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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31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공공요금 인상, 반대만이 능사 아니다: 노동자·시민 책임 부정하는 노조... 국가책임 강화하려면 시민이 더 부담해야"라는 기사에 대한 반론입니다. 글쓴이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입니다.[편집자말]
올해 1분기 전기, 가스요금이 1년 전보다 30%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지수는 135.49(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30.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1분기(41.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건물의 가스계량기 모습.
 올해 1분기 전기, 가스요금이 1년 전보다 30%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지수는 135.49(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30.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1분기(41.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건물의 가스계량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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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공공요금 인상 논란이 시작된 지 반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전문가나 언론의 논지는 바뀌지 않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기·가스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요금 인상은 대기업과 시민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에너지 공공요금의 '무차별적 인상론'이다.

지난 5월 31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공공요금 인상, 반대만이 능사 아니다"라는 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전기·가스 요금이 국제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국제 에너지 가격의 평균 상승분은 국내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수입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국내 에너지 산업 구조에서 누구와 어떤 거래를 하고, 어떤 정산 과정을 거치는지에 따라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

에너지 위기와 전환에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와 산업 구조는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증폭시킨다.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와 민자 발전 제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천연가스 직수입은 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소유·운영하는 민자 발전사가 자가 사용 천연가스에 대해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가스공사가 전담하던 수입을 민영화와 시장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 민간 기업에 허용해 2005년부터 SK, GS, 포스코 등이 직수입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저렴할 때는 직수입을 하고, 비쌀 때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수익 극대화 전략을 취하는 데 있다.

2014년까지 5% 미만에 불과하던 직수입 천연가스의 물량 비중이 2015년부터 증가해 2020년에는 22%로 크게 늘었다. 당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매우 저렴해 직수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럴 때 민자 발전사들이 천연가스의 직수입을 늘린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체 천연가스의 의무공급자인 가스공사 입장에서 보면, 직수입 물량이 빠져나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계약할 기회를 상실한다. 직수입 기업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체리 피킹'을 하기 때문에,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이 구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 성과나 경쟁의 효과로 민간 대기업이 가스공사보다 천연가스를 더 싸게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직수입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가스공사의 수입 가격을 적용받는 발전 공기업을 포함한 다른 기업과 일반 시민의 가스요금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가스요금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 전력도매가격(SMP, 민자 발전사와 한전 간 전력 거래 정산에 기초가 되는 가격)의 상승에 영향을 주고, 높아진 전력도매가격은 민자 발전사의 수입을 증가시킨다.

반면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상승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고, 높아진 전기요금이 다시 다른 기업과 시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누적되고,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높아지는 나선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국제 에너지 가격이 낮을 때나 높을 때나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만 에너지 가격이 낮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지금처럼 에너지 가격이 높을 때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원료비는 통제 불가능한 비용 아니다

3대 천연가스 직수입 민자 발전사인 SK E&S, GS EPS, 포스코에너지의 2022년 영업이익 합계는 약 2조 3000억 원으로 2020년의 약 6000억 원 대비 4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민자 발전사와 도시가스사를 운영하는 SK E&S의 영업이익은 2020년 2412억 원에서 2022년 1조 4191억 원으로 6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스공사와 한전에 비용을 전가하고 이익을 챙긴 것이다.

이들이 떠넘긴 비용이 영업이익으로 드러난 2조 3000억 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상승한 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전력도매가격에 반영된 부분은 이들의 영업이익이 아니라, 가스공사와 한전의 적자나 상승한 에너지 공공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직수입과 민자 발전 제도가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를 누적시키고 국민경제 전체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다.

전기·가스 요금 무차별 인상 불가피론의 주요 근거가 에너지 원료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천연가스 수입 구조와 민자 발전사를 통해서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가 커지고 결국 에너지 공공요금 인상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만약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가 없었다면, 민자 발전사에 특혜를 주는 전력시장이 없었다면, 공공요금 인상 압력은 훨씬 낮을 것이다. 따라서 한전의 전력구입비와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원료비에 전가되는 비용을 제대로 따져 물어야 한다. 지금 이 비용은 공개되지도 검증되지도 않고 있다. 우회적 민영화로 발생한 원료비 상승은 우리가 '통제 불가능한 외부 비용'이 아니다.

무차별적 인상이 불가피하고 바람직한가
 
5월 15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도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 및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5월 15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도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안 및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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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스요금의 무차별적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측에서는 가정용 요금에 대한 동결 주장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의 다수는 천연가스 직수입과 민자발전의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 정부가 대표적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천연가스 직수입과 민자발전 제도를 개혁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 현재 누적되고 있는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에 비해 너무 적으니 가정용 요금의 지속적인 인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연 가정용 요금을 충분히 인상하고, 저소득층에게는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면 되는 문제일까?

시민들은 공공요금의 폭등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로 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겪은 반면, 일부 부유층과 재벌 대기업은 이득을 보았다. 우리는 에너지 위기도 같은 방식으로 불평등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체득하고 느끼고 있다. 시민들은 물가 인상과 실질임금 하락에 고통받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서비스연맹이 발표한 서비스노동자 1056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월평균 소득 206만 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서비스노동자가 임금의 9%인 18만 3000원을 난방비로 냈다. 응답자 84.3%가 생필품 가격이 올라 다른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응답했다. 많은 시민에게 물가 인상과 실질임금 감소는 생계의 위협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1년 전에 비해 2.6% 하락했다. 3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2020=100)으로 1년 전에 비해 4.2% 올라 같은 기간의 임금 상승률 1.6%보다 2.6%포인트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에너지 공공요금의 인상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5월 15일 윤석열 정부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소액 인상임을 강조했으나, 2022년 초와 비교하면 1년 반이 채 안 되는 사이에 가정용 전기요금은 37%, 가스요금은 46% 올랐다.

