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글을 썼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기억이 남아있는 특별한 일이 생긴 적은 딱히 없었다. 1년 전 여름, 그러니까 딱 이맘때쯤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리쬐는 햇볕과 장마철 폭우가 만든 환장의 콜라보로 덥고 습하고 축축한 한여름에 시작한 글쓰기 수업은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늦은 저녁 시작되었다.

비구름이 덮은 우중충한 하늘을 지나 도착한 프로그램실은 바깥과는 다르게 밝고 쾌적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넒은 공간에 'ㅁ'자로 만들어진 긴 테이블과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필명이 적힌 팻말, 작은 다과 꾸러미가 나를 반겼다.

수업을 진행해주시는 작가님과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도착하면서 조용했던 공간이 금세 북적거렸다.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으니 어색하던 공기도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수업은 작가님이 알려주시는 글쓰기 팁을 배우고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낭독한 뒤 그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음 수업 전까지는 항상 숙제가 하나씩 있었는데, 그건 매주 달라지는 주제에 맞게 본인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 카페에 업로드하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미루고 미루다 마감일이 코 앞에 다가왔을 때가 되어서야 글을 썼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주제에 대해 고민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메모장에 정리하기 바빴다. 그 후에도 시간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글을 쓰고 퇴고를 거치기를 여러 번, 어쩌다보니 나는 가장 먼저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쏟아지는 비를 뚫고 도서관을 찾아갔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고 꾸준히 글을 썼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었던 여름은 그 날 이후로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든 소중한 계절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생각을 했던 건 나 뿐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뒷풀이를 위해 근처 식당에서 모임을 가진 날,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다는 말과 함께 도서관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이어서 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었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글을 또다시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사실 이미 대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된 후였지만 그건 거절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22년 XMZ 그룹 연말파티
 22년 XMZ 그룹 연말파티
ⓒ 한재아

관련사진보기

 
동아리 멤버는 나를 포함한 6명으로 결정되었다. 어쩌다보니 20대, 30대,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다. 각자가 가진 직업과 생각, 가치관들이 모여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매달 격주 목요일, 도서관 프로그램실을 아지트 삼아 모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다. 각자의 마음이 담긴 간식들이 매번 테이블에 올라와있는 모습은 괜스레 몽글몽글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도, 좋아하게 되는 부분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각자의 글마다 담긴 분위기와 필체였다. 국궁을 좋아하시는 궁사님의 글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담겨 있다. 언뜻보면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힘이 매력적이다. 줄곧 글을 써오셨던 바람님의 글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담겨있다. 차분하고 다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이다.

밝고 쾌활한 성격을 가지신 수현님의 글은 시원시원한 느낌이 든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고, 글을 읽고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때도 많았다. 차분한 성격을 가진 섬하님의 글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풍경을 그려내듯 보여주는 문장이 그날, 그때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추진력이 강한 은비님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다. 시트콤을 보듯 재밌는 에피소드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문장도 하나같이 제 집을 찾은 듯이 잘 어울린다.

누구 한 명이라도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인연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동아리를 시작한 후였으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고마운 분들이기도 하다.

동아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멤버 중 한 분이신 바람님의 제안으로 이렇게 <오마이뉴스>에 우리의 글을 올리고 있다. 동아리 모임은 기사 송고를 위한 퇴고 기간이 생겨 3주에 한 번씩으로 바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초고보다 더욱 완성된 글을 볼 수 있는 것도, 기사가 되어 나오는 글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색다르고 즐거웠으니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응원하며 글을 쓰고 있다. 가끔씩 글을 쓰다가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생겨도 다음 동아리 날짜를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다시금 글을 쓰고 싶어진다. 지금도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또 하나의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 'XMZ여자들' 그룹 기사 보러 가기 https://omn.kr/group/XMZ2023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태그:#여름, #인연, #XMZ그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20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