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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비가 오던 날 며칠 전 아침, 28개월인 셋째와 저는 유아차 없이 도보로 어린이집을 갔어요. 성인 걸음으로 8분이 걸리는 거리를 아이와 함께 비 오는 풍경을 즐기며 나란히 걸어갔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다 왔을 때 즈음 막둥이의 걸음은 급격히 느려졌어요. 지금까지 잘 걸어온 것만 해도 대견해서 저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습니다. 제 노트북 가방과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은 점점 비에 젖어갔고 저의 한 손에는 우산이 또 다른 한 손에는 90센티가 조금 넘는 사내 아이가 안겨 있었어요.
 
세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
 세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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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걸음 정도 갔을까요? 아이의 장화 한 켤레가 슬슬슬 벗겨지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습니다. 저는 쭈그리고 앉아 한쪽 허벅지 위에 막둥이를 앉힌 뒤 장화를 다시 신겨주었어요. 그때 막둥이가 바로 "미안해"라는 말을 하더군요.

아이는 엄마가 떨어진 신발을 신겨주는 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괜찮다고 말해 주었죠. 그랬더니 아이는 "신발이 벗겨져서 속상해"라고 자기 감정을 짧게 표현해 주었어요.

다음 날엔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여러 갈래 길 중 하천을 따라가고 싶다고 두 번이나 말했어요. 3월에 등원 거부가 심하던 아이가 어린이집을 즐겁게 가는 것 자체가 대견해서 저는 아이의 뜻대로 하천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좀 있어서 "아이고 힘들다"라는 멘트를 혼잣말처럼 내뱉었어요.

갑자기 아이는 "엄마! 힘내라! 엄마! 힘내라! 엄마 많이 힘들어요?"라는 응원과 질문을 하지 뭐예요? 이틀에 걸쳐 아이로부터 들은 몇 마디의 말은 시간이 지나도 제 마음 한켠에 딱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감정을 그 아이만의 언어로 잘 표현하는 모습이 대견했어요.

세 아이를 키우며 배우는 것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비슷한 시기를 보낼 때의 첫째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되었습니다. 두 돌 때쯤이었을 거예요. 빨대물병의 뚜껑을 혼자 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서 눈물을 흘리며 온갖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럴 땐 속상해요라고 하면 돼"라고 바른 감정 표현법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초보 엄마인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그 사이 8살이 된 첫째는 최근에도 책가방 정리가 어렵다며 투덜댔어요. 순간 저도 짜증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하지만 며칠 전 막둥이의 말들이 저를 돌아보게 해주어서인지 아이의 투정을 훈계의 말로 받아칠 수가 없었습니다. 무한반복을 하더라도 바른 표현을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정리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정 도움이 필요하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말해."

이 말을 하고 나니 저의 미숙했던 엄마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방법은 정작 몰랐습니다.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아 기르다 보니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요구사항을 잘 이해하고 때때마다 그런 아이의 다양한 마음을 짧은 말을 통해 읽어주고 아이 귀에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아이 하나를 키우면 그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온전히 두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셋을 키우는 저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온전한 관심을 두기가 버겁습니다. 휴직 중인 저와 직장을 다니는 남편이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서 하고 있거든요. 하루하루가 팍팍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요.
 
세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
 세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엄마로서의 나
ⓒ 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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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셋을 키우는 게 헛일은 아니더라고요. 비록 아이 셋의 일상을 부모가 오롯이 집중해서 들여다 보기는 어렵지만 첫째와 둘째가 자라나는 과정을 틈틈이 지켜보면서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저의 육아력이 계단식으로 성장하지 않았어요. 회사로 비유하자면, 저는 신규 발령을 받은 것만으로도 신나서 자기 환상에 빠진 채로 일을 안 배우려는 오만한 모습을 지녔었으니까요. 엄마가 된 것에 취한 엄마였습니다. 아이를 낳았으니 의식주를 잘 해결해 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둘째, 셋째를 낳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다른 삶을 사는 엄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내가 아이와 함께 있었을 때 겪은 상황이 비슷하게 펼쳐져 있는데 옆 엄마는 나와 정반대의 반응을 아이에게 하는 걸 보고는 저의 완고한 생각들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엄마인 줄 알았던 저에 대한 균열은 점점 심각해져 갔어요. 가족끼리 나들이를 갔을 때 함께 간 제 친구가 자기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옆집 엄마의 모습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아이 친구의 엄마에게서 등. 나와는 영 다른 모습들이 확대경을 끼고 보는 것처럼 더 크게 보이더라고요.

셋을 낳고서 제가 진짜 엄마의 삶을 배울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지요. 주변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완전한 엄마가 아니라 완벽이라는 틀에 갇힌 엄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걸 자각한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저도 성장해갔습니다. 아이를 탓하고 다그치고 책임을 묻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거두어들이고 아이에게 온전한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희 아이들 셋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어요. 빨대컵 뚜껑을 혼자 열려고 하는 건 자율성의 발달을 보여주는 한 예이고, 이건 성장의 한 계단을 올라서려는 아이의 절절한 노력이 포함된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학부생 시절 글로 배운 교육 심리 내용을 제 아이들을 통해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 자체로 빛나는 아이들

이런 과정을 몇 년간 거치고 나니 저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특히 내 아이들에 대해 걱정과 불안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첫째의 마음성장에 대한 조바심이 컸는데 이내 아이는 아이만의 방식대로 조금은 곁길로 빗겨났던 마음 걸음들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달까요?

엄마인 저는 그저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언제나 그 자리를 잘 지켜주는 버팀목의 역할을 잘 하면 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셋째에게 따뜻한 말,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많이 해주었더니 어느새 저를 위로해 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처럼요.

셋째의 말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되었고 또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첫째에게 다시 적용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세 아이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를 성장시키고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요. 

때로는 세 명의 아이를 기른다는 게 버겁고 힘듭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아이 셋을 미소로 바라보는 마음 넉넉한 엄마가 되어있길 기대합니다.

오늘도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세 아이를 웃으며 맞이하고 싶습니다. 매일매일 제게 인생의 중요한 가르침을 안겨주는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들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실릴 수 있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태그:#육아, #육아에세이, #삼남매, #양육, #정서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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