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술인 둘 이상은 자기 스타일을 분명히 드러내는 단체 전시에서 자기의 고유한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신촌문화발전소(소장 홍은지)는 2023년도 상반기 기획전시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회화의 질감, 소리의 기억, 시어의 해방, 활자의 유희가 서로 교차하는 경로에서 특정한 이미지에 각기 다른 예술이 상응하는 조건을 조명한다. 예술적 발화가 일어나는 사건 이후에 발생하는 이차적 사건으로서의 전시는 원본과 또 다른 스타일을 제안한다.

김대유의 회화, 안태운의 시, 윤충근의 사물 디자인, 안민옥의 사운드가 협력하는 이번 기획은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이 대화를 위해 접속하는 임시적이고 임의적인 공동체로서의 전시에서 '나'와 다른 존재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전시 제목은 안태운 시인이 쓴 같은 제목의 시에서 가져왔으며, 우리 삶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그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4인은 회화, 시, 사운드, 디자인 분야에서 각기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들의 연합은 서로 다른 작업을 병치하거나 중첩하는 태도와 형식으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힘'과 '연계적으로 대화하는 관계'를 함께 촉진한다.
 
신촌문화발전소 1층 김대유 작품 전시 전경
▲ 신촌문화발전소 기획전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 전경 신촌문화발전소 1층 김대유 작품 전시 전경
ⓒ 백필균

관련사진보기

 
김대유(1990~) 작가는 획의 두께와 속도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회화의 언어로 일상 이미지를 화폭에 옮겨왔다. 그의 붓은 때로 유려하고,때로 묵직한 몸짓을 타고 현실과 회화 공간을 자유롭게 누빈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이 계절마다 다르듯, 화폭을 가로지르는 김대유의 붓끝은 작품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을 드러낸다. 2019년부터 2022년 사이에 제작한 작업 가운데 다채로운 붓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 12점을 전시한다. 
 
신촌문화발전소 4층 유리창에 안태운 시인이 손으로 직접 쓴 시 '그것에 누가 냄새를 지었나'
▲ 안태운作 "그것에 누가 냄새를 지었나" 신촌문화발전소 4층 유리창에 안태운 시인이 손으로 직접 쓴 시 '그것에 누가 냄새를 지었나'
ⓒ 백필균

관련사진보기

 
안태운(1986~) 시인은 언어의 유동적인 흐름에서 자아와 세계가 대화하는 세계를 탐색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5년부터 2023년 최근까지 발표한 시 가운데 12편을 선보인다. 장면을 전환하는 도약으로 운율을 드러내며 시인의 독특한 스타일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대표작들이다. 5월 마지막 날 시인은 기존에 출품한 시 12편에 이어 또 다른 시 1편을 종이에 적어 전시장에 즉흥적으로 배치했다. 낙서 형식으로 '오리 모양으로 접어주세요'라는 지시어가 시인의 조각과 함께 놓인 전시공간에서 관람객은 종이를 자유롭게 접거나 펼칠 수 있다.    
 
안민옥 작가가 신촌 일대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에 멜로디를 입혀 일상 이미지를 실내로 호출한다.
▲ 안민옥作 "반복"(2023) 안민옥 작가가 신촌 일대에서 수집한 다양한 소리에 멜로디를 입혀 일상 이미지를 실내로 호출한다.
ⓒ 백필균

관련사진보기

 
안민옥(1991~) 작가는 소리를 대하는 지식과 태도에 다시 질문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익숙한 일상의 작은 움직임에 주목하는 김대유의 태도에 공감하며 회화의 질감을 소리로 번역하는 신작을 선보인다. 〈무심결〉은 안민옥이 신촌 일대부터  그의 사적 영역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수집한 소리를 특유의 흐름으로 재조합한 사운드 트랙이다. 신촌문화발전소 시설 스피커와 연결된 소리는 바깥 세계의 이미지를 실내공간으로 불러와 건축과 회화 사이 다중감각을 확장한다. 〈반복〉은 작가의 창작 과정에서 여러 소리를 수집하는 반복 행위에 관한 사유를 담았다. 여러 선율을 중첩하고 그 시작과 끝을 동일한 소리로 맞춰 반복재생하는 구조에서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주문과 또 다른 긍정이 교차한다.  
 
윤충근이 안태운의 시 '귀여움을 잘 아는 친구에게'를 컴퓨터 바탕화면 파일 제목으로 제시하는 사물 디자인
▲ 전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 전경 윤충근이 안태운의 시 '귀여움을 잘 아는 친구에게'를 컴퓨터 바탕화면 파일 제목으로 제시하는 사물 디자인
ⓒ 양이언

관련사진보기

 
윤충근(1991~) 작가는 장막부터 깃발까지 서로 다른 사물 12종으로 안태운의 시 12편을 옮긴다. 아날로그 사물의 표면부터 디지털 기기의 화면까지 출판물에서 벗어난 형식으로 시의 또 다른 지지체를 제안하는 작업은 시의 시각적 원형과 타이포그래피의 예술적 표현을 모색한다. 창문과 테라스, 벽과 엘리베이터 등 신촌문화발전소 내부 곳곳에서 윤충근의 사물 형식과 배치는 방문자에게 다양한 건축 사용을 제안하는 동시에, 다른 참여작가의 매체 표현을 확장하며 안태운 시의 이미지를 매개한다. 신촌문화발전소 1층에 5종, 4층에 5종, 카페 바람과 인터넷에 각각 1종을 전시한다.
 
안태운 시인의 시 '영상 밖에서', 김대유 작가의 작품 '기다리는 빛', 윤충근 디자이너의 '벽지'
▲ 신촌문화발전소 기획전시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 전경 안태운 시인의 시 '영상 밖에서', 김대유 작가의 작품 '기다리는 빛', 윤충근 디자이너의 '벽지'
ⓒ 양이언

관련사진보기

 
신촌문화발전소 1층과 2층 사이 보이드(실내 빈 공간)에서 참여 예술인 4인의 작품을 가깝게 배치한 기획은 이번 전시의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특이점이다. 윤충근의 사물 12종 가운데 벽지는 안태운의 시 〈영상 밖에서〉의 단어들을 '기나긴 장마'라는 마지막 문장의 이미지에 착안해 글 폭이 점점 짧아지는 계단형으로 편집해서 계단 옆 벽면에 배치했다.

안민옥의 사운드 작업이 시설 스피커로 재생되고 김대유의 회화 〈기다리는 빛〉이 같은 벽 위로 설치된 보이드에 활자를 얹은 디자인은 네 사람의 세계를 잇는 교차점을 제시한다. '책을 넘는 시'와 '벽을 넘는 그림'은 일반적인 지지체 형식 너머 무한한 공간으로 향한다. 

신촌문화발전소는 2018년에 개관하여 청년 예술인 스스로 가능성을 확장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획-창작-발표의 과정을 지원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이다. 신촌 지역의 특성을 살려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과 창의적 실험이 구현되는 기회를 마련하고, 경쟁과 배제보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건강하고 안전한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해왔다.

신촌문화발전소가 위와 같은 운영 방향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 기획은 20세기 프랑스 문학가 레몽 크노(Raymond Queneau)가 이야기 하나를 99가지 스타일로 쓴 작품 '문체 연습'에 착안해서 창작과 매개 활동을 이루는 요소 여럿이 각기 다른 스타일 표현을 연습하는 연속체임을 밝히고자 한다.

태그:#신촌문화발전소, #김대유, #안민옥, #안태운, #윤충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