바우처로는 에너지 빈곤 해결 못 해

적절한 에너지 사용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옷을 한 겹 더 입거나 벗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빈곤은 생존의 문제이자 권리의 문제다. 에너지 요금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바우처를 지급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유럽에서 에너지 빈곤은 민영화가 확산된 후 크게 증가했다. 2000년 이후 저소득 가구의 소득 중 에너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두 배가 되었다.

2019년 유럽연합에서 약 8000만 명이 에너지 공과금을 제때 또는 아예 납부할 수 없었다. 유럽인 10명 중 1명은 적절한 난방을 할 수 없고, 5명 중 1명은 적절한 냉방을 할 수 없다. 매년 최대 10만 명의 유럽인이 추운 집으로 인해 사망한다. 스페인에서는 자동차 사고보다 에너지 빈곤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 모든 통계는 유럽의 에너지 반빈곤 운동 단체인 '에너지에 대한 권리 연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끔찍한 현실은 한국보다 훨씬 촘촘한 복지망을 갖추고 에너지 빈곤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회에서 발생한 일이다. 한국은 에너지 빈곤에 대한 합의된 정의나 실태 조사조차 없다.

올 2월 빈곤사회연대가 발표한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빈곤 해결은 주거권과 만나야 한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주택 거주 가구와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더한 주거빈곤가구는 176만에 달한다. 이런 가구는 적절한 냉난방이 불가능한 경우가 다수이고, 가능하더라도 소득 부족 때문에 스스로 전기나 가스 사용을 제한한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2022년 2~4월 조사한 국민기초생활 수급가구 가계부 조사 결과, 수급가구의 광열비 지출은 2만 6000원 수준에 그쳤다. 이는 2022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의 연료비 지출 15만 4000원의 17%에 불과하다. 생계가 어려운 시민들의 경우 스스로 에너지 이용을 차단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이다. 전기·가스 요금이 인상되면 이런 일들은 더욱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게 명백하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대안
 
5월 1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빈곤사회연대, 정의당, 진보당, 노동중심 사회대전환 실천모임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자 발전사 손실 보전 결정 철회와 전기요금 인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5월 1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빈곤사회연대, 정의당, 진보당, 노동중심 사회대전환 실천모임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자 발전사 손실 보전 결정 철회와 전기요금 인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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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전기·가스 요금 인상 발표 전까지 윤석열 정부는 수차례 발표를 연기했다. 한전 사장을 사퇴시키고 한전과 가스공사의 자구책 마련을 강요한 끝에 인상을 발표했다. 정부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차별적 공공요금 인상이 사회적 정당성과 정치적 설득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희생양을 찾고, 엉뚱하게 한전과 가스공사의 방만 경영을 질타하고, 구조조정 등 자구책 마련을 강요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무차별적 인상이 아니라 책임과 부담 능력에 따른 선별적 인상을 선택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전기 소비의 약 55%는 산업용이다. 2022년 발생한 한전의 적자 32조 원 중에 절반 이상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전력 다사용 기업의 경부하요금제(심야요금할인제)를 개선하고, 민자 발전사의 초과이윤을 규제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당장 시행할 방안이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필요한 정책을 실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한전의 적자 6조 원 중 절반은 선별적 요금 인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5월 15일 요금 인상 발표 직후 기후정의동맹은 윤석열 정부의 인상안을 비판하고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세 가지 대안을 제안했다. 첫째, 대기업의 에너지 요금을 대폭 인상하고 가정용에 대해서는 요금을 동결하는 것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 중 시민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발생한 사회적 적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지원해야 한다.

둘째, 천연가스 직수입과 민자 발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국민 앞에 밝히고, 현행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직수입 제도를 폐지하고 민자 발전을 재공영화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셋째,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보를 완전하게 공개하고, 그 과정에 시민이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요금 결정을 민주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신자유주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원가주의와 독립성 강화가 아니라, 공공성과 민주주의 강화가 해법이다.

잘못된 구조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전기·가스 요금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요금을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에 국한된 논의가 아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에너지 전환이 중요해지는 정세에서 누가 그 과정을 이끌고, 어떻게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비용은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민영화와 시장 자유화로 비용을 절감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신자유주의 에너지 정책이 반대 효과를 내고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지배 세력이 은폐하려고 하는 대기업과 보수 정부의 부정의를 드러내서 비판하고, 노동자와 시민이 힘으로 기득권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현실에 맞선 단결된 민중의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

가스공사와 한전의 적자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천연가스 직수입과 민자 발전사 특혜를 만들고 키운 것이 바로 정부이기 때문이다. 즉각 시행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음에도 이를 방치해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를 키운 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악화시키고 불평등을 키운 주범인 대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고 부자 감세로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 바로 현 정부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시민의 책임이 있다면 부조리한 현실을 방치한 데 있고, 따라서 지금 필요한 책임감 있는 행동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걸맞게 전선을 명확하게 하고,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자·시민 책임이 무차별적 요금 인상을 수용하는 데 있다는 왜곡된 프레임은 시급한 투쟁에도, 지속가능한 제도와 장기적 비전 마련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태그:#전기요금, #난방비 폭탄, #민자발전, #직수입, #공공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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