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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어' 사용, 어떻게?
 '평어' 사용, 어떻게?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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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어의 형식은 '이름 + 반말'이다. 그렇다면 평어가 원하는 건? 평어의 지향점은 생물학적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기대되는 상호 존댓말이 아니라 나이나 지위에 영향받지 않는 상호반말 속에서 각자의 우호 관계와 각자의 위계 없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상실해 갈 수밖에 없는 또래문화의 가치를 언어로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 릿터 39호 : 예의 있는 반말2

매주 금요일이면 기다려지는 메일이 있다. 바로 '까탈로그'다. 지난주 금요일에 받은 메일의 제목은 "해연, 일상이 지겨워?"였다. '까탈로그'는 유튜브 채널과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디에디트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까탈스럽게 고른 취향'이라는 뜻의 뉴스레터다. 어떤 제품이 새로 나왔는지, 어떤 물건을 사면 행복해지는지 등 에디터들이 까탈스럽게 골라 메일로 배달해 준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나는 자칭 미니멀리스트라 까탈로그에서 추천받은 제품 중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제품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찾은 제품을 취향에 맞는 사람에게 공유한다는 아이디어가 말랑말랑 귀여워 계속 받아보는 중이다.

민음사에서 격월간 발행하는 문학잡지 릿터의 39호, '예의 있는 반말2'를 지난 주에 읽고 나서야 알았다. 까탈로그에서 그동안 나에게 말해왔던 방식이 '평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안녕, 해연. 까탈로그 담당자 에디터B야. 나는 고전 영화를 좋아해. 고전의 매력이 뭐냐고? 의외의 신선함이 있어."

평어는 반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렇듯 까탈로그에서 매주 메일을 받아보면서도 그들이 쓰는 언어가 '평어'라는 것을 몰랐던 나는 새삼 그 친숙한 말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어란 '이름+반말'이라 친밀감은 갖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반말과는 엄연히 다르다. 존댓말의 반대에 반말과 평어가 위치해 있어 언뜻 보기에는 반말과 동일해 보이지만 농담의 유무에 따라 그 두 가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평어에서의 농담은 반말을 사용해서 하는 농담과는 다른 맛이 있다. 평어를 사용한 농담에서는 조금 더 건강한 맛이 난다. 그렇다면 반말을 사용한 농담에서는 조금 덜 건강한 맛이 날 것이다.

민음사에서는 시범적으로 평어 사용을 공식화하는 팀이 생겨났고, 그 밖에 다른 업종들의 사례까지 모아 평어 사용 전과 후로 나눠 릿터 1편과 2편에 차례로 실었다. 그들이 애초에 기대했던 건 수평적인 조직 문화였지만, 반말과 평어를 구분하지 못한 여러 부작용들이 속속들이 생겨나면서 말 그대로 혼란의 과도기를 겪고 있었다.
애석하게 내가 다니는 회사의 많은 구성원은 평어 사용을 일종의 '야자타임'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기자들은 출근해서 오늘 어떤 기사를 쓸지 간단한 개요를 보고하는 데 이를 '발제'라고 한다. 평어 기사 발제의 제목은 '"팀장님, 죄송합니다" 대신에 "승준, 미안해"...... '예의 있는 반말' 평어 사용기'였다. '승준'은 당시 팀장 이름으로, 아침 보고를 본 다른 부서 선배 몇몇이 메신저로 "ㅋㅋㅋ"를 보내왔다.

기사가 나간 이후에 어떤 선배는 내게 "'승준, 보고 올렸어.'라고 보고했니?"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배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존댓말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폐지되었지만 문장의 주체가 화자보다는 높지만, 청자보다는 낮은 경우 주체를 청자보다 낮춰 부르는 압존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회 초년생 때 메일을 쓰면서 문장을 다듬다가 한번 존댓말에 얽매이기 시작하면, 정작 메일의 본론은 잊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 밖에도 각종 호칭과 높임말에 얽매이다 보면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를 놓치기도 하고, 꼭 존댓말을 쓴다고 해서 모든 말에 예의와 존중이 담겨 전달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전하는 상대의 태도와 말투에 따라 다르게 느껴졌고, 받아들여졌다.

지난주에 평어를 사용해 봤다. 역시 단순한 반말이 아니었다. 평어는 어떤 면에서는 외국어와 가깝다. 분명 이름과 반말인데, 그 안에 예의와 존중이 담겨있다.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고르고, 호칭을 부를 때도 억양이 부드럽게 담긴다. "야"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며 상대의 이름을 한층 더 다정하게 부른다. "해연아"가 아니라 "해연"이라 불러야 한다.

함께 평어를 주고받았던 멤버 중 한 명은 이미 가족들과 평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 "아빠", "OO아"의 호칭이 아닌,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고, 딸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릿터를 읽고 '평어'의 세계에 처음 발을 디뎠는데, 이미 앞서가고 있는 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까탈로그'는 2년 가까이 나에게 '평어'로 메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이제서야 인지하고 말았다. 맙소사!

평어를 사용하는 미래의 공동체를 꿈꾸며

민음사 편집부는 평어를 꽤 오랜 기간 사용해왔음에도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민음사 릿터의 박혜진 편집부장은 평어는 듣기에 따라서는 폭력적인 반말이 되기도 해서 존대어야말로 사회적 다정함의 말투였다고 말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존대어에 의지해야 할 상황이 많았지만 평어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라는 것이다.

특히 위계질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힌 조직은 그 질서의 흐트러짐이 더했다. 잡음이 많았고 그들이 도입한 새로운 문화를 버릇없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견뎌내야 했다. 이를테면 "쟤네 지금 뭐 하는 거야?"라는.

그럼에도 나는 새롭게 알게 된 평어의 세계에 눈이 트였다. 더 많은 사람들과 평어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호기롭게 추진해 볼까 했다가 몇몇 분들이 스쳐가듯 떠올라 그 마음만 고이 접어 간직하기로 했다(나도 살아야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반말은 평어가 아니다. 확연히 다르다. 
평어는 우리 언어와 생각과 태도를 일상에서 여행지로 옮겨 주는 듯하다. 주변의 불필요한 정보들은 없애 버리고 진짜 중요하고 간결한 것들만 남게 한다. 내 기분과 너의 안부, 나와 너의 진짜 이야기가 오가게 한다. 평어를 사용하면 나와 너만 남고 다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직접 지은 필명과 예의 바른 반말로 나누는 대화. 내가 그리는 미래의 공동체 모습이다. 나이와 직업 외에도 나를 이루는 각종 타이틀을 다 걷어낸 대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처럼 서로를 위한 존중과 예의, 머뭇거림을 담은 언어들. 뱉어내는 말이 아니라 섬세하게 고르고 부드러운 억양을 담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나누는 평어의 세계에 나를 폭 담가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yeon-h/206


태그:#평어, #반말, #존댓말,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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