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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실습에서 이를 경험하고 지켜보는 우리 예비 간호사들은 '내가 과연 이 일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심정이에요. 간호법 제정으로 우리도 우리를 스스로 챙기며 살고 싶습니다." - 김지형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총학생회장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갈등이 뜨겁다.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법안을 국회로 다시 돌려보냈다. 재의결을 위해서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1/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이미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한 만큼 가결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며 거부권을 환영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한간호협회(회장 김영경)는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거부권 행사 이후에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집회에는 현직 간호사들뿐만 아니라 간호대학생 등 예비 간호사들도 참석한다. 간호법 제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 하루 뒤인 지난 20일 오후 대한간호대학학생협회(회장 이주희)에서 활동 중인 김지형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서울시 서대문구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캠퍼스에서 진행한 김 총학생회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것.

"퇴사하는 간호사들을 정말 많아... 왜냐면"
 
김지형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총학생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지형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총학생회장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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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법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달라.

"간호법은 간호에 필요한 인력이 장기근속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간호법 없이는 많은 간호사가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해가며 일해야 하는데, 간호사 일을 지속 가능하기 힘들다. 한국은 현재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가 돼가고 있다. 국민 건강을 위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이다."

- 간호법이 제정돼야 간호사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맞다. 제가 지금 현장 실습을 나가고 있는데, 퇴사하는 간호사들을 정말 많이 본다. 간호법이 없어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보장받지 못해서다. 현재 팀 간호를 진행해도 인력이 부족해 추가 근무가 필요한 상황이다.

원래 8시간이 타임인데, 앞뒤로 2시간씩 더해서 하루에 12시간 근무하는 일도 많다. 대부분 병동의 상황은 환자들의 평균 나이가 80세 이상으로 간호사들의 힘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간호법이 제정돼서 간호사들이 더 건강하게, 오랫동안 현장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

"간호법 없이 어떻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까 걱정"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 걸린 간호법 제정 지지 현수막 아래 선 김지형 총학생회장
 서울여자간호대학교에 걸린 간호법 제정 지지 현수막 아래 선 김지형 총학생회장
ⓒ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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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상당하다. 학생들의 분위기를 전해달라.

"반반이다. 반 정도는 꼭 제정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나머지 반은 과연 내가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간호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의기소침한 상황이다. 간호법조차 없이 임상에 나가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드는 거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행사하고 나선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 윤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평가하자면.

"간호사들뿐 아니라 저희 예비 간호사들도 정말 실망을 많이 했다. 제가 실습하면서 보니 간호사 한 명당 10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더라. 그 '돌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액팅(대화를 통해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약 등을 투여하는 행위), 차팅(특이사항이나 투여한 약물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 랩 검사(혈액검사) 등 정말 많은 일을 한다. 그중에서는 원래 우리의 일이 아닌데 우리가 하는 일도 있다. 지금 대한간호협회에서 불법 의료행위를 거부하며 신고받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우리 간호사들의 권리를 무시한 것이다. 문제가 크다."

-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간호법이 제정돼도 간호사는 절대 개원을 할 수 없다. 간호사의 업무 영역에 '처방'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를 보조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대한간호조무사협회에서도 타 직역 업무 침탈 등을 이유로 간호법에 반대하고 있다.

"역시 불가능한 이야기다. 간호조무사의 업무는 간호법과 관계없이 그들의 업무 안에서만 이뤄지게 돼 있다. 간호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간호법은 다른 직역의 업무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업무 범위를 지정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간호법 제정된다면 예비 간호사들 더 자부심 품을 수 있을 것"  

- 대한간호협회에서 5월 17일 내놓은 거부권 행사 1차 대응 방안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대리처방과 수술 등 의사의 불법 의료행위 지시를 거부하는 내용인데... 사실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는 우리가 파업을 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직업의 경우, 그렇게 하면 환자들이 생명의 위협에 놓이지 않나. 그래서 파업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사실 현재 대응 방안도 효과는 꽤 있을 것 같다. 제가 직접 본 것만 해도 관련 사례들이 엄청 많다. 지금 신고도 많이 들어오고 있지 않나."

- 국회 상임위에서 법안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여러 조문이 삭제되거나 변경돼 간호법이 제정돼도 실효성은 적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래도 법이라는 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있으면 보충할 수 있지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일단 지금 법을 먼저 만들고 놓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현장은 달라질 수 있다."

- 이런 부분은 꼭 필요하다 싶은 게 있나.

"1인당 환자 수 상한선을 정해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일정도 3교대로 근무하며 휴식 시간도 제대로 못 챙기는 지금 같아선 안 된다. 저녁에 일하고, 반나절 쉬고 바로 다음 날 낮에 출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이 느껴진다. 업무를 제한하고, 인력을 더 뽑고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혹은 이대로 좌초된다면 본인을 포함한 예비 간호사들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많은 제 동기들과 우리 학교 학생들이 경력만 쌓은 뒤 임상(출퇴근하는 일반 외래가 아닌 3교대를 하는 병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임상에서는 1년 안에 다 퇴사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저 또한 실습하며 이런 환경에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여기서 간호법이 좌초된다면 많은 이들이 직업에 대해 실망하고 꿈을 저버릴 것 같다. 그러나 제정된다면 더 우리 직업에 자부심을 품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지 않을까."

- 마지막으로 시민들과 또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지금도 간호사들은 일선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자기 몸을 망가트리면서도 버티는 거다. 우리도 우리의 몸을 챙길 수 있도록, 예비 간호사들이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확신을 품고 나아가 환자 곁을 지킬 수 있도록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정문 앞에서 ‘간호법’ 피켓 든 김지형 총학생회장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정문 앞에서 ‘간호법’ 피켓 든 김지형 총학생회장
ⓒ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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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18일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19일 서울 광화문 일대 간호법 거부권 규탄대회를 앞두고 전국 주요 간호대를 대상으로 간호법 관련 집회와 관련해 강제 동원 및 참여 여부, 출석 처리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교무처를 통해 '학생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단체행동에 동원시켜서는 안 된다' '대학의 공결 처리 기준을 준수해달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교육부는 당일 오후 출입기자단에 대변인실 명의 문자를 보내 "민원에 대한 사실 확인 차원에서 어제(17일) 대학에 전화한 사실이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 민원 확인 절차였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는 전국 5만 명(주최 측 추산)의 간호사들과 예비 간호사들이 서울 광화문네거리 부근 세종대로에 모여 윤석열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국민의힘을 규탄했다(관련 기사: '간호법 거부'에 62만 간호인 "1인 1정당 가입...총선에서 국힘 심판" https://omn.kr/24060 ).

태그:#간호법, #간호법제정, #예비간호사, #서울여자간호대학교,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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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교육언론[창]에서도 기사를 씁니다. 제보/취재요청 813arse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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