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7 12:01최종 업데이트 23.05.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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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코플랜트 ⓒ 연합뉴스

 
2021년 5월 SK건설은 SK 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꿨다. '건설'을 '에코'로 바꾼 것이니 '뭔가 친환경적인 일을 하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SK 에코플랜트 홈페이지에 올라온 영상을 보면, 대표이사가 직접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건설업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지 못하고 생태계를 이롭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저희는 고심했고 변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환경업. 지난 60여 년처럼 우리가 신명을 다해 노력할 새로운 영역입니다."

산업폐기물을 땅에 묻어서 돈을 벌겠다는 SK

그러면, 도대체 SK가 하겠다는 '지구를 지키는 환경업'의 실체는 무엇일까? 지금 상황을 보면 산업폐기물을 땅에 묻어서 막대한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로 인해 전국 곳곳의 농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과와 온천으로 유명한 충남 예산군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서는 SK에코플랜트가 '조곡 그린컴플렉스'라는 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예산군과 SK에코플랜트가 2021년 8월 산업단지 계획을 발표했고, 군은 11월 주민설명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민들 얘기에 따르면, 설명회 당시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자원순환시설'이라고 들었다는 것이다. 장동진 조곡산단 반대대책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 

"시골 어르신들이 자원순환시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지 설마 이게 폐기물처리장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자원순환시설이 폐기물처리장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는 건 사실이었다. 주민들은 반대운동을 시작했고, 집회, 1인시위 등을 이어가고 있다. 제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놔두라는 것이 주민들의 요구사항이다.(관련기사 :  "충남 조곡산업단지, 주민 생존권 침해하면서 건설할 생각없어" https://omn.kr/20jiu)

누구나 '그린컴플렉스'라는 이름만 들으면 '무슨 친환경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단지인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하는 그린컴플렉스에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이 포함돼 있다. 단순히 산업단지만 조성한다는 구상이 아니다.

산업폐기물매립장 사업은 인·허가만 받으면 최대 수천억 원대의 이익을 올릴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수익 측면에서 산업단지보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이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오염물질 유출, 에어돔 붕괴, 사후관리 부실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돈은 민간기업이 벌고, 피해는 지역주민들이 입고, 사후관리가 잘 안 되면 최종적으로는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는 게 현실이다. 

말로만 '에코' '그린'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2023년 산업단지 지정계획 중 일부 ⓒ 산업통상자원부


이름에 '에코'를 넣어가면서까지 친환경을 표방하는 재벌대기업이 이런 사업을 추진해서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주민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그린'이니 '자원순환'이니 하는 말로 포장한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SK에코플랜트는 예산군 신암면 외에도 충남 여러 곳에서 '그린컴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었다. 서산시에 추진 중인 '대산 그린컴플렉스'와 아산시에서 추진 중인 '선장 그린컴플렉스' 산업단지에도 산업폐기물매립장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물론 산업폐기물이 나오면 어디선가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매립의 경우 지역 환경에 장기간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므로 처리주체에 신뢰성이 있고, 처리과정 또한 투명해야 한다. 특정 기업이 과도한 이윤을 챙기는 것도 맞지 않다.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안전성이나 환경오염 가능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보면, 민간기업의 주도로 우후죽순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고 있는 듯하다. 산업폐기물매립장만 따로 인·허가를 받기가 어렵게 되자, 산업단지와 패키지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주민들에게 구체적인 정보제공도 하지 않고 '에코'니 '그린'이니 하는 단어로 포장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생활폐기물 처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도록 돼있는데, 산업폐기물은 민간업체들에게 맡겨져 있는 구조가 문제다. 산업폐기물매립장은 매립이 끝나고 나서도 오랜 기간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 현행법상으로도 최대 30년까지 사후관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유해성이 강한 폐기물의 경우에는 30년의 사후관리로도 부족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 시설을 민간기업이 책임질 수 있을까? 실제로도 사후관리를 책임지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당진 고대·부곡지구 폐기물매립장은 운영하던 민간기업이 사실상 부도를 맞아 당진시가 사후관리를 떠안게 되면서 침출수 처리 등에 혈세가 투입되는 현실이라고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어느 한 군데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 인·허가를 받으면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폐기물을 다 가져와서 매립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산업폐기물에는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어떤 폐기물을 어디에서 가지고 와서 매립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생활폐기물처리시설은 주민감시가 가능하도록 돼 법에 규정돼 있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은 주민감시도 불가능하다. 일단 설치가 되면 사유지라는 이유로 출입도 할 수 없다. 최소한의 신뢰성과 투명성도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공공성 확보 위해 국회가 나서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주민들이 지난 2022년 8월 31일 예산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재환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지역 주민 사이에서 문제의식이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더 이상 민간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을 여기저기에 설치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산업단지와 동시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겠다면 산업단지 자체를 반대하겠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법을 만드는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신뢰성,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산업폐기물 관련 법령을 전면적으로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 신규 매립장이나 소각장은 공공성과 신뢰성, 투명성이 확보되는 주체만 설치·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SK같은 재벌 대기업은 이윤만 보고 지역주민들을 불안과 걱정에 빠지게 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산업폐기물을 땅에 묻는 것이 어떻게 지구를 살리는 일이란 말인가? 더이상 '그린', '에코'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주민들을 호도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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