자 근무한 동료 간호조무사가 환자인수인계를 위해 준비하고 앉아 있었다.

"오늘 가장 주의를 요하는 환자는 세 명입니다. 첫 번째 환자는 어제 입원하셨고 정형외과 환자로 팔에 깁스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분이 거의 30분마다 호출벨을 눌러서 자기 몸을 침대 머리쪽으로 끌어올려 달라는 거예요. 둘이 끌어올려도 힘든데 환자가 일절 움직이질 않아요. 밤에 혼자 할 수 없어서 액팅 간호사랑 같이 서너 번 끌어올렸는데 지치더라구요."
"긴 밤이었네요. 울 선생님 퇴사각이네."

"가방 들고 집에 가려다 참았어요. 다음은 이분이에요. 컨디션이 완전히 다운돼서 의식이 없어요. 어제도 관장했고 오늘도 관장 서너 번 한데요. 그리고 이분도 컨디션이 안 좋아요. L-튜브 환자인데 영양식이 안 맞는지 계속 설사해요. 어제 이브닝 근무자들이 완전히 지쳐서 퇴근했어요."
"아침부터 왜 이러죠? 기운빠지게. 다른 층 간호조무사 선생님 하소연 듣고 올라왔는데! 출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은 이 마음을 어쩌죠!"


밤샘 나이트 근무한 동료를 보내고 잠시 혼자 앉아 병동을 살펴본다. 2호실 병동 벽면 게시판 좌측 상단에 내 키도 훌쩍 넘는 곳에 A4용지 한 장이 붙어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 궁금증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니 그동안 관심밖에 있던 것이 보인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생각이 퍼붓는다.

'간호 인력 배치 기준' 글귀 아래 *간호사:환자=1:8 *간호조무사:환자=1:30 *지원인력:환자=1:7이하 라고 명시되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필요성과 역할의 중요도를 피력할 생각은 없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당위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시대로 진입하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대안이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점 역시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령의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할머니의 입원을 위해 동행한 막내딸이 60대다. 할머니의 막내딸은 "저희 어머니 잘 부탁드려요. 실은 저도 허리가 아파서 자주는 못 올 거예요. 손주들이 있긴 하지만 젊은 사람은 돈 벌어야죠"라며 할머니를 부탁했다.

보호자에게 알겠다 걱정하지 마라, 배웅 인사를 하고 전자 차트를 연다. 입원환자의 나이를 모두 더하고 평균 나이를 계산해보니 '74.2'세다. 가장 많이 입원한 연령은 80전·후반이다. 40, 50대는 서너 명, 90대는 두 명, 100세는 한 명이다. 40, 50대 환자의 자녀는 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일 확률이 높고 80, 90대 환자의 자녀는 50, 60대일 것이다. 40대 환자 중 한 명은 미혼이다. 독거노인 한 분도 입원 중이다.

2021년 11월 1일 입사 당시에는 병실 8개에 40병상을 운영했다. 2022년 상반기부터 병실 6개에 30병상을 운영했다. 3, 4년 근무한 간호사들이 대규모 퇴사하고 신규간호사들의 입·퇴사가 이어졌다. 신규간호사들은 트레이닝을 끝내기도 전에 정신없이 퇴사했다.

근무 형태가 수시로 바뀌는 3교대가 피곤하다. 수액박스를 나르고 린치로 산소통을 교체하고 간간이 환자의 대소변 케어를 도와야 하고 트레이닝 과정에서 긴장과 압박감을 견뎌야 한다. 병동 간호사들은 외래간호사들과 달리 환자와의 친밀도가 높다. 병동 간호사들은 입원환자들에게 일정 기간 치료, 처치, 투약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숙박숙식'을 관리하는 매니저다.

현재 소속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간호조무사 팀원은 모두 7명이다. 7명의 평균 나이는 54세다. 현재 구성원이 완성되는 몇 개월 동안 입·퇴사한 간호조무사는 4명이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경력자로 입사한 자는 '무슨 요양병원도 아닌데 노인 환자랑 중증 환자가 이렇게 많아요?'라며 퇴사했다.

간호조무사팀은 주말 근무 시 서너 시간 동안 파트너 없이 근무한다. 데이 근무자는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이브닝 근무자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혼자 30명의 환자를 케어하며 병동을 수비한다.

환자가 혈관주사를 빼서 침대 시트와 환의를 적시는 일이 없기를, 고령 환자들이 대소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기대를 저버린다. 평균 나이 54세인 간호조무사들은 '젊은 애들도 아니고 2년을 못 버티면 나잇값 못하는 거지. 우리가 언제 병동일을 해보겠어?'라며 일한다.

두 달 근무하면서 유독 친해진 신규간호사가 퇴사한다며 음료수를 건네고 인사한다.
"간호조무사님~ 저 오늘까지만 근무해요. 간호사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4년이나 배웠으니 다시 하긴 하겠지만! 병동 간호사는 안 할래요"라고 한다.

특정 진료과목의 의사 부족과 간호사 인력 부족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국가나 대형의료기관, 전문보건의료단체가 인력 수급 지원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간호조무사 인력도 점검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나 '더럽고 험한 일'을 피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험한 일은 한 명이 환자 삼십 명을 돌봐야 하는 간호조무사의 몫이다.

병원은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다. 어느 조직 하나가 목적을 상실하고 기능하지 않으면 멈추게 된다. 생명을 다루는 대형 유기체가 최하부 조직을 단단히 엮고 단도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무형태 개선, 병가와 휴가를 위한 대체인력 확보, 동료애와 소속감 상승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계약직 직원들의 다양한 계약방식을 통한 인력 유출 방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일어나는 환자의 무례와 성적수치심 유발 행동에 대한 개선과 홍보가 절실하다.
 
"간호조무사님~ 간호조무사님~ 저 좀 도와주세요. 환자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바늘이 빠져서 시트랑 옷에 피가 묻었어요."


A팀 3호실 액팅 간호사가 다급하게 부른다.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는 넋두리같은 생각이 잘린다. 의자에서 일어나 린넨실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시트랑 환자복 가지고 갈테니 기다리세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현직 간호조무사입니다.


태그:#보건의료, #병원, #인력부족,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간호조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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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보건의료노동자의 친구 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한국의 대표적 산업 노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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