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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 의원은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지만, 기초지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예산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서울시 강동구를 중심으로 구의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치구의 정책들이 중앙정부와 광역시 정책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정철학과 기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의원이 어떻게 견제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역명 변경에 임하는 구청장의 이상한 태도

지난 13일 강동구의회에선 구의원들이 구청장에게 구정 현안에 대해 질문을 하는 구정질문이 있었습니다. 많은 의원들이 나와 여러 가지 문제를 구청장에게 물었는데요. 그중 본회의장을 뜨겁게 달군 건 원창희 의원(민주당·강동가)과 이수희 강동구청장의 강동역 지하철 역명 변경에 관한 문답이었습니다.

원 의원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강동역명 변경과 관련해 강동구청의 불투명행정을 비판했습니다.
 
강동역명 변경 추진 과정
 강동역명 변경 추진 과정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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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5월 지명위원회를 열고 강동역을 '성내동역'으로 변경했습니다. 당시 강동구청 담당 부서장이 위원회에 참여해 찬성 발언을 했음에도, 이제 와선 구청장이 나서서 역명 변경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청장은 지명위원회 결정에 반해 예산 편성 신청을 안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담당 부서장은 구청장의 지시를 받아 찬성의 발언을 한 게 분명한데, 정작 구청장은 반대를 하고 있는 희한한 상황. 더욱 기가 막힌 건 원 의원에 대한 이 구청장의 이상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는 관련해 행정절차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며, 솔직히 원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면과 표면이 달라 의회와 공유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강동구청장 : 주민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이 강동역 역명 개정과 관련해서, 변경과 관련해서 주민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강동구청에 행정 절차는 뭐가 있었냐가 아니라 주민들이 궁금해 하시는 거는 강동구청이 역명을 변경할 진심이였었느냐, 변경할 뜻이 있느냐, 의지가 있느냐인 겁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준비 철차에 관해서는) 이면과 표면이 있기 때문에 의회에 말씀드릴 사항이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 (중략) 솔직히 말씀드리겠어요.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표면과 이면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듣는 의원으로서 답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원은 역명 변경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하는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구청장은 겉과 속이 다름을 연신 이야기하고, 스스로 행정 절차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형국이라니요.

물론 정치인으로서 그런 구청장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변경 찬성을 했다가, 주민 여론이 악화되자 '앗 뜨거' 하며 철회하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는 구청이 그전에 주민들의 여론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섣부르게 진행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해 주민들 간의 갈등이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강동구청장은 이런 혼선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책임 있는 행정가로서의 책무입니다. 
 
구정질문 중인 원창희 의원과 이수희 구청장
 구정질문 중인 원창희 의원과 이수희 구청장
ⓒ 강동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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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역명을?

왜 이런 촌극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역명 변경에는 표지판 변경 등 최소 4억 원 이상의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고, 역명을 30년 가까이 썼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혼선을 겪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누가 왜 역명을 굳이 바꾸려는 것일까요?

강동역명 변경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서울시의회 김영철 시의원(국민의힘·강동5)입니다. 그는 2014년 강동구의원 시절부터 이를 줄기차게 주장해왔습니다. 성내동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으로서, 강동구의 9개 법정동 중 성내동만이 역명이 없음을 지적하며 강동역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함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김 의원의 노력은 지난해 강동구청장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바뀌고 시의회의 다수가 국민의힘으로 바뀌자 현실성을 띄게 됐습니다. 결국 그의 제안대로 서울시는 지명위원회를 열어 역명 변경을 가결했고, 강동구도 처음에는 이에 호응했습니다. 담당 부서장이 회의에 참석해 찬성까지 한 것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동역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강동역
ⓒ Kth69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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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강동역를 중심으로 성내동 건너편의 천호동 주민이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요,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논쟁을 쓸데없는 돈 낭비라고 비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벌리는 쇼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결국 여론이 나빠지자 국민의힘은 역명 변경을 포기했습니다. 비록 국민의힘 의원이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이 나서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의힘 천호동 지역의 한 의원은 역명 변경에 관한 반대 결의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앞서 봤듯 구청장은 찬성했던 행정절차에 대해 발뺌을 하며 반대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 의원도 공식적으로 자신의 제안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강동역 역명 변경 사건의 전말입니다.

또다시 자괴감 
 
서울지 지명위원회의 결정
 서울지 지명위원회의 결정
ⓒ 딜라이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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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접하며 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 결의안의 표류("중앙서 연락왔다"... 표류하는 오염수 결의안, 그 뒷이야기) 때와 마찬가지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기에 영합해 정책을 내놓고, 또 인기에 영합해 자신의 이야기를 곧바로 뒤집는 정치인들.

사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역명 변경 사건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그들만의 리그입니다.

수출이 바닥을 치고 경기는 나락에 떨어지고 서민들은 먹고살기 어려워 아우성을 치고 있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역명 하나 바꾸겠다고 그 많은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니요. 물론 역명에 따라 땅값이 변하는 우리의 현실도 문제지만, 그 뻔한 속내를 알면서도 무리해서 일을 벌리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갈등을 봉합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디 이번 사례처럼 정치권이 나서서 주민들을 갈라치지 않기를 바라며, 구청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표면과 이면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투명하지 못하고 성급했던 행정절차에 대해 사과하기를 요청합니다.

태그:#강동역, #강동구의회,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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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